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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23. 2022

우럭포 조림

사실 맛은 없어요.

 나는 효자이기 때문에 이따금 엄마의 냉장고를 털어오는 것도 아들로서의 중요한 역할이다. 엄마는 나이를 먹고는 어디서 이것저것 쟁여오실 줄만 알지, 그것을 다 드시진 못한다. 시골에서는 셋째이모가 퍽 많은 음식을 보내주신다. 그중에는 싱싱한 게장도 있고, 불고깃거리도 있고 해서 결혼하기 전 부모님과 살 때는 게장주간을 갖는다거나 즐거운 일이 많았지만 이제 그렇게 먹어치워파티를 할 아들네미가 집을 나갔으니, 냉동실에 꽉 찬 음식은 부모님 두분의 식사만으로 소진되지 않는다. 애초에 엄마나 아버지나 집에 잘 계시지도 않을 뿐더러. 

 

 그리하여 일전에 집에 들렀다가 냉동실에서 우럭포를 꺼내왔다. 우럭이 흘러넘치는 태안에서 흔하게 먹는 음식이다. 포를 내서 말려두었다가 무 약간 넣고 한소끔 끓인 뒤 청양고추 살살 썰어넣으면 그 국물도 맛이 있고, 살집이 있는 놈으로다가 찌면 그것도 괜찮다. 일전에, 태안에 꽃게를 먹으러 갔다가 아침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우럭포찜이 반찬으로 조금 나왔다. 우럭 한마리에서 포를 내서 찜을 할 살점이 많지 않은데 그래도 손가락 정도 되는 실한 놈이었다. 셋째이모가 보내주시는 우럭포는 그렇게 해서 살을 발라내고 남은 놈들을 집에 와서 끓여먹고 하다가 언니들과도 나누는 것인 모양이다. 살점은 별로 없다. 대신에 뼈에 붙은 놈을 살살 발라먹는 재미는 있다. 


 하여 한동안 엄마는 우럭포 찜으로 국물을 자주 끓이셨다. 그리고 어느날 나는, 이대로는 먹기가 통 지겨워서 조림을 하기로 했다. 

 방법이야 간단하다. 생선조림을 한다고 생각하고, 무를 넉넉히 끓인 다음 갖은양념을 해서..요즘 백종원 생선조림이라 검색하니 레시피가 나오더만. 할튼 한소끔 끓여내면 된다. 우럭 자체가 맛 좋은 생선에, 그걸 바싹 말려서 액기스가 우러나와 있는 녀석이니, 양념만 잘 해서 졸여놓으니 밥도둑이다. 짭쪼름 그 자체랄까. 엄마는, 내가 해놓은 엉뚱한 짓을 보시더니 솥에서 밥을 꺼내어 맛나게 드셨다. 이런 생각을 어찌 했느냐며. 뭐 어려울 것이 있는가. 그냥 생선조림이다~ 생각하고 한 것이지. 매일 같이 흰 우럭국물을 먹는 것도 지겹고 했으니까. 


 그것도 벌써 6,7년은 된 이야기다. 그간은 우럭포를 먹을 일이 없었다. 집에 들를 때 엄마가 들려주는 음식 중에 우럭포는 없었다. 왜 없었는가 하면, 엄마는 다른 걸 챙겨주고 싶어하셨으니까. 이번에도 엄마가 여름이라고 열무김치를, 초여름에 난 그 야들야들한 열무로다가, 또 해서 주셨는데, 나는 바쁘고 바쁘고 또 바빠서, 전화를 받은지 3주가 지나서나 집에 들렀다. 어쨌든, 다른 집은 딸년이 도둑질 한다는데, 이 집 아들은 아들놈이 도둑질을 한다. 내가 집에 가면 꼭 하는 일이 냉장고 검사. 그러다가 이번에 또 우럭포가 걸려들었다. 엄마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있는 녀석. 


 물론 나도 그걸 가져와서는 한동안 잊고 있었다. 아니, 잊고 있었다기보단 외면하고 있었다. 막 우와아아아! 맛있어어! 하는 음식은 내게 또 아닌지라. 다만, 뭔가 특별한 걸 먹고 싶을 때. 짭쪼름하고 쫄깃하고 시원하면서 달달한 뭔가를 먹고 싶을 때. 그럴 때는 한번, 해먹어볼만 하지. 

 무를 끓이는 동안 우럭포를 잠깐 씻어서 불린다. 셋째이모가 한번 쪄서 보내신 것인지 양념이 좀 되어있다. 살살 씻어내면서 대파와 양파를 다듬는다. 그리고 차곡차곡 무 위에 올리고, 대강 양념을 한다. 다진 생강, 고추, 고춧가루에 고추장, 간장. 사실 우럭포 조림이, 우럭포에서 시작되고 우럭포에서 끝나는 요리다. 원래 그 자체의 맛이 강해 양념이 할 일이 없는 요리인 것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냉장고에서 관리가 잘 되지 않아 군내가 난다. 그걸 매콤한 양념으로 감추려는 시도이기도 한데, 원래 관리가 잘된, 신선한 상태의 우럭포라면 정말로...정말로...밥도둑이다. 


 설거지를 하면서 저녁상도 차리면서 오며가며 계속 국물을 덮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엔 챔기름을 넉넉히 부어준다. 이것도 군내를 좀 잡기 위한 조치다. 흐음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에 씻어서 불릴 때 냄새를 잡을 걸 그랬나 싶지만, 집밥이니 또 어때. 챔기름 냄새 솔솔 풍기는 생선조림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우선 나에겐 우럭포란, 멀어진 집밥에 대한 향수이니까. 맛으로만 먹는 음식은 아닌 것이다. 

 이 냄비 안에, 아마도 가족이 있고 아마도 삶도 있을 것이다. 왹, 다시 말해 엄마의 고향에서, 셋째이모가 올려보내주는 우럭포. 그 택배상자 안에 참으로 여러가지 음식들이 당겨 철마다 나를 배불렸다. 맛있게도 말이지. 엄마는 퇴근하고 고단한 몸으로 집에 와서 자정을 넘겨 이따금 밥을 드시곤 하셨다. 그럴때는 시골에서 어릴 때부터 먹던 우럭포 국물이 심심한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어느날 아들네미는 이걸 매콤달달하게 양념을 해놓았고, 엄마는 기쁘게 한끼를 드셨다. 아마도 이것이 인생, 이지 않을까. 


 나에게 우럭포 조림은, 아직까지 내가 아들 구실을 잊지 않았다는 의미다. 내가라도 냉장고를 한칸 비워드려야 엄마가 또 채우시겠지. 걱정은 안해도 되는 것이 셋째이모도 엄마도 건강들 하시다. 내가 꺼내다가 해치워야 할 음식들이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말이다. 


 오늘은 글쎄...비가 오는데 이런 날, 무쇠솥에 뜨끈하게 밥 지어 거기에 우럭포 조림 한조각. 이거 이거 못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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