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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19. 2022

상남자 특 : 이유식 내가 만듬

 이건 좀 특이한 문제다. 적어도 내가 속한 관계망 속에선 그렇다. 2022년 현재의 세태에, 이유식을 사다 먹이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따라서 그런 조언도 많이 듣고 있다. 이유식 사다 먹이면 편하고 좋지. 특히나 잠을 줄여가며 대학원 과제를 하고 있는 나와 같은 상황에서는 주변의 충분한 조언을 수용하여, 핑계거리 몇개쯤 붙여가며 이유식이라는 골칫거리 정도 피해나가는 일도 어렵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 바깥양반은 그리 하였다. 초기 이유식 몇번을 내가 너무 바빠 제때 만들어주지 못했더니 바깥양반이 알아서 과일 퓨레도 사고 이유식도 사다가 만들어주었다. 다만 프랑스산 뽐므 퓨레는 너무 시어서 아이가 한입 먹고 뱉었수왕. 한박스가 거의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데, 얼려놨다가 돌 지나면 애플파이라도 만들어주어야 할 판이다. 나머지, 뭐 이유식들이야 처음에 적응기간 동안 좀 아이가 칭얼댔을 뿐, 조금 시일이 지나니 끼니 때마다 거의 남기는 일 없이 싹싹 긁어먹이고 있다. 한번에 100cc 이상씩 먹이기도 하는데, 이제 쌀가루를 넘어서 흑미와 귀리 미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 70cc씩 하루 두번 먹이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이유식을 굳이 만들어먹어야 할 일일까. 이게 뭐 대단히 비싼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이유식을 만들지 않아도 바깥양반이 알아서 주문해 먹이지 않을까나 싶기도 하다. 평소에 내가 요리도 설거지도 다 하고 있으므로 이럴 때 책임을 떠넘기기 비교적 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아침.


  흐음. 나는 어제 불려놓은 귀리와 백미를 꺼냈다. 잡곡을 좋아하는 나는 꽤나 예전부터 귀리를 먹고 있었다. 바깥양반이 최근에 오트밀 이야기를 꺼내길래, 오트밀은 됐고 국산 귀리나 사서 만들겠다 하고 흑미와 함께 주문했다. 수입산 귀리는 정말 정말 저렴한데 국산은 그보단 비싸다. 그래도 싸다. 내가 좋아하는 톡 까지는 식감에, 높은 영양가에 비하면 정말이지 저렴한 가격. 현미에, 보리에, 백미에, 귀리를 섞고 거기에 완두콩과 서리태를 섞으면 밥 향이 아주 구수하니 맛이 좋다. 그러나 나는 귀리를 어른이나 되어서 먹어본 것인데, 동백이는 귀리를 돌도 되지 않아 먹어보다니 호사를 누리는구나 녀석. 다만 알러지 성분이 있다니 이번에 먹여보고 반응을 체크할 필요는 있다.

 불린 귀리와 백미를 한소끔 끓여서 한번 씹어본 뒤에 이쯤이면 되겠다 싶어서 갈고, 그리고 옥수수와 한우 조각도 끓여낸 뒤 간다. 옥수수는 손으로 알곡을 떼내었다간, 안쪽의 딱딱한 심도 몇가락 빠질 것 같아 그냥 칼로 주욱 밀어냈다. 그렇게 하고 가운데 줄기는 샅샅이 긁어먹는다. 초당옥수수가 탱글하니 달콤하다.


 이걸, 먹는단 말이지 녀석.


 귀리와 백미, 그리고 간 옥수수와 한우에 물 반컵을 더하여 이게 폴폴 끓이기만 하면 끝이다. 귀리와 쌀이 덜 갈린 부분도 조금 있고 해서 쌀가루 미음보다는 충분히 충분히 오래 저어주며 약불에서 끓인다.


 앞으로도 아마 이유식을 사다 먹일 일은 없겠지. 나는 이것이 "삶의 정수" 해당하는 일이라 믿는다. 요리란 그런 것인데,  입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사람답게 산다고   있지 않을까. 그럼 이게 힘들지는 않은가, 하면, 힘들진 않다. 노동으로 인식하지 않는 일에 고달픔이 있을 턱이 있나. 대신에,  다음에는 귀리와 쌀을 갈아낼  조금 양을 신중하게 해야겠군. . 옥수수한우귀리 미음은, 맛있군. 이런 것들을 배운다.


 이 얼마나 상남자시려운 삶의 방식인가. 이번에 만들어둔 이유식은 이틀 하고 반나절 분량이다. 아마도, 바깥양반은 하루에 두번 먹이는 계획에는 신실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므로, 아마도 4일쯤 뒤에 다음 이유식을 만들게 되지 않을까. 다음엔 뭐 먹이지. 흑미에 단호박, 닭고기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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