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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Dec 23. 2021

과제를 하던 남편이 새벽에 마트에 간 까닭은,

육회비빔밥 굴생채 간장수육!

"앵, 어머니 오셨어요?"

"응 수달이 아프대서."

"엄마가 갑자기 오셨어 오빠."


 퇴근을 하고 오니 뜻밖에도 장모님께서 집에 오셨다. 바깥양반이 갑자기 심한 몸살감기가 와서 이틀 정도 꼬박 심하게 앓고 난 뒤다. 다행히 오늘 아침 코로나 검사는 음성으로 결과를 받았다. 주말에 추운 날에 밖에 오래 서 있더니, 그만 뼛골까지 시린 추위에 몸의 체력이 확 빠졌던 탓. 


 어쨌든 장모님의 방문은, 여러모로 나에게도 바깥양반에게도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이틀 동안 나는 "남편탕"이라고 부르는, 내가 손수 만든 대추청에 시어머니께서 손수 만든 편강에 꿀, 홍삼가루를 탄 따듯한 차를 바깥양반에게 진상해드렸다. 어머나 스윗한남편이야-가 아니라, 동백이를 돌보랴, 거기에 몸져누우신 바깥양반까지 돌보랴, 정말 몸이 두개여도 부족하리만큼 바쁜 상황이었던 데다가 이번주가 대학원 과제 마감이다. 나는, 학교업무에, 생기부 기재에, 그 와중에 별도 보충에, 동백이와 바깥양반 두 사람을 돌보는데, 정말이지 혼비백산할만큼 힘든 상태였던것. 그 타이밍에 장모님께서 연락도 없이 불쑥, 동지팥죽까지 들고 방문해주셨으니 그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저녁을 어찌어찌 해먹고 나서 나는 바깥양반에게 말했다.


"아 나 그럼 어머니 계신 동안은 과제에 좀 전념할 수 있겠다."

"응. 이브날 전까진 오빠 과제 집중해. 엄마랑 내가 동백이 볼게."


 다행히, 이틀을 앓고 난 바깥양반은 건강을 상당히 되찾은 상태.

디스 이즈 남편탕. 계피랑 생강은 서로 향을 죽여서 궁합이 좋지 않지만, 몸을 따스하게 하는 성분들이라 건강에는 찰떡!

 그러나 바깥양반이 건강을 되찾고 나니 그것은 그것대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거실에 가족을 두고 나는 내 방에서 과제를 위해 논문을 읽고 있는데, 


"오빠아 엄마 보쌈 드시고 싶으시대. 저번에 했던 거 해줘."

"보쌈?"


 여기서 "저번"이란, 지난달에 있었던 동백이 손님맞이였다. 바깥양반의 친지 두 부부가 집에 방문해서, 마침 그 전주가 바로 김장날이었기 때문에 나는 새 김장김치에 수육을 대접했드랬다. 바깥양반은 그날 식사를 정말 만족했고, 유별나게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정말로 제대로 보쌈수육을 하겠다고 내가 배추도 따로 반포기를 직접 절이고, 굴생채까지 만들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건 비밀인데 나는 나만의 수육 레시피가 따로 있어서 그날 와서 먹어본 손님들이 모두 놀라하면서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마침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바깥양반과 장모님은 함께 TV를 보던 중. 그리고 TV에서 보쌈김치가 나온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때 그 밥상을 원한단 말이지...


"그럼...내일 해야지. 이따가 마트 다녀올까?"

"마트 지금 열어?"


 시간은 열시반.


"어...저기, X마트는 24시간이라."

"진짜? 내일 안다녀오고?"

"으응. 나 과제 하던 거 좀 정리하고...24시간인데 뭐. 밤에 다녀오는 게 낫지 차도 안막히고."

"응 그럼 얼른 과제 해요."


 그래서 나는 새벽 1시까지 충분히 과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중간에 동백이 샤워를 한번 시켜주고, 남편탕을 정기적으로 바깥양반에게 리필해드리는 정도의 소소한 사무는 있었지만. 그래서 계획된 것보다 초과한 분량의 과제를 작성한 뒤 집을 나섰다. 예정대로 삼겹살 800그램정도, 껍질붙은 녀석으로. 그리고 눈에 보이는대로 집은 돼지껍데기, 온 김에 산 찌갯거리용 뒷다리살, 충동구매를 해버린 육회. 굴과 양파. 육회의 경우엔 바깥양반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더니 당연히 바깥양반이 거절할 리가 없다. 육회 500그램 가량에 3만원의 추가 지출이 생겼지만, 이만하면 장은 잘 봤다. 

