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그녀의 문학에 대한 애정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걸출한 데뷔작, <살인자의 건강법>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써냈다.
"그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늘어놓는 작가가 있다면, 십중팔구 둘 중 하나일 거요. 첫번째는 자기가 책 속에 써놓은 내용을 목청껏 떠들어대는 거지. 앵무새란 얘기요. 두번째는 책에 써 놓지 않은 것들에 대해 흥이 나서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 경우엔 실패한 작가지. 쓰고자 하는 걸 책 속에 담아내지 못했으니까."
작품에 대한 작가의 대중 인터뷰 혹은 해설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담아낸 이 문장이, 나는 너무나 좋아서 노트에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블로그에 옮겼다. 이 문장은 나의 문학관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번에도 프랑스의,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명이었던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말년의 휴양지에서, 그의 아들이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읽어보라는 권유에 따라서 자신의 작품을 감상한 뒤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얘야. 지금 읽어보니 이 작품은 정말 재미있구나. 그런데 내가 이걸 다 읽을 때까지 살아있을 것 같지 않구나."
작가의 고료를 활자 수에 비례해 받던 시기, 빅토르 위고나 마크 트웨인, 뒤마 등 당대의 이름 난 문호들은 거의 모두 작품의 양을 늘리기 위해 여러가지 수단을 썼다. 일례로 <레미제라블>의 명장면 중 하나인 자베르 경감의 자살 장면은, 영화에서는 매우 짧고 굵게 묘사되지만 완역본 소설에서는 자베르의 독백만으로 수십장의 중언부언을 하고 있다. 뒤마는 생전 프랑스의 가장 인기있는 대중작가였고, 따라서 그의 작품은 일종의 공동창작 시스템으로서 대필작가를 고용하고 뒤마 자신은 감수 정도에 그쳤다 하니, 말년에 그가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같은 자신의 걸작을 새삼 다시 감상하게 된 것도 꽤나 그럴듯한 이야기다.
글을 자아내는 것이 생업이 되지는 못했지만,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로서 글을 대하는 나 자신을 뒤돌아보면 나는 노통브보다는 뒤마에 가깝게 글을 쓰고 살았다. 노통브처럼 문학을 사랑하는 일은 아무래도 어렵겠지. 각각의 글이, 완벽은 아니라 할지라도 완결에는 이르도록 한 뒤에는 잊고 살았다. 고료 때문에 양을 늘린 것은 아니지만 그때 그때 기억과 감정을 글로 옮겨 완성한 뒤에는 다시 다른 일에 집중했다.
이번에도 다시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나무>에는 뇌가 된 과학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뒤마에 가까운 문학관을 갖고 있는 터라 분명히 이 브런치에 <나무>의 뇌가 된 과학자의 이야기를 최소 1회 이상 언급한 바가 있기 떄문에 구차하게 뒤마의 핑계를 댄다. 거장은 아니지만은 열심히 많이 쓰다 보니 내가 언제 그것을 썼는지 기억하기 어렵다. 또 검색을 해서 찾기도 어렵다. 이렇게, 노통브가 조롱하며 침을 뱉을만한 구차한 별명을 덧붙여, 뇌가 된 과학자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보자면,
뇌가 된 과학자의 이야기는 개인의 어떤 생각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단편 속에서, 뇌가 된 과학자는 자손의 장난으로 인해 우연하게 우주적 진리를 깨우쳤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자손의 장난이 지나쳐, 과학자의 뇌는 우주적 진리를 모두 깨우친 그대로 개에게 먹힌다. 과학자의 뇌에겐 개를 피할 육체도, 자신의 생각을 전할 입도 손도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깨우친 것은 우주적 진리였을까? 그것을 확인할 방법 없이는 그것을 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뇌에 가해진 화학적 자극으로 인해 단지 사망하기 직전 온갖 환각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방법은 하나 뿐이다. 과학자의 각성이 참인지 거짓인지 입과 손이 생겨 다른 사람들과 따져보는 방법. 그러니, 나의 글쓰기는 나에게 감정의 발산보다는 내 삶이 옳은 것인가를 끝없이 탐구하기 위한 일지와 같다. 내 교사로서의 삶은, 내 남편으로서의 일상은, 내 연구자로서의 탐구는, 올바르게 가고 있을까. 알맞은 속도로 나아가는 것일까.
옛날 대양을 항해하는 범선은 배의 속도를 재기 위해 널판지 여럿을 밧줄에 차례차례 엮어 바다에 던졌다. 그래서 널판지가 많이 딸려나가면 배의 속도가 빠른 것이고, 널판지가 적게 딸려나가면 배의 속도가 느린 것이다. 꼭 글을 씀에 있어서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로되, 다만 나는 내가 남긴 글의 숫자만큼, 그 시간대의 내가 품고 있던 생각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고, 타인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를 통해 당시의, 그리고 지금의 나의 생각은 완결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완결,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음, 망각, 그러나 되짚어냄을 통한 삶의 정합성에 대한 성찰. 나에게 글이란 그런 작용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쓴 글이 500번째 글이었음을 오늘 알았다. 무신경하기도 하지. 490개를 넘긴 것은 몇주 전에 알았지만 또 뒤마처럼 쓰고 노통브처럼 거들떠보지도 않다보니 이제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3년 조금 넘게 브런치를 사용했으니 적어도 3일에 한편은 글을 썼나보다. 어쩌면 단지 재미로, 어쩌면 교육을 공부하는 연구자로서의 탐구심으로, 어떤 떄는 글밥을 벌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그렇게 빚은 500개의 항아리들이 장독대에 올랐다. 그 시간 동안 신혼의 여러가지 사건을 경험했고, 아이가 생겼고, 인생 일대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생업은 교사에서 연구자로 바뀌었다. 여전히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과거에는 아이를 가르치는 것 자체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지금은 교육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그것을 실증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수업을 대하는 관점이 새로 생겼다. 예나 지금이나 교사는 교사로되 내 공부가 맞나 틀리나를 확인하기 위한 교육이니, 선생과 학생의 중간자라고 할까.
3년 사이에 바뀐 생업을 돌이키며, 나에게 글이란 무언가를 생각하는 감개가 새롭지는 않다. 지금까지의 나의 생각과 감정의 편린들을,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리려 열심히 남겨왔고 그 방법은, 남은 평생 이어질 것이라는 재확인 뿐 달라진 것도, 앞으로 달라질 것도.
다만 500개쯤의 표지석에 생기고 나니 스스로 좀, 대견하긴 하다. 하루 하루, 글에는 완결을,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향해 온 날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