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있다!
아침마다 산에 오른지 2주가 되었다. 열흘 조금 넘는 날짜 동안 7,8번을 뒷산에 오르고 출근을 했으니 괜찮지. 그 사이에 계절이 바뀌었다. 지지난주엔 제법 더운 날이 이어지더니 주말을 걸쳐 시작된 초가을 장마에 기온이 툭, 하고 떨어져 덕분에 산에 오르는 일이 퍽 쉬워졌다. 하루 걸러 하루 아침에 산에 오르는 기분이, 산뜻하다.
그것은 도봉산에서 시작이 되었는데, 웬일인가 하면...개학을 이틀 앞두고 친구와 둘이 올라가다가 내가 그만 퍼져버렸다. 지난 5월 친구들과 같이 도봉산에 오를 땐 내가 앞장서서 쉭쉭 올라갔었고, 그렇게 힘들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고, 친구들을 기다려주느라 심박수 관리도 쉬웠는데, 15개월이 지난 지금, 입장은 뒤바뀌어 있다. 그 15개월 간 나는 앉아서 책을 보거나, 일을 하거나, 게임만 했다. 친구는 그 사이 등산과 자전거로 체력을 단련했다. 그러니 페이스메이킹을 하던 내가 친구의 페이스에 마냥 뒤딸려 끌려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정상을 150m쯤 남기고 뒤돌아서 나는 마당바위에서 친구를 기다렸고, 친구는 정상을 찍고 왔다. 그 일은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이 되었고...나는 "재활"이라 이름붙인 아침 등산을, 그 바로 다음날부터 시작했다. 330m 높이의 우리집 뒷산을 오르고 출근하기로 한 것이다.
아침 7시, 빠르게 걸으면 정상까지 30분이 조금 걸리지 않는다. 뛰듯 내려오면 8시. 그때부터가 바쁘다. 아침을 챙겨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계란후라이를 하고, 양배추에 하루견과를 한봉 뜯어서 붓는다. 그리고 아무 드레싱이나 보이는대로 붓는다. 아침산행에 아침으로 양배추라니 얼마나, 쓰담쓰담한 시작인가.
아침 산행과 양배추 식사는 또 다른 경험과 반성이 작용했다. 8월초 만삭사진을 찍기로 하고 6월부터 1일 1식을 해봤는데, 6월 한달간은 정말 성공적으로 살이 단번에 훅 빠졌지만, 7월에 1일 1식을 멈추자 그대로 요요가 왔다. 성급하게 식사량을 줄인만큼, 딱 그대로 원상복구. 영월에서, 제주에서, 그리고 멈추었던 점심식사에서, 내 몸은 시시각각 부풀었다.
단식 다이어트를 했으니 근손실도 났을 것이고 기초대사량도 낮아졌을 것이다. 내 몸은 이제 과식에 더욱 취약해진 상태가 된 것이다. 이제는 1일 1식 전보다 더, 먹은 것 이상으로 찌게 생겼다. 그런 반성이 날 더욱 부추겨, 이른바 "재활"로 이끌었다. 이쯤이면 재활이라고 볼 수 있다. 아침 1시간의 산행, 그것은 건강했던 한창 때의 삶으로, 원래의 기초대사량으로, 원래의 내 몸의 근골격근계로 돌아가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아침마다 양배추를 한가득 먹고 출근을 하니, 10시쯤만 되어도 배가 고파온다. 그럼 점심을 넉넉히 먹어도, 저녁을 부족하지 않게 먹어도, 조금도 고민거리가 없다. 이제는 간식에도 달달구리에도 오픈된 태도를 갖추고 대할 수 있다.
그런데다가,
"오빠 나도 계란후라이 하나만 해줘."
"응. 먹게?"