 아침. 콩밥을 짓고나서 가족들이 모두 깨고 나자 밥을 차리기 시작한다. 냉장고에 있던 치커리와 깻잎까지 동원해서 육회에 포장되어 있던 양념장. 그리고 참기름. 그리고 김. 그리고 계란. 쉽고 편한 요리다. 비싸서 문제지만 한우 육회를 취급하는 마트가 있다니 이리 고마울 수가 없다. 두해 전에는 육회비빔밥을 먹겠다고 냉동 우둔살을 받아와서 요리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 육회로 같은 요리를 하고 있다. 성장했다. 3만원 어치 육회로 3인분의 비빔밥을 만들려니 게다가 상상 이상으로 육회가 비율이 높아만 진다. 하나만 샀어도 괜찮았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밥과 고기의 비율이 1:2 정도가 되었는데, 육회를 한 팩만 샀더라면 1:1 정도의 비율은 되었을 성 싶다. 어쨌든 이번에 해봤으니 언제든 또, 즐겁게 해먹을 수 있겠다.


"너무 많아. 너 먹어."

"오빠 얼른 와."

"응. 먼저 드세요."


 적당히 균등하게 비빔밥들을 나눠담으니 장모님은 바깥양반에게 밥을 좀 더 준 모양. 나는 계란 노른자를 각각 올리고 대강 흰자도 구워서 고명으로 올린 뒤, 밥상에 앉기 전에 내 할 일을 했다. 육회비빔밥은 충동구매로 빚어진 요리일 뿐이고, 오늘의 본론, 저녁 밥상의 주인공들은 따로 있으니.

 나는 무 한토막을 잘라 채칼로 썰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손님맞이 때는 좀 굵게 썰었었다. 덕분에 생채의 매력이 좀 적었다고 해야 할까. 한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이번엔 제대로 할 차례다. 굵은 소금으로 재워놓은 뒤, 굴을 씻어서 채반에 받치고 방금 먹은 아침식사의 설거지를 한다. 아점을 먹고 치운 뒤 또 저녁거리를 하는 유기적인 살림. 


 앞전에 장모님께서 오셨을 적엔 마트에서 4천원 안되는 값에 간고등어 한손을 사와 조림을 했다. 아 그게 정말 맛있었다. 집에 와서 조림을 올린 뒤에 밥을 지어, 갓 지은 고슬한 콩밥에 갓 졸인 고등어조림이라니! 얼마나 맛이 있었느냐면, 우리가 마트를 다녀온 사이에 식사를 먼저 하신 장모님께서 숟가락을 들고 오셨을 정도로. 오늘은 그보단 전반적으로 비싼 밥상이긴 하지만, 손도 많이 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알뜰살뜰, 내 손으로 빚어지는 상차림들이니 비싸면 비싼대로, 저렴하면 저렴한대로 좋다. 아 이 무가 고등어조림을 할 때 산 무다.


 생채에 넣을 굴은 씨알이 좀 작은 서해 굴이 좋은데 시장이 아니면 마트에선 구경하기 어렵다. 마트는 대개 씨알이 굵은 남해 굴을 판다. 소비자들도 그게 좋은 줄 알고 사는 모양. 그러나 어리굴젓을 만드는 서해 굴이 향이 진해서 좋다. 새벽에 장을 보러 갔을 때도 고흥산 굴인데 씨알은 그냥저냥하다. 마트에서 육회를 산 것은 수확이지만 서해굴이 아닌 것은 아쉬움. 그러나 어쩌겠는가. 굴이 적당히 물이 빠졌으니, 마늘 다져, 식초 톡톡, 액젓 톡톡, 그리고 고춧가루 우수수 해서, 버무린다. 그리고 저녁 때까지 냉장고로 톡.

 그리고 이제 저녁시간이 되어 나는, 온라인 수업으로 보충을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바깥양반이 마음에 쏙 들어했던 내 비밀 수육 레시피. 산후 마사지사 분께서 방문중이시다. 거실은 마사지사님과 바깥양반에게 점령된 상태인데, 미리 양해를 구했다. 지금부터 저녁거리를 차릴 것이라 냄새를 피울것이라고. 그랬더니 마사지사님은 내가 바깥양반에게 말을 거는 줄로 오해를 한 모양이다. 거듭 사모님 자유 사모님 자요를 말씀하신다. 아니요 마사지사님...선생님께 양해를 구합니다. 


