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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Dec 31. 2021

100점짜리 아빠, 50점짜리 직장인

85점 정도의...대학원생

수고 많았구요, 보고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추측컨대, 선생님은 ‘교육 이데아’에 대한 관심이 지극한 듯합니다. 진지하게 교육에 임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이겠지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 선생님은 특히 플라톤식 원본과 모방체의 구분에 주목한 듯합니다. 아울러 그것이 플라톤의 입장이기도 하고, 또 오늘날에 있어서도 일면 유효한 구분이므로, 그러한 구분 자체가 현재 교육 검토의 한 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이러한 모방의 문제를 좀 더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이를 인식론적 맥락과 교육적 맥락에서 구분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




 월요일 오전에 대학원 알림 앱에 성적 공개 알림이 떴다. 그리고 행여나 하며 메일함을 여니 교수님께 메일이 와 있다. 지난 학기에도 교수님께선 "불쏘시개"에 불과한 내 보고서에 대하여 꽤나 길고 내밀한 조언을 해주셨었다. 심지어 전공학과도 아닌데. 이번에도 교수님의 메일은 꽤 길다. 다행히 불쏘시개에서 땔깜 정도로 승급은 되었다고 자평하는 내 기말과제 보고서에 대하여 이번엔 초반에 격려의 말씀, 그리고 뒤에 이어서는 두 문단을 할애하여 내 보고서의 헛점과 보완점을 자세히 적어주셨다. 


 나는 3일이나 지난 오늘, 조금전에야 답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 연속을 다른 과제로 밤샘을 해야헸고, 하루 이틀 정도는 말 그대로 뻗어있었던 때문. 그러나 부끄러운 나의 이번 학기의 공부에 대해서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여, 메일에 길게 나의 포부나, 감사의 말씀을 담기는 어려웠다. 메일은 짧게 끝났고, 나는 다시 업무현장으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했다. 집에서, 야근을 한다. 아이를 보다가, 다시 일을 한다. 물론, 중간 중간 놀 때도 있다. 그렇게 연말이 다가왔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을 돌아보면 나는, 100점 아빠이되 50점짜리 직장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선 이보다 성실할 수 없었다. 2월 말에 아이의 임신 소식을 알았으니 새학기가 되면서 나의 아버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연가를 몽땅 소진해가며 부리나케 아내를 데리고 병원을 다녔다. 무슨 검사며 진단은 그리 많은 것인지, 그리고 아내가 임신 초기에 아이가 잘못될까 너무 두려움이 커 안가도 될 병원을 더 간 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뱃속에서나 세상으로 나와서나 아이는 이보다 튼튼할 수 있을까 싶게 건강하다. 아직 우리는 아이의 꽉 쥔 손을 제대로 펴지도 못할만큼, 힘이 세다. 


 아이가 태어나서는 2주간의 출산휴가를 갖고, 휴가가 끝난 다음에 2주간은 휴가로 생긴 수업을 벌충하기 위해 하루에 6,7시간씩 수업을 해야했다. 그러니까 이 시기 나의 삶은 이랬다. 2시간 단위로 우는 아이를 제때 제때 맘마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트름을 시키고 안아준다. 그러고 나서 짬짬이 우리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95%의 가사 노동을 전담하던 나의 삶에 아이를 키우는 막중한 역할이 더해졌다. 아이의 고사리같은 손발, 그리고 배냇웃음이 아니었다면 행복을 찾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나 아이가 있어서, 내가 최대한으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아직 몸이 회복이 안된 아내를 쉬게할 수 있었다. 아내는 나와 품앗이를 열심히 했다. 부부간의 아이돌봄은 품앗이라기보단 아이가 예뻐서 자꾸 내가 안고 싶고, 내가 먹이고 싶은 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정말 힘이 들고 밤낮없이 아이를 봐야하던 시기, 아내를 돌보는 것도 나의 몫이었기에 나는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


 휴가가 끝난 뒤에 우리는 산후도우미를 쓰지 않는다는 과감한 결단을 했다. 그런고로 수업에 쥐어짜여진 뒤 퇴근 후엔 내가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곤 했다. 이에 대해서 예나 지금이나 불만이나 문제의식은 크게 없다. 아내는 아내대로 혼자서 하루 종일 아이를 봐야 하니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일까. 난 적어도 집에 와서는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고 있으니 스트레스는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그리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잠을 좀 못자는 것 말고는 체력적으로 힘든 일은 없기에, 나는 아기를 배에 올리고 자거나, 자면서 분유를 먹이는 등의 온갖 방법으로, 하여튼 꾸역꾸역 하루 하루를 견뎠다. 다행히 육아방식의 문제로 싸우긴 해도, 가사 분담의 문제로 싸우진 않았다. 그런 합의는 애초에 아주 일찍 이루어져있으니까. 나는 게다가 그 와중에 꽤나 내 자유를 추구한 편이라, 임신 중엔 게임을 퍽 많이 했었다.


