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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20. 2022

갈랍과 동그랑땡 사이

카카카 카레

 갈랍이라는 명절요리가 있다. 여느 전통음식이 그렇듯 집집마다 지방마다 이름이 다르겠지만 이 음식을 우리 집에선 갈랍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것은 내 어린 시절의 소울푸드였다.


 시골의 자그마한 종가집인 우리는 8대조까지 제사를 꼬박꼬박 자정을 기해 치르던 집이었고, 어릴 때 나는 제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현관문 밖에서 절을 하고, 제사가 끝난 새벽에 곤히 잠들어 아빠에게 안겨서 자리에 눕혀지곤 했다. 철부지 어린아이에게도 제사란 지루하고 피곤한 일인데 낮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늦은 시간까지 제사를 치르던 엄마와 아빠는 오죽하셨을까.


 그러나 그런 나에게 제사음식을 나누어먹는 음복은 늘 그렇듯 즐거운 일이었고 그중에서도 저놈, 흰 밀가루 반죽 위에 쇠고기고명을 얹어 만드는 음식이 딱 어린 내 취향이었다. 오물오물, 흰 전 부분을 먼저 먹어고 손에 쥐고 있던 고기 고명을 먹어도 되고, 아니면 가운데 고기고명 먼저 먹고서 바삭하게 구워진 흰색 전을 먹어도 되었다. 즉슨, 어린 아이가 손장난을 하며 먹기 딱 좋은 음식이었단 것이다.


 아버지 대의 일가족들이 한분 두분 세상을 먼저 뜨시고, 함께 제사 음식을 하시던 큰어머니나 누나들도 더는 명절에 이제 모이기 어렵게 되니 이 갈랍도 이제 먹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살던 나도 언젠가 지나치는 말로 엄마에게 내가 어릴 때 고, 흰색 전에 가운데에 고기고명이 올라가는 부침개를 제일 좋아했다고 하니 엄마는,


그거 갈랍이라고 . 이제부터 만들어줄게.”


라시며 명절마다 빠짐없이 메뉴에 추가하셨다. 덕분에 나는 서른이 넘어 어린 시절의 소울푸드를 다시 만났다. 이제는 어린 시절처럼 갈랍을 손에 쥐고 빙글빙글 돌리며 이로 갉아먹거나 가운데 고명만 뻥 뚫어먹진 못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손으로 만들어진 소울푸드를 한입에 딱딱 먹을 수 있다는 점은 큰 호사다. 그런데,


“오빠네 집은 명절음식이 다 처음보는 것들이야 난 동그랑땡이랑 생선전을 꼭 먹었는데.”

“그거야…집집마다 명절음식은 관습이 다르지. 그리고 내가 생선전을 별로 안좋아해서. 허허.”


 바깥양반의 경우는 좀 나보다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시집을 왔으니 시댁의 명절음식만 먹고사는데 자기가 늘 먹어오던 음식과 생판 다른 것이다. 게다가 차례는 지내지 않더라도 꿋꿋하게 혼자서 누나집과 우리집까지, 세 식구가 몇끼에 걸쳐 먹을 양을 명절마다 만드시는 엄마가 요즘 세상에 드문 경우이지, 진즉 바깥양반의 친정은 명절음식은 장을 봐와서 차리는 방법으로 바꾸어져있기 때문에 더더욱 스타일이 다를 수 밖에.


 하여 바깥양반은 몇번의 명절은 별 군소리 없이 먹다가도, 시어머니께서 한가득 싸주신 명절음식을 몇일 뒤에 꺼냈더니 저처럼 자신이 바라는 명절음식과는 다르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다만 이번에 동그랑땡이랑 생선전은 마침, 엄마가 조금씩 만들어주신 참이었다. 그래서 그걸 잘 먹었다고 콕 집어 엄마에게 전했더니 우리 최여사님께서는,

 대뜸 며느리를 위한 동그랑땡을 한됫박을 하시며 “야 동태전은 다음에 해준다혀.”란 말을 남기시고 마셨다. 여기까지나 저간 명절 때부터, 2월말까지 지나온 이야기. 그리고 나는,


 개학과 개강을 동시에 맞으며 대단히 굉장히 곤란한 평지풍파에 처해지고 있었다. 대학원 수업에 학교 야자감독에 교육청 출장에…일주일에 2일, 3일이 심야에 집에 들어가게 생긴 판인 것. 게다가 바깥양반이 다시 하루 종일 독박육아에 처하게 된 판이니 그럼 점심 한끼, 저녁까지 두끼를 혼자서 아이를 끼고 먹어야 하는 상황이 펼쳐져버렸다.