 내 비밀레시피라는 게 참으로 별것은 아닌 것이...그냥 흔한 족발국물 흉내다. 간장에 계피, 설탕에 생강, 그리고 마늘. 계피 정도만 챙기면 누구라도 집에서 흔히 해먹을 수 있다. 수육을 이렇게 만들기 시작한 게 누나 첫아이가 생기고 나서인데, 당시 우리 엄마 최여사님께서는 글쎄 나보고 누나 젖이 잘 돌도록 족발을 삶아 오라는 령을 내리셨다. (무서워) 하여 나는 엄마의 명대로 집 냉장고에서 족발을 꺼내, 그것을 삶기로 했는데...족발이니까 자연스럽게 나는 맛있게 삶아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간장에 홍고추에, 말도 안되는 "맛난"요리를 해서 가져가버린 것이다. 당연히 수유를 위해서는 먹을 수 없는 요리가 되어버렸고, 다만 나는 혼자서 얼렁 뚱땅 집에서 족발의 흉내를 내는데에 성공했다. 그 뒤로 족발국물을 응용한 보쌈을 왕왕 했었고, 지난번 손님맞이 때도 선보였던 것. 

 일단, 오겹살을 사다가 적당히 썰어서 마늘과 대파와 함께 굽는다. 돼지기름으로 대파와 마늘을 구워 풍미를 돋우기 위해서이지만, 꼭 해야 하는 절차는 아무래도 아니다. 이게 맛을 그리 낫게 할까? 잘은 모르겠다. 애초에 겉면에 조금 코팅을 하는 정도의 조리법이다. 그보단 먼저 충분히 생삼겹을 구워 마이야르를 일으키는 게 좋다. 이렇게 하면 고기가 질겨지는 단점은 있지만 수육의 재미없는 식감을 벗어나 더 탄력있고 쫄깃한 맛을 만들 수 있다. 질겨서 문제라면 그냥 뚜껑 닫고 좀 오래 삶으면 되는 일이고. 

 그 다음. 전후좌우 충분히 구워진 삼겹살을 굽던 그대로 물과 간장, 액젓 약간(생채에 액젓을 넣고 안치웠었다.), 설탕, 계피를 넣고 졸이기 시작한다. 아차 생강. 남편탕에도 쓰고 있는 편강을 가위로 잘라서 한줌 정도 넣었다. 이렇게 하면 너무 짜지도 않고 너무 달지도 않고 색깔은 캐러멜 소스 없이 그대로 갈색이고, 풍미와 향까지 그득한 수육이 만들어진다. 고기 겉면을 구운 뒤 삶는 것이라 시간을 잘 조절한다면 속은 부드럽고 겉은 쫄깃한 그런 요리가 만들어질 테다.


 그 사이에도 나는 바쁘다. 이리 저리 오가며 자리로 와 업무도 보고, 집안일도 거들어야 한다. 이쯤까지 하니 마사지도 끝나서 인사를 드리고, 김치도 썰고 생채도 꺼내고...바쁘다!

 고기를 여러번 뒤집어서 졸여주다가 이제 국물이 맛깔진 색깔로 물들어 갈 때 어제 함께 산 돼지껍데기를 좀 썰어서 넣었다. 원래 이러려던 건 아닌데, 생각해보니 엄청 좋은 레시피잖아. 원래 일반적으로는 돼지껍데기는 이런식으로 조리해서 먹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만이 남았다. 그 사이 나는 마사지사님이 떠난 뒤의 거실을 한번 죽 대걸레로 닦았다. 안방도, 주방도. 아이가 생겨서 뭐든 부지런해진 삶이지만 청소야말로 그렇다. 집안 구석구석 걸레질을 하고 나니 이제 소스가 보글보글 끓는 것이 자작하게 졸여졌다. 이제 꺼내기만 하면 된다. 

 지금 한창 맛있는 새 김치, 그리고 오늘 막 만든 굴 생채를 접시에 담고, 다른 그릇엔 고기들을 꺼내서 썰어 담는다. 뚜껑을 닫지 않아서인지 고기가 속까지 부드럽게 익혀진 상태는 아니다. 설익은 것은 아니되 지금 항창 탱탱한 상태의 삶은 고기랄까. 그러나 그래서 좋다. 지금이 딱 좋다. 김치도 생채도, 그리고 수육도 갓 조리한 신선한 맛으로 먹는 기분이다. 


 나는 거실 식탁에서 먹자고 했지만 바깥양반은 셋이 쓰기엔 좁다며 거실로 옮기자 한다. 별 수 없지 뭐. 접시들을 휘리릭 거실의 작은 접이식 상에 올린다. 그래놓고 밥상을 탁보니, 졸인 마늘에 돼지껍데기 하며, 이 아니 예뻐. 그리고 싱싱함 그자체인 굴 생채에 새김치까지. 얼마나 좋아. 


 아직 나의 과제는 끝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크리스마스 내내 끼고 있어도 모자랄 판. 그러고 나면 이제 과제를 또 열심히 써야 한다. 


 그러면 또 어때. 이렇게 하루가 또 간다. 다음에도 맛있는 음식 한끼, 그리고 새벽에 혼자 슥 나가서 장 한번 보고 나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뜨겠지. 그러고나면 또 하아. 내년엔 마흔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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