 출근해서 하루종일 수업과 업무, 퇴근해서 아이를 돌보고, 밤에 두번정도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을 담당하며 하루 하루 보내고 나니 그 사이 아이는 자랐다. 새벽에 세번 깨서 수유하던 것이 두번으로, 그리고 이윽고 한번으로 줄었다. 수유량은 최초의 60ml에서 160ml까지로, 체중은 2.8kg에서 5.8kg으로, 날씬하던 얼굴은 둥그런 빵떡으로 변했다. 아이의 팔 다리는 소세지처럼 포동한 것이 참으로 탐스럽기만 하다. 이제는 아이가 옹알이도 적극적으로 하며,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고 흉내를 내거나 기분이 좋아서 자주 웃음을 보여준다. 스스로의 감정과 판단이 시작되어 보다 많은 교감을 보여주고, 보다 많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렇게 12월이 되었고, 나는 학교에서의 학기말과, 대학원에서의 학기말을 동시에 맞았다. 어찌어찌 견디고 버티고 넘겨온 온갖 일들이, 쓰나미가 되어 한꺼번에 덥쳤다. 나는, 집중할 일이 아니면 재껴두는 간단심플한 사고방식으로 아이돌보기에 집중하며 최대한, 최대한 다른 일들은 미뤄둔 참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업무는 밀리고 밀렸다. 내가 맡은 업무들은 학기말이 되며 교장선생님이나 다른 분들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왕왕 생겼고, 써야 할 예산들을 정산 시기에 후다닥 탕진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하였다. 무엇보다도 생활기록부를 아직 다 쓰지 못했다. 전체 분량의 25% 정도를 쓴 상태. 


 100점짜리 아빠가 되기 위해 50점짜리 직장인이 되는 길을, 나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쯤이면, 다행하고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 아이에게 완전한 편안함을 주고, 집을 따듯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50점 정도의 성적표는,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 남은 방학 때 조금 더 일하고 조금 더 양해를 구하면, 이번 학기는 끝난다. 그리고 새 학기엔 더 아이는 자라 있고, 나는 더 업무에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 김 선생님, 한가지 부탁

- 넵!

- 12월 4일 토요일 저희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에서 월례포럼을 하는데요.

- 주제는... 코로나 시대 원격 수업의 명암. 대면수업으로 전환되는 시기인데, 원격 수업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려고 합니다.

- 넵 교수님

- 혹시.. 토론자로 참여해주실 수 있을까요?

- 10-12시...

- 알겠습니다 10-12시인가요?

- 넵 알겠습니다

- 감사해요. 학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말씀해주시면 될듯합니다.

- 넵ㅎㅎ 바쁘신데 이렇게 제안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연은 또 생겼다. 나는 대학원 수업을 위해, 그리고 여러가지 업무로 집을 종종 비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내는 독박육아를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일이 일주일에 한번에서 두번, 그리고 주말에도 내가 집을 비워 혼자서 아이를 보는 경우도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점짜리 남편쯤은 되도록 그 노고를 벌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느 정도, 부족함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노력을 했으니 아내도 아이를 돌보는 것에 기쁜 마음으로 전념할 수 있었다. 


 지도교수님께서는 그 사이 사이 적당한 수준의 임무를 부여해주셨는데, 학회 포럼에서 토론자로 추천을 해주셨다. 새파란 풋내기인 나는 그리고 토론자로서 발제문을 FM으로 써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어느정도 짬이 쌓인 중견 학자라면 PPT로 자료집을 구성하고 실제 포럼에서 구술로 토론발제를 하면 되지. 석사과정생이 그것이 될 턱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그 와중에 짬을 내어 따로 발제문을 쓰기로 했다. 각주까지 착착 붙여. 교육학적 이론과 내 현장경험을 조화시켜서, 무려 12페이지의 발제문을 학회에 제출하고, 그 내용으로 포럼에서 토론발제를 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었다. 나의 아버지로서의 삶은, 100점짜리의 아빠, 50점짜리의 직장인에, 약 85점 정도의 대학원생의 삶이 끼어있었다. 세상에나 그 와중에 공부라니. 역시 이번에도 나는, 내가 집중할 것 외엔 재껴두는 심플한 성격으로 2학기에 수강하는 두 과목 중 하나에 우선 집중하고, 다른 과목은 재껴두었다. 그 결과, 메일을 보내주신 교수님의 수업은 A+, 그리고 성적마감 하루 전날까지 이틀 밤을 새가며 겨우 겨우 중간과제와 기말과제를 함께 제출한 수업은, B0다. 합산한 평점이 3.65이니 정말로, 85점짜리 대학원생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어찌 다행하지 않은 일이랴. 졸업은 할 수 있으니.


