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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19. 2022

충동적 사위의 레시피

군산에서 충동구매 한 해풍건조 조기가 상태가 좋아서.

 그러...니까 이걸 어디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우리는 5일간의 군산여행을 마치고 오늘 올라왔다. 속초 18일에 이어 군산 5일, 과한 거 아니냐 싶겠지만 이번 여행을 끝으로 바깥양반은 3월부터 7월까지 장장 4개월의 독박육아 대장정을 하셔야 한다. 그 뒤에 복직을 할지 안할지, 아직 확실히 정해진 바는 없다. 임신 막달이었던 9월, 아이가 태어난 10월부터 12월까지 4개월을 먼저 앞서서 방콕육아만 하고 난 뒤이니 이, 18+5일의 여행에 우릴 탓할 사람은 없겠지. 그저 남편으로선 바깥양반의 지금까지의, 그리고 앞으로 또 이어질 육아 스트레스를 이렇게라도 참아주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그런 어제, 군산에서 넉넉하게 일정을 잡던 중이니 우리는 차로 한시간 거리의 고군산군도로 향했다. 군산 사람들은 고군산군도라고 묶어서 부르지 않고 콕 집어 그중 가장 중요한 관광지인 선유도를 지칭하는듯하다. 여러개의 섬들을 거쳐 최종목적지는 그곳.


"옥돌 잠깐만 세워줘. 거기도 이쁘대."

"어 뭐 가는 길이니까."


 천천히 중간 중간 섬들의 풍광을 구경하며 지금이 봄이 아닌 것을 아쉬워 하는데 바깥양반이 잠깐 차를 세워달란다. 그런데 옥돌해변, 이, 해변이라고 하기엔 초등학교 운동장 정도 사이즈다. 펜션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해안가에 데크가 연결되어 있어서 산책로로 쓰기 좋은 가족 휴양지다.


 우리는 워낙 날씨도 춥고 칼바람인 탓에 사진만 찍고 후다닥 물러났는데, 내 눈엔 옥돌해변 입구에 있는 생선가게가 하나 눈에 걸렸다.

"저거 오징어는 얼마씩 해요?"

"배 오징어야. 맛있어. 여기 사람들은 배 오징어나 먹지 다른 오징어는 쳐주지도 않어."

"하하 얼만데요?"

"열마리 10만원."

"히엑."


 칼바람에 오종종 매달려 있는 오징어가 맛깔져보이는데, 마리당 만원이라니 수지가 맞지 않는다. 나는 좌대에 늘어서 있는 박대의 값을 물었다.


"박대는요?"

"열다섯마리에 만원. 그것도 맛있어."

"에...값은 좋은데 이건 좀 너무 얼리셨다."

"그래도 맛있어."


 아주머니께서 씨익 웃는다. 괜찮네. 박대는 값이 헐하다. 살까, 나는 바깥양반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빠 괜찮으면 사."

"끄응...좀 애매하네."


 나는 칼바람을 맞으며 차양 안에 서서 좀 고민을 했다. 박대를 내가 처음 본 것은 군대를 다녀와서 엄마를 따라 외가인 태안에 갔을 때다. 태안의 엄마 친구분 댁에 갔더니 시장에서 박대를 한짝을 사오셔서 손질을 해 베란다에 널고 있었다. 엄마는 내 등을 탕 치며 거들라하셨고, 나는 목과 팔을 쭉 뻗어 아슬아슬하게 베란다 창 밖에 그 박대를 널었다.


 서해 여기저기서 흔한 생선. 그런데 엄마는 왜 박대를 내게 먹이지 않으셨을까. 박대를 살까 말까 하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고 있잖은가.


"응 왜."

"질문."

"응 뭐."

"엄마 왜 나한테 박대 안먹였어?"

"박대애? 그땐 대전까지 박대 파는 차가 오질 않았지. 태안서나 먹지 그거."

"아...그렇군. 박대 맛있나?"

"맛있어. 꼬숩고."

"살까?"

"사~"

"음...오늘 저녁에 먹으러 갈 거니까. 일단 알았어."


 등 뒤에서 우리 엄마의 며느리께서는, 우리가 또 놀러나온 것 때문에 뭐라 타박하실까 우리 통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모양이지만 쿨하신 엄마는 우리가 어딘지도 묻지 않으신다.


 그래 박대는 사기로 했는데 여기 박대가 값은 좋은데 냉해를 입은 놈도 보이고 영 좋지가 않다. 내가 군산, 태안 사람이면 냉해를 입은 거라도 튀겨서 먹고 쪄서도 먹고 조려서도 먹겠지. 그러나 돈을 주고 사가는 건데 이왕이면 좋은 놈을 사야...어?

 옆에 매대에 조기가 실팍하니 좋다.


"조기는요?"

"이건 열마리에 만원도 있고 이만원도 있고. 이거 이만원짜리 만오천원에 줄게. 이걸로 가져가."


 오. 좋다. 값도 좋고 조기의 상태도 좋다. 게다가 열마리에 만오천원 쳐준다는 놈들이 씨알이 굵다. 나는 바깥양반과 상의해서 서른마리를 샀다. 우리집에 열마리, 시댁에 열마리, 처가에 열마리 하면 될 것 같으다. 그렇게 아이스박스에 실어서 올라오기로 했는데, 바깥양반은 처가로 먼저 향하자고 제안한다.


