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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06. 2022

아빠와 딸이 함께 만드는 엄마의 생일상

그리고 고구마 갈아서 전

https://www.youtube.com/watch?v=HQoRXhS7vlU

- 오 맙소사 멀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당신 딸은 고작 100일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기잖아요 아빠와 딸이 만드는 생일상이라니 이런...말도 안되는...이건 아동학...아니 유아학대라구요!


- 진정해요 스컬리 이제 막, 음 잠시 비켜주겠어요? 이제 막 새벽에 장을 봐온 참이라구요 참...아아 나도 이런 걸 바라진 않았어요. 그런데 아내는 생일이지, 아이는 돌봐야 하지 어쩔 수가 없잖아요. 게다가 아내는 곧 출근을 해야 하니까 잠깐이라도 내가 아이와 있어야...


- 멀더, 무슨 말을 하든 당신이 아이와 함께 엄마의 생일상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곘어요? 그건, 논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말이, 안된다구요.


- 잠시만요 스컬리, 자아 이렇게...하면...끄응차.

- 아하, 아하하 포대기? 당신답군요 멀더. 그런데 그렇게 하고 아침을...생일상을 차릴 셈인가요?


- 으음 꽤나 괜찮아요 스컬리. 이미 여러번 시도를 해 왔고, 으차, 자자 착하지 아가...옳지...이제 3개월을 꽉 채운 아이라서 목과 허리를 모두 어지간히는 가눌 수 있게 되었거든요. 포대기를 해도 한 10분, 20분 정도는, 꽤 아이가 잘 버텨줄 거예요. 그러것보다, 자 이것좀 보겠어요? 굴, 한우 양지, 미국산 불고깃감이예요. 어때요 이정도면 알뜰하게 생일상을 만들 수 있겠죠.


- 당신 냉장고에 이미 충분한 생일음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멀더. 일요일에 당신의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셨던 삼색나물이나, 굴 생채...그런데 굴을 더 사왔다는 건, 미역국에 넣는 건...양지일 테고. 게다가 당신의 아내의 성격이라면 굴 미역국은 취향이 아니겠군요. 굴로는 뭘 할...아하 알겠어요. 굴로는 전을 만들겠군요. 삼색전인가요?


- 맞아요 스컬리. 그리고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 뭔가요 멀더


- 글쎄...아내가, 지난번에 해준 간 고구마 전을 해달라는 거예요.


- 이 새벽에요?


- 으음 이 새벽에...아이를 안고. 이쯤이면...아이와 함께 만드는 생일상이라고 해도 무리할 건 없겠군요.


- 그렇군요 멀더. 그런데...아까부터 끓고 있는 저 냄비는 뭐죠?

- 물론 미역국이죠 스컬리. 새벽에 마트에 가기 전에 미역을 미리 끓여둿어요. 미역을 충분히 삶아서 부드럽게 해야 하니까. 다섯시반부터 끓었으니 생일상이 완성되는 두시간 뒤엔 꽤나 맛있게 미역이 익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또...


- 맞춰보죠 멀더. 음...평소에 당신이 만들던 미역국과는 다른...뭔가가...이 탁한 흰 빛은, 뭐죠 멀더?


- 맞춰봐요 스컬리. 아주 흔한 재료니까.


- 들깨...들깨가루는 아니구요. 가루가 보이지 않아요. 흐음. 사골이라기엔 뭔가...좀 흐릿한데.


- 쌀뜨물이예요 스컬리. 마트에 가기전 밥을 새로 지으면서 쌀뜨물을 아주 진한 녀석으로 조금 넣었어요. 평소엔 잘 안하던 방법인데, 새로 미역국과 밥을 동시에 올린 김이니 가능했죠.


- 훌륭하군요 멀더. 그리고 당신의 딸도, 꽤나 얌전히 당신과 함께 아침상을, 준비해주는걸요.


- 그래요 스컬리. 아주 착한 딸이죠. 자...그럼 불고기는 이렇게 간단하게...배즙을 쓰기로 하죠.


- 음...엉망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실용적이라고 할까.


- 이정도는 봐줘요 스컬리. 아침에 생일상을 차리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지난주부터 몇일간이나 새벽에 업무를 하느라 정신이 없으니까요.


- 좋아요 멀더.


- 멀더 그런데 이건 뭐죠?


- 물론 고구마죠 스컬리.


- 아니 그건 당연히 알고 있는데, 물에 담가두는 이유라도 뭔가...있나요?