 예를 들어 교수님께서 제안하신 토론발제문의 경우, "아...아이 때문에..."라며 피하는 일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석사따리가 포럼에서 토론발제를 하는 것은 소중하고 중요한 기회다. 절대로 놓쳐선 안되는 일이다. 주말 오전, 아이가 자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이틀 정도 걸려 완성을 했다. 아내와 아이의 취침시간에 혼자서 일을 한 것이니 다행히도 가정의 평화를 해치지 않았다. 


 그러나 수업 과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한 학기의 수업의 성과를 고스란히 담아내야 하며, 고스란히 실제 성적기록이 남는다. 토론발제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검토할 문헌도 많다. 마침 그때, 정말로 다행히도 장모님께서 기말과제 시즌에 집에 여러날 계셨다. 이것은 우리 부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천운이다. 과제에 집중해야 하는 3,4일간, 실제로 육아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아이를 씻기는 것과 밤에 잠을 재우는 일들 정도가 내 몫, 그리고 밥을 차리는 것. 그것 외엔 아내와 장모님께서 날 충분히 배려해주셨다. 덕분에 구색은 갖춘 보고서가, 하나쯤은 나왔다. 공부 동료인 박사과정생은 이 보고서를 보고 보완연구를 해 학회에 발표를 하자며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사실 지난번 토론발제문과 내용이 상호관련성이 있어, 두 보고서의 방향성을 하나에 담고 부족한 것을 보완하면 꽤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리 저리 좋은 성과다. 오예! 

  그러나 다른 하나의 수업은 전혀 그렇게 잘 풀리지 않았다. 장모님은 댁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낮에는 출근해서 근무, 퇴근해서 아이를 보고 밤 수유까지 해줘야 하는, 그리고 3,4일 정도 충분히 개인시간을 가지고 완성을 해야하는 과제들이었다. 첫번째 과제를 마친 시점에서, 지금까지 손놓고 있던 두번째 수업의 과제들은 조금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심지어 중간 기말 모두 과제 제출기한을 넘긴 상태라,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학점에 대한 기대라고는 조금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학점이라니. C학점이 아른거렸다. 악몽이다. 나는 그러므로, 불가피하게 밤샘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10월부터 밤에 제대로 잠을 자본 일이 단 하루도 없다. 그런데 과제를 위하여 밤샘이라니, 내 처지가 딱하긴 하지만 별다른 수는 없다. 대학원생이나 되어서 재수강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만은 면할 수 있게 구색을 맞춰야 할 일. 그래서 뒤늦은 중간과제를 꼬박 여덟시간이나 걸려 제출했다. 다섯시간의 밤샘, 그리고 다음날 세시간의 추가시간이 소요되었다. 세상에나 그 사이에도 아이는 깨고...나는 그래도 아버지의 양심으로, 아내의 체력문제를 고려해 한번쯤 수유는 시켜주었던 것 같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기기엔 아내 역시 체력의 한계가 있다. 


그렇게 어찌어찌 중간과제를 보내고 나서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퇴근 후 조금 쉬다가 기말과제 작성에 들어갔다. 학교 업무는 상당히 방기된 상태다. 최소한의 업무만, 그리고 생기부는 손도 대지 못했다. Life goes on. 미루는 것이 가능한 것이 생기부라면 미룰 수 밖에.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는 무려 생기부 담당자다.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을 밤샌 다음엔, 수목금 전교사가 참여하는 생기부 교차점검이 예정되어 있다. 즉, 나의 밤샘이 끝날 일은,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친절하신 교수님은, 내 막장 상태의 과제들을 자애롭게 승인해주셨다. 그리고 B0라는 감사한 결과를 주셨다. A+과 B0를 합치니 대강 85점 정도의 성적. 여기에 지난번 토론발제의 성적을 합쳐볼까. 88점 정도.


 열심히 살았다. 충만했던 한 해다. 아버지가 되었고, 아버지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로 인해 미루어놨던 다른 일들을, 메울 계획을 세웠고, 또 새로운 일에 기꺼이 도전을 했고...성과물도 냈다. 의미있는, 아니 내 짧은 생애에, 그리고 앞으로의 긴 삶에 있어서 2021년 올해만큼 중요했던 한 해가 있을까. 글을 마치는 새벽 4시 13분, 밤잠을 가지 건 180ml의 수유를 한 아이는 아내와 함께 곤히 잠들어 있다. 그리고 나는 끝나지 않는 업무를 눈을 비비며 하다가, 그러나 한해의 마무리에, 점 하나 찍어둔다. 


 스스로의 성적표를 담당히 받아들 수 있는 삶을, 앞으로도 계속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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