내가 아침을 챙겨먹기 시작하자, 2월말부터 입덧이 시작되어 아침을 한번도 먹지 못했던 바깥양반이 아침상에 함께 앉기 시작한다. 처음엔 계란후라이 하나로 시작되었다. 그 다음엔 계란후라이 두개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빙수 때문에 산 후르츠링에 우유를 부어주었다. 점점 식사로서 구색이 갖추어지더니 제대로 탄수화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크루아상 생지를 해동해서 아침에 크로플을 구워주었다. 그러니 잘 먹는다. 계란 후라이에 크로플이 아닌 제대로 된 크루아상을 구워주기도 하니, 천천히 다 먹고 출근한다. 나 뿐만 아니라 부부의 아침 역시 재활, 성공적.
출근 전, 아침마다 산에 오르는 것이 녹녹한 일이 아니다. 꽤 가파른 길을 후다닥 올라가는 거라 숨 고를 짬이 없다. 산 초입에서부터 모기가 꼬여서 아파트 25층 높이까지 올라갔는데도 내내 모기가 따라올 때도 있다. 어김없이 팔에 거미줄이 감기기도 한다. 이 철에 비는 왜 아침 내 발길을 막는지. 결정적으로 체력이 달려, 하루 등산을 하고 오면 다음날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이를 테면 어제는 대학원 야간 수업을 듣고 신경이 날카로와져 한참이나 피로한 눈을 부비다가 잠들었더니, 새벽 두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는, 오늘 아침은 7시 30분 기상. 꽝이다. 7시엔 나가야 하는데.
이럴 때는 내 아침형인간 속성, 만성수면부족인 체질이 다행스럽기만 하다. 제대 이후 한번에 6시간 이상 자는 일이 잘 없다. 군대에서 <아침형 인간>에 나온 수면 비법을 꽤 성실하게 익혀서 몇년 써먹은 덕분일까, 잘 땐 죽어 자고, 일어나서 열심히 뭐든 하고, 피곤하면 낮잠을 잔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여섯시간 뒤에 일어난다. 바깥양반과 수면패턴이 완전 달라서 서로에게 고달픈 면이 있지만 이 생활습관이 지금 내게 결정적인 기여를 할 줄이야. 코로나로 헬스장을 갈 수는 없고, 아침에 단 한시간 운동을 할 수 있다면, 등산보다 완벽한 게 무엇이 있겠는가?
덕부에 2주 사이에 혈압이 5나 떨어졌다. 결혼 후 4년째 혈압이 딱 139에 걸쳐있었고 높아지지도 낮아지지도 않았는데 지난주에 바깥양반과 산부인과에 들른 김에 혈압을 재보니 134. 몇번 더 해봤다. 그대로 낮아진 수치였다. 그래그래. 아침마다 운동을 하고 양배추를 먹고 있는데 혈압이든 뭐든 건강해지지 않고 배기겠어.
등산의 단점은 그러나- 아침에 씻고 난 뒤에도 한참이나 땀이 비오듯한다는 점이랄까. 나는 샤워를 하고 나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계란을 굽고, 후르츠링에 우유를 붓고, 양배추를 썬다. 식사를 다 마친 뒤에는 한번 더 샤워를 하기도 한다. 그것 말곤 통 나쁜 점이 없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질듯하던 근육통도 열흘쯤 넘기고 나니 느껴지지 않는다. 과한 근력운동이 아니니 하루를 보내는 기분도 가뿐하고.
그래서, 이렇게 때로 과식을 하더라도 예전과 달리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이연복 쉐프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해서 탕수육을 만들었다. 만드는 김에 가라아게도 같이. 퇴근 뒤에 한시간 넘게 내내 튀김을 했다. 한접시 가득 탕수육과 가라아게를 만들고 나니까 기진맥진, 소스를 만들 생각은 못했다. 일단 튀김이 잘 되었는지 보고 성공적이면 다음에 소스까지 해보자고 했는데...일단 탕수육은 성공. 다음에 소스와 함께 해봐도 좋겠다.
내 혈압을 올리고 다이어트를 망친 주범이던 튀김요리들.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기쁜 마음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먹는 게 남는 거인 삶으로의, 재활을 위해 나는 아마도, 내일도 산을 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