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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l 17. 2021

아내는 아직도 데이트라는 말을 쓴다

환갑 때까지 그럴 것 같다

"휴직하면 오빠가 혼자 버니까-."

"뭐 그거야 별 수 없지."

"애기 커서 외출 되면 데이트도 나가는데 그땐 비용이 아무래도 더 들지."

"걱정마 어떻게든 해야지."


 평범한 대화를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여전히 아내의 말에 담겨나오는 데이트라는 단어. 나는 익숙해지지 않는 그 익숙함에 어색함을 느끼며 다시 차를 몰았다. 결혼한지 4년, 그 사이에 싸움은 수백번에 헤어지자는 말은 연애 시절부터 다 합치면 수십번. 결혼도 결혼 이후의 부부의 삶도 끊임없이 달라지는 것일 텐데, 아내가 꼬박 호칭하고, 계획하고, 함께 꾸리고 있는 데이트에는 어떤 의미들이 담기는 것일까. 


 주말 아침이 되어 어김없이 맥머핀 세트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가는 김에 어제 정리한 분리수거 쓰레기를 챙겨 먼저 쓰레기장에 들렀는데, 종이 쇼핑백 중 하나를 집어서 넣으려는 순간 묵직한 느낌이 손에 잡혔다. 깜빡하고 비우지 않은 것이라도 있었나보다 하고 안을 보니, 다이어리다. 민트색의 하드커버로 된. 


 버릴만해서 버려놨겠지 싶으면서도 혹시 중요한 기록이라도 남아있을까 해서 안을 열어봤더니 역시나, 작지만 두툼한 다이어리에 월간 스케쥴러 딱 두쪽이 기록된 내용의 전부다. 있을법한 일이다. 내용을 보니 아내가 직업을 바꾼 첫해다. 새 출발을 기념하여 다이어리를 샀을법도. 그리고 기분전환으로 한달 정도 사용하다가 그만두었을법도 하다. 진작부터 핸드폰 앱으로 스케줄 관리를 하던 아내였기 때문에 다이어리는 딱 자기 수명을 다하고 얼마간 보관되고 있다가 내 손에 걸려든 것이다. 


 내 눈을 잡아끈 것은 그 한페이지도 남은 수백장의 공백도 아닌, 칸칸에 꼬박꼬박 적혀있는 데이트라는 단어. 그때에도 아내는 다이어리에 힘주어 데이트라고 세글자들을 적고 있었구나. 그리고 아직도 그러고 있을지도. 자기만의 다른 공간에, 탕수육 데이트라거나 단풍 데이트라거나, 적고 있겠지. 


 오히려 이상한 것은 내쪽이 아닐까. 아내는 지금까지 나와의 관계를 데이트하는 사이로 그리고 있는데, 나는 함께 살림을 나누어 하는 사이로, 그렇지 못하면 무책임한 사이로, 부부의 도리가 우선해야 하는 것으로, 도리를 하지 못하면 책임을 지우려하는 사이로. 물론, 아내 말인데, 시종일관 부부의 도리에 대해선 참으로 무관심한 스타일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임신 전 95%정도의 살림을 내가 하고 있었다면 임신을 한 지금 99.9%가량의 집안일이 나의 것이 되어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불편한 결합을 버티는 것이 결혼이니 차이를 발견하는 일이 즐겁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때로 상대방을 기준으로 하여 나의 다름을 따지고 드는 것에는 이로움이 많다. 부부간의 데이트를 지키려는 아내를 기준으로 한다면, 나는 얼마나 또 왜 잘못되어있을까.


 -여름. 시원한 에어컨을 쏘이며 차를 몰아 맥도날드에 기는 길, 나는 나의 비뚤어짐에 대해 생각한다. 오늘같이 투명한 하늘에 나는 신설동의 집에서 청량리 넘어에 있는 학교에 걸어서 간 적이 있다. 여름농활을 다녀온지 일주일 된 무렵이다.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었지만 한시간 까짓거 호기롭게 길을 나설만큼 농활은 또 덥고 혹독했다. 


 이번 여름도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나는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후끈 달아오른 몸을 마냥 굴렸다. 지난 겨울도, 그 앞의 여름도 이렇게 흘렀다. 친한 형은 호주에 반년간 가 있다. 다른 형은 호주에 그 형을 만나러 갔다가 미국에 가 있다. 동아리의 후배들이 지난 겨울에 스키장을 다들 가고 싶다고 하던 것을 하룻밤 엠티로 돌렸는데도 내 사비가 적지 않게 깨졌다. 내 삶은 이렇게 흘렀다. 작열하는 햇볕을 받으며 꿋꿋하게 걸어가는. 


 여행 까짓거 못가면 어때. 삶을 여행처럼 살면 되지. 그런 결론이 그때쯤 도달했던가. 그런 삶이 구차하지 않았다. 나의 하루하루는 부모님의 노력의 결실이었고, 그런 나의 하루하루는 나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래서 견딜만 했다. 여행과 소비, 다른 벗어남의 노력이 없어도 나의 안뜰은 채워질 수 있었다. 그쯤부터 마침 하루 하루 남기는 일기들에 힘이 붙고 있었다. 군대 갈 일이 얼마 안남았다는 복잡미묘한 심경이 가로막고 있긴 했지만은 또. 


 나에게 살림이 군더더기가 아니게 된 것도 어쩌면 삶이 먼저 벗어남은 나중이라는 생각이 고집처럼 박힌 탓인지도. 나가서 돈을 못쓰면, 비싼 밥을 사먹지 않으면 또 어때. 내가 하는 밥, 내가 집에 기거하며 하는 일이 그보다 부끄럽지 않은데 말이지. 그러하니, 벗어남을 통해 삶의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아내의 그런 고집들. 데이트라는 관계에, 연인이라는 형식에 어색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벗어남은 벗어남일 뿐이고, 돌아온 집에서 살림을 하는 건, 나라니까 얘. 


 그러나 아내에게 애초에, 나와의 데이트는 벗어남의 영역이 아니겠지. 아내에게 있어서 그것이 나와의 삶이 갖는 의미일 게다. 데이트가 벗어남이란 것 역시 나의 관점에서 편을 가르는 일일 뿐이다. 껍질을 까도 복숭아, 껍질채로 먹어도 복숭아인데 데이트를 굳이 부부의 삶에서 떼어놓는다는 것이 더 우습다고 아내는 이야기하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다던 나의 명제는 이 살림도, 이 삶도, 이 낱낱한 데이트 역시도 담아내야 하는 것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을쎄. 내가 바뀌기야 하겠냐만. 아내는 아내의 삶대로, 나는 나의 삶대로. 맥머핀을 들고 나는 천천히 집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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