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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l 21. 2022

그냥 족발냉채가 먹고싶었다.

족발은 아니지만 앞다리 졸임으로라도.

 퇴근시간이 다가오면서 나는 바깥양반에게 저녁 메뉴 의견을 물어봤다. 각자가 고생한 하루다. 바깥양반은 아기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다녀왔고, 그 과정에서 땀을 한바가지씩 매일 흘린다. 나는 오류동까지 출장을 다녀왔다. 학기말 특색활동으로 일주일 동안 가혹한 육체노동을 한 뒤였다.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기업가정신, 사회적경제 관련 교육활동으로 이번 학기에 커피 로스팅 및 원두 드립백 제작 실습을 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신청학생들을 따로 받아서 진행될 줄 알았던 프로그램이, 학급 단위로 담임과 부담임이 한개 학급에 대해서만 진행하게 되었다. 원래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20여명 모았으면, 내 지도의 수고도 덜어지련만, 천차만별의 진로 흥미를 지닌 아이들 한 학급을 묶어서 커피 로스팅 및 드립백 제작,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사회적경제와 기업가 정신의 함양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려니 내 몸이 둘 셋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하루에 대여섯시간씩 몇일을 서서 교육활동을 하니 발가락이 다 아프다.


 뭐 그런 것도 교사의 책무려니. 겨우 겨우 활동을 마치니 바로 다음날, 의정부에서 서울의 오류동까지 퍽 먼 거리에 출장을 가야 한다. 다행히 출장은 오후 다섯시가 되기 조금 전 마쳤지만, 학기말 생기부에 특색활동에 출장까지 몸은 지치고, 그 와중에 집에 가서 저녁 먹거리를 고민하려니 뭔가 갈증 같은 것은 생겨난다.


 오늘은, 뭔가, 맛깔진 걸 먹어야겠다고.


"시원한 거 먹어요 그냥."


 마침 바깥양반은 자신도 피로감을 제법 느끼고 있기에 생각만 해도 기운 빠지는 뜨거운 음식 말고 무언가, 시원한 음식을 주문해 주었다. 오늘 우리 따님께서는 새벽 3시 40분에 일어나 한시간 가량 놀다 주무셨다. 그래서 마침, 컨디션이 더욱 난조다.

 의정부로 돌아와 집에 가기 전 마트에 들렀다. 족발을 사려고 했지만, 그러니까, 시판 족발이 아닌 생족발을 사는 것은 실패. 냉채족발이 땅기는데 시판 족발을 사기는 싫고, 그래서 족발을 만들 참이다. 족발을 해먹어본 경험도 이미 있다. 첫째조카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내게 족발을 고와서 가져오라고 시킨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황당한 일이 터졌는데, 나는 엄마가 족발을 고와오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온갖 양념을 곁들여 정말로 그 족발을 만들어서 누나에게 가져다 줬고, 누나는, 모유 수유를 위해 그 족발을 먹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 뭐 덕분에, 족발을 집에서 해봤고, 또 족발이 없는 때에 이렇게 앞다리살로 뼈없는 족발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다만, 족발의 미덕은 그 힘줄이 만들어내는 탄탄한 식감인데, 대체재로써 앞다리 살은 그 힘줄이 없어서 꽝이다. 어쩔 수 없지. 애초에, 족발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냉채를 먹고 싶은 거다. 해파리는 없지만. 짭짤한 족발에 매콤한 겨자소스 하나면 된다. 그 정도면 시원하고 후련한 하루의 마무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집에 오니 아이가 놀아달라고 난리다. 우선 앞다리 살을 찬물에 담가 피를 빼도록 두고 아이와 한참을 놀아준다. 9개월 난 아이는 지금 한창 신난 나이. 하루 종일 시달린 바깥양반은 겨우 내가 온 덕에 쉬기 시작한다. 아이 이유식을 인내심을 갖고 다 먹인 뒤에는, 이제 드디어 저녁을 차린다. 시간은 이미 8시를 넘긴 시간. 우선, 그 사이 충분히 핏물이 빠진 다리 살을 팬에 굽고, 돼지기름을 낸다. 그리고 그 위에 대파를 구워서 파의 풍미를 돋워둔다. 마이야르를 돼지와 대파에 일으킨 뒤에 졸이는 방식이다. 특히 대파는 구워야 단 맛이 제대로 나온다. 