 이를 어찌할꼬 밥을 잘 차려먹도록 해주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을 하긴 했다. 점심 저녁거리를 만들어두고 아침은 함께 새로 지어먹고. 그렇게 한 2주는 버텼는데, 급기야는, 월수금 3일이 야근에 수업에 세미나로 완전 환상의 스케쥴이 잡혀버린 것이다. (더구나 이 시국에 나는 월화 이틀간은 하루 세시간도 자지 못했다)


 이를 어쩔.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충분한 메뉴를 나는 구비해야 할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일주일동안 맛있게 먹을만한, 그러면서도 질리지 않을…

 동그랑땡. 동그랑땡이라면 일주일간 내가 아무리 바깥양반을 외롭게 하더라도 조금쯤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런 그럼, 희망을 품고 나는 토요일에 바깥양반과 장을 봐 왔다. 두툼한 뒷다리살, 마침 장에 나온 달래, 제대로 된 두부라는 녀석까지.


 두부를 저며 물을 빼주고, 그 사이 속재료를 다져낸다. 돼지고기는 간 것을 사지 않고 뒷다리살을 다진다. 다리살에서 떼어낸 비계는 전을 부칠 때 쓰고, 살코지는 찌개거리와 카레거리로 따로 손질을 해서 소분한다. 달래를 대강 손질을 하긴 했는데, 향이 잘 나려나 아리송하다. 거기에 양파와 당근, 차례로 채썰고 다져서 후다닥, 충분히 두부 물이 빠짐을 확인하고 함께 모아 반죽을 시작한다.


 두부 비율이 좀 높은 것 같긴 한데, 두부가 맛나다면 상관은 없겠지. 소금을 넉넉히 붓고 참기름도 약간. 그럼 이제 지지는 일만 남는다.

 계란물과 부침가루를 준비해 반죽을 치대서 모양을 잡아 부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인데, 부침개 중에서도 동그랑땡은 미트볼처럼 두툼함이 특징이라 얇게 만들면 볼품이 없고 두껍게 만들면 굽는 게 오래걸리고 모양 잡기도 어렵다. 그래도 볼품 없는 것보단 큼직한게 좋지. 크게 간다. 그리고 퍽 시간을 들여 오래 오래 굽는다.


 원래부터 명절음식으로 만드는 전이라는 게 간소함과는 거리가 멀다. 명절에 김치전 부추전을 만들 일도 아니니, 요렇게 고기고명을 반죽해서 깻잎 옷을 입히기도…갈랍을 만들기도…버섯이나 고추에 넣기도 하고 하는 것이겠지. 개중에는 동그랑땡이 부재료가 없어 쉽지만 그만큼 특색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맛은 좋지.

 대여섯끼에 걸쳐 먹을만큼 동그랑땡을 만들고 나니 계란물과 부침가루가 남았다. 부침가루는 바로 재활용하기로. 갈랍을 만든다. 그런데 잘 되지 못했던 것이, 원래 흰 밀가루로 전을 부치고 그 위에 고명을 올리는데 밀가루가 아니라 부침가루라 생각보다 흰 색이 잘 안나온다. 분명 엄마가 만드는 건 이보다 흰데. 게다가 가운데 올린 고기고명도 원래는 가운데에 딱 모양이 잡혀있어줘야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온통 고명이 퍼져, 반죽에 깔리는 식으로 되어버렸다. 갈랍은 대강 실패. 엄마에게 갈랍 만드는 요령이라도 배워야 하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으니 혼자서 좀 고민을 해봐야겠다. 그러나…

 이제나 저제나 저녁상은 완성되었다. 내 소울푸드와 바깥양반의 소울푸드가 합쳐진. 여기에 밥도 새로 지어 따끈한 전과 함께 먹도록 하면, 동글동글 동그랑땡에 넙적대대한 갈랍이 함께, 각자의 소울푸드가 합쳐진 화평과 공존의 밥상이 되는 것인 것이다.


“다 됐어 얼른 와.”


 나는 바깥양반을 불러 식탁에 앉히며 밥을 푸랴, 김치를 꺼내랴 다른 반찬을 살피히랴 바쁘게 길고 긴 저녁준비를 마쳤다.


 길었다. 정말 길었던 것이, 일주일 간 바깥양반이 넉넉히 드시도록 카레도, 만들고 있었기 때문.


 동그랑땡과 갈랍 사이에,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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