"오늘 우리집 먼저 들렀다 가."

"어? 괜찮긴 한데 왜? 빵?"

"응. 주고 가야 편하지."

"어 그래 그럼. 근데...그럼 모양이 좀 그렇군."

"왜?"

"아니 조기...를 내려야겠는데."


 우리집에 먼저 갔다면 열마리 씩 끊어서 처가와 시댁에 돌리면 될 테지만, 이 박스를 들고 온 처가에 올라갈 판이다. 거기서 시댁 물건까지 따로 빼는 건 좀 모양새가 그렇다. 만오천원 갖고 괜히 아쉬운 소리 나오게 할 것은 없고, 나는 열다섯마리 씩 반으로 나눠 처가와 우리가 가져가기로 했다.


"응? 그래도 괜찮아?"

"너희 시댁이야 냉동실에 생선이 흐드러빠진걸...그나저나, 어머니께 무, 생강, 고춧가루 있나 좀 물어봐."

"응? 왜?"

"매운탕 하려구."


 조기를, 비록 참조기는 아니지만 군산 앞바다에서 난 좋은 놈을 샀으니 매운탕을 하는 게 법도다.

 나는 바깥양반으로부터, 처가에 무와 생강은 없다는 말을 듣고 마트를 잠깐 들러 장을 봤다. 휘리릭, 매운탕을 끓이고 조기를 씻어서 소분하는 것이 오늘의 미션이다. 충동구매한 조기로 충동적으로 만드는 조기 매운탕이라니 이 얼마나 충동적인 요리일까.


"왜 나한테는 매운탕 안해줬어?"

"아니...내가 생선 장을 잘 보지 않잖아. 근데 이번에 산 조기가 워낙 괜찮은 놈이라서. 봐. 어제 사서 하룻밤을 아이스박스에 담겨 있었는데 비린내 하나도 안나지."

"어 그러네."


 나는 마트에 갈 때 거의 생선 장을 봐오지 않는다. 제일 큰 이유는 생선에 있어서는 종종 엄마가 챙겨주는 것만 먹어도 충분하기 때문인데, 그 다음 이유는 보통 마트에 가서 생선을 사오는 것이 "잘 산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외가가 태안이고, 엄마가 택배로 받아서 내게 건내주시는 것은 생물고등어에, 말린 우럭에, 어쩌다가 내가 알아서 꺼내온 게 말린 붕장어고 하니, 그런 걸 먹다가 마트에서 중국산이나 원양 생선을 싼 맛에 사오게 되진 않는 일이다.


 군산, 그것도 한시간이나 더 간 선유도에서 그저 바다를 보려다가, 오징어에 홀려 값을 물어봤다가 박대나 사려다가 충독적으로 산 이 조기가, 오늘 처가에 와서 내가 매운탕을 하고 있는 이유가 된 것이다.


 뭐 언제든, 집에서 바깥양반에게 조기 매운탕을 끓여주면 되겠지. 이번에 산 놈으로 말이다. 아버지도 어릴때, 엄마가 조기로 매운탕을 해주시면 내가 몇 젓가락 깨작거리는 사이 머리까지 모두 씹어드시곤 했다.

"어머니 고춧가루요. 어 그리고 간장은 어딨나요?"

"여기 여기."


 오늘 등장인물이 많군. 서른마리의 조기를 씻어 소분하고 나니, 먼저 냄비에 끓여둔 무가 대강 익었다. 특별히 실팍한 놈으로 셋을 골라 냄비에 넣고, 마늘 크게 한스푼, 생강 작게 한스푼을 넣고 된장 반스푼, 고춧가루 크게 또 한스푼, 그리고 간장을 넉넉히 붓고 고추를 크게 썰어넣었다.


 할일은 대강 끝. 이제 끓여지는 모양을 보며 최종적으로 간만 보면 된다.


 그런데 고춧가루를 다시 냉동실에 넣으려다가 건새우가 보인다. 야 잘됐다. 장인어른 장모님이 드실 매운탕이니 조기만 덩그라니 넣기 섭섭했는데, 이거면 딱이다. 나는 한주먹 가득 새우를 집어 냄비에 넣었다. 엄마는 조기매운탕을 짭짤하게 하시던 편인데 어른들이 드실 것이라 그렇게 짭짤한 맛을 내긴 어렵다. 대신에 시원하고 달큰한 맛이면 기쁘게 드시지 않을까. 작은 사이즈의 건새우라면 마치 민물새우탕처럼 입에 거슬리지도 않고 아삭아삭 밥이 잘 넘어갈 것이다.


 그 사이 바깥양반은 내 등 뒤에서 장모님께서 우리 온다고 사두신 김밥을 먹고 있고, 동백이는 거실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다. 충동적인 내 요리는 조기를 손질하고 담는 20여분 사이 손쉽게 완성이 되었고 나는, 긴 여행길 끝에 오늘 하루를 홀가분하게 마칠 수 있는 기분이 되었다. 이제 집에 가서 박대와 조기를 맛있게 구워먹기만 하면, 군산 여행의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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