 아이를 샤워통에 넣어두고, 바깥양반에게 맡긴 뒤에 본격적으로 저녁 차리기다. 대파가 좀 구워진 뒤에는 구워서 빼뒀던 고기를 올려, 압력을 더해 대파를 완전히 익힌다. 그리고 나서는 미리 만들어둔 양념장을 붓는다. 생강과 마늘, 토종간장과 설탕을 집에 오자마자 앞다리살을 찬물에 담구면서 따로 끓여둔 상태였다. 이제 이걸...양념을 부은 뒤, 계피가루, 그리고 간을 봐가며 간장과 설탕을 더 넣는다. 

 그런데 그럴듯한 색과 맛을 내려니, 점점 간장도 더, 설탕도 더 들어간다. 다행히도 쌔까만 엄마표 토종간장이라서 간장은 다른 소스나 커피 따위를 넣지 않아도 정말 예쁜 색이 나고 있지만, 맛을 내기 위한 설탕은 그렇게 적당히란 게 안된다. 설탕을 붓고 떠 붓고, 또 부으며 시판 족발에 가까운 맛을 내야한다. 집에서 족발을 해먹는 가장 큰 난관을, 어지간히 설탕을 부을 각오 없이 그 맛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랄까. 


 나는 중간 중간 고기를 잘라 맛도 보며, 간을 조정한다. 중간쯤엔 비계가 붙은 쪽의 살집과 완전 살코기를 잘라서 마저 익힌다. 그 사이 아이는 목욕을 마쳤고, 바깥양반과 함께 아이를 단도리한 뒤, 다시 주방으로. 바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그런 삶에 이런 일을 매일 하는 것도 어지간한 일이긴 하다만.

 마트에서 쌈야채를 함께 사왔다. 족발 감칠맛에 어우러지는 겨자잎, 치커리 등 향이 강한 채소들을 주로 골랐다. 살 땐 몰랐는데 썰어놓고 보니 제법 양이 된다. 절반 정도만 접시에 올렸고 나머지는 남겨서 봉투에 넣었다. 이걸로...내일 아침은 비빔면! 


 야채까지 깔고 나니, 어느새 긴 요리의 끝이 다가온다. 해파리 냉채가 없는 건 아무래도 야매이지만, 족발이 제대로니까 괜찮아. 해파리가 꼭 있어야 냉채인 걸까? 하며 나는 간장, 설탕, 또 설탕!? 이런. 어쨌든 설탕, 그리고 겨자를 섞어 소스를 만든다. 그리고, 고기를 꺼내서 냉동실에 잠시 식힌 뒤 드디어 썰어, 접시에 올린다. 


 완성. 

 호두를 부숴서 데코를 하고, 동치미를 꺼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아이는 옆에 앉혀두고, 우선 장난감 몇개를 쥐어준다. 아쉽게도 베이비시트 위의 장난감은 5초도 안되어 아이에 의해 바닥에 떨어진다.


"으 야채 써."

"쌈야채 중에 내가 좋아하는 거만 넣어서 그래."


 여기 아이 하나가 더 있는 것 같은데...뭐 상관없다고 할까. 다행히, 겨자향이 강하진 않았다. 쌈야채 향이 강했던 것, 그리고 해파리가 없었던 것 정도가 걸리긴 하지만, 그냥 먹고 싶어서 만들어본 것 치곤, 이쯤이면 좀 훌륭한 저녁식사 아닐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그런 일이란 건 없을 것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지난 일주일 간 날 어지간히도 괴롭힌 커피 수업도, 오늘의 출장도 없엇을 것이고...이 냉채족발도 없었을 것이다. 뭐라도 했으니, 거기에서 의미는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남은 야채들은 비빔면이 되고, 남은 돼지고기 족발양념 조림은 내일의 반찬이 되겠지. 


 그래서 의미있는 한 주, 의미있는 하루, 그리고 의미있는 한끼 식사다. 


 아이는 우리가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대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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