- 고구마를 갈아서 전으로 만들려면 그냥은 안돼요 스컬리. 고구마 속 부분이 공기에 닿으면 빠르게 갈변하거든요. 그러니까 갈기 위해 껍질을 깐 다음엔, 즉시 물에 담궈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고구마가 갈색으로 꽤나 보기 좋지 못한 모양이 나온다구요.


- 과연...그런데 고구마를 갈아서 전을 만드는 건, 꽤나 독특한...방법이군요. 굳이 이렇게 어렵게 고구마전을 만들 필요라도 있을까요?


- 으음 스컬리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상상 밖의 다양한 요리들이 있는 법이죠. 그 중에는 고구마를 굳이 갈아서...만드는 사람도 있기 마련 아니겠어요? 꽤나 어려운 요리라는 게 문제지만. 당신도 한번 경험해보도록 해요.

-  멀더, 신의 딸이 울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봐요!


- 괜찮아요 스컬리. 나쁜 상황이 아니예요. "욕구"가 채워진 거거든요 이제.


- "욕구"라구요?


- 사실 내가 마트를 다녀오는 사이에 아내가 아이에게 분유를 먹였으니 지금 아이는 자야 할 시간이예요. 그런데 바로 잠드는 것을 거부하고 아이가 애정 욕구를 좀 먼저 채운 거죠. 아빠나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보채는 행동인데...그럴 땐 안아서 조금 같이 놀아주고, 집안을 구경시켜주면 잠잠해져요. 바로 방금전까지. 그리고 이제 또 다시 보채기 시작하는 건...


- 아하. 애정 욕구가 채워졌으니 이제 잠을 자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고...


- 그렇죠 스컬리. 마침 부침개들을 만들 시간이니, 집안의 탁한 공기를 피해 아이를 안방에 두기 딱 좋은 시간이죠.

- 음...이건 놀랍군요 멀더.


- 어던 점이요 스컬리? 아이가 눕히자마자 곤히 잠느는게? 아니면 이 고구마전이?


- 둘 다요 멀더. 고구마를 갈아서 만들다니, 그냥 썰어서 부치는 것만 봐온 나로서는...납득이 쉽지 않지만...훌륭해요. 색깔도 그냥 고구마전보다 훨씬 예쁘고...다만...어지간히 어렵군요. 뒤집기도 어렵고 도무지 뭉쳐지지가 않는걸요.


- 맞아요 스컬리. 그래서 나도 까딱하면 모두 곤죽을 만들어버리기도 하는데...오늘은 꽤나 성공적이예요. 아이에게 고마워해야겠군요.


- 후훗. 그런데 시간이 벌써 7시를 넘겼어요 멀더. 서둘러요.


- 걱정말아요 스컬리. 굴전은 이미 다 완성되었고 자아...오양맛살을 이렇게...대강 올리고 계란만 풀어서 부으면. 자. 삼색전이 완성되었군요.


- ...음...뭔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생일상의 주인공이 원하는 음식이라니. 어쩔 수 없죠.


- 그래요 스컬리. 아 그런데 반찬들 좀 부탁해도 될까요? 이제 슬슬 상차림을 해야겠군요.


- 알았어요 멀더.

- 늘 보는 거지만 당신의 미역국은 정말 대단해요 멀더. 다른 요리는 당신의 어머니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미역국만은 근접하다고 할까.


- 어려울 거 없어요 스컬리. 들기름, 그리고 오래 끓이기. 두가지만 기억하면 된다구요. 아, 물론 우리집의 경우 어머니의 집간장이 있지만...그렇다고 다시다의 힘을 빌리지 않는 것도 아니예요. 익숙한 맛이 맛있는 법이기도 하니까요.


- 그렇게 미역국과 고구마전, 굴전은 정성 가득 만들고 맛살 부침이나 불고기는 대강 만든다? 정말 특이한 사람이군요 당신은.


- 세상을 논리로만 바라보지 말고 때론 직관으로 보고 그것을 받아들여요 스컬리.

- 자아. 이정도면...다섯시반에 일어나서 만든 생일상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못하겠는걸요?


- 고마워요 스컬리. 매년 생일상을 만들긴 하지만 한 사람만을 위한 식사라는 게...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군요.


- 게다가 당신, 딸과 함께 만든 생일상이니 더욱 특별하달까 후훗.


- 몇해전보단 형편이 나았어요 오늘은. 삼색나물을 만들뻔 했으니 그럼...한 30분은 못해도 더 시간이 들었을 거예요. 자아 그럼 저는...


- 잠깐 멀더? 멀더? 생일밥상까지 다 만들고 어딜 가는 거죠?


- 걱정말아요 스컬리. 할 일이 있어요 그리고 곧...돌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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