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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07. 2022

황태 뿌셔 아침밥상 뿌셔

 아침에 일어나 주방의 불을 켜는 시시한 일을 나는 한달 가까이 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식탁 위에 등을 켰지. 주방 형광등의 안정기가 고장이 나, 교체를 위해 한번 뜯어보았다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것을 알고 한동안 고치지 못하고 미루고 미뤄두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개학까지 하고 나서 3월 4일, 그러니까 지난주 금요일에나 칼퇴를 한 김에 고친 것이다. 전날 마트에서 사 온 52와트 짜리 밝디 밝은 LED 등으로. 그러니까 나는, 사실상의 첫 DIY를 성공한 것이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았다. 절연장갑이 없어, 일단 차단기를 끄긴 했지만 오븐용 벙어리 고무장갑을 왼손에, 오른손엔...이걸 뭐라드라. 공구용 집게 중에 앞이 좁은 것. 날이 없으므로 니퍼는 아닌데. 할튼, 그놈을 가지고 낑낑대며 낡은 형광등을 천장에서 뜯어내고, 새 LED등을 달았다. 벙어리 장갑으로도 어떻게든 되는군. 여기에, 저녁 시간이었으므로 어두워서 독서용 미니 스탠드를 싱크대 위 찬장에 붙이고 그 공정을 진행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밝은 아침을 맞았다. 그래서 오늘은 황태를 부수기 시작했다.

 왜 황태냐 하면, 황태가 아닐 이유도 없는 것이 계란덮밥을 오늘은 하기로. 왜 계란덮밥이냐 하면 또, 동두천에 있는 니지모리라는 아트스튜디오 공간에 바깥양반과 친지 부부가 함께 방문을 했었는데, 그곳에서 나와도 꽤 절친해진 친지부부의 남편쪽, 두살 위의 형이 자기들 기념품을 사면서 내게도 알뜰살뜰한 계란후라이 용 간장을 하나 사준 것이다. 


 일본산 간장이라, 그걸 테이블에 올려두고 우리는 오래된 일본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냈다. 오타쿠였던 나, 돈을 벌기 시작하니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방사능에 대한 우려, 간단한 프리토킹이 가능한 일본어 능력을 갖고서 일본땅을 단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나. 인생은 아이러니하기만 하지. 나는 형광등처럼 세월에 낡아져가고, 무뎌져가는데 방사능의 위험성 자체는 시간이 지난다고 옅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 내에 방사능이 축적되는 것이 늘면 늘었지 줄면 줄 수는 없는 것이니까. 반감기, 수십만년의 시간 비율에 비하여 나의 인생은 너무나 짧고, 그런 우려를 끼고 남은 인생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간장으로 타협하자. 만족을 하든 수용을 하든 말이지. 


 하여, 황태는 사각사각 잘 빻아지며 갈린다. 아 자꾸, 방사능하니 생선도 꺼림칙하네. 공기를 하나 꺼내 폭신한 황태가루를 담는다. 그리고 나니 절구에 황태 가루가 퍽 많이 남았다. 이거, 천연조미료로구나. 아까워서 그냥 내 밥공기로 오늘은 절구를 쓰기로 했다. 

 계란, 그리고 밥. 생각해보면 참으로 시시한 음식이다. 글을 따로이 쓸 거리도 되지 않을, 그저 평범한 간장에 계란후라이를 비벼먹는 요리. 다만 나는 황태를 넉넉히 올리기로 하였고 단지 그것뿐. 그거 하나 이외엔 별것 아닌 식탁. 


 그러나 별것 아닌 식탁 하나에도 수십가지 이야기들은 섞여들고, 평온한 아침을 매일 맞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를 봄이 되면 또 깨닫는다. 6개월이 된 아이는 구강기를 격렬하게 보내고 있고, 잠은 뒹굴다가 꼭 코를 박고 잔다. 걱정이 많은 바깥양반은 노심초사, 아이가 코를 박고 잘 때마다 똑바로 누이려다가 꼭 아이를 깨운다. 그럼 아이는 억지로 잠을 깬 탓에 거칠에 울어재끼고, 우리는 아이가 운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푹신한 베개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렇게 이른아침을 요란스럽게 보내고 나면, 아빠는 다시 주방의 불을 켜고 환한 아침을 맞는다. 아 근데. 52와트짜리 LED 등이란 것은 너무 밝다. 터무니 없이 밝다. 이전에 쓰던 형광등에 비해 다섯배, 아니 그건 너무 과장이고 1.5배 정도 밝아서, 정말이지 주방에 들어설 때마다 눈이 쨍하다. 


 그래도 뭐든 새것이 좋지. 그중에 최고는 새로 지은 따순 밥. 갓 익힌 계란후라이. 아직, 눅눅해지지 않은 조미김까지.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영 볼품은 없다. 끄응. 게다가 절구에 담겨진 내 밥은 더욱 볼품이 없다. 


 형광등을 고치지 않고 미뤄두는 사이에도 나는 부지런히 밥을 지었다. 인덕션 위의 조리용 등을 켜고, 부침개며 곰탕이며 갈비찜 등등. 그러나 주방에는 불이 켜지지 않고 식탁 위의 등은 노오란 미등이라 음식을 만든들 사진을 찍을 광량이 되지 못한다. 이런 제길. 한달만에 찍는 내 요리 사진인데 이렇게 볼품이 없을 줄이야. 이왕이면 계란 위에 황태를 올릴 것을 그랬다. 계란 위에 황태, 그 위에 김가루라면 포인트가 될 텐데. 이럴 줄이야. 


 그러나 뭐 그럭저럭 먹어줄만은 하다. 바깥양반은 아침에, 이걸 다 먹을 순 없다며 1/3 가량을 남기셨고 나는 또다시 바삐 아침 시간을 보내느라 분주해 김치도 꺼낼 틈 없이 식사는 단숨에 끝났다. 식사가 완료되기 직전에 바깥양반은 또 다시 침실로 가 아이의 자는 자세를 고쳐주었고, 그 바람에 동백이는 깨었다. 


 그리고 나는, 바깥양반의 점심반찬을 만들고 후다닥, 욕실로 들어간다. 황태는 포실포실하게 부서졌고, 우리의 아침 밥상은 이렇게 판을 뿌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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