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겨울에 올 것.

겨울 속초 반달살이(7)

by 공존

가평 읍내 한가운데에 송원막국수라는 집이 있다. 50년은 족히 묵었을법한 건물에서 수십년 막국수를 판 맛집으로, 시나브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이제는 여름에 줄 서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간장양념이 적절히 배합된 그 맛은 뭐랄까 외할머니께서 어릴 때 삶아주던 그대로의 진미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막국수에서 기대하는 것이 그대로 담겨있다.


또 한편으로 춘천댐 닭갈비 거리를 빠져나와서 시골길을 타고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유포리 막국수가 있다. 동치미를 한 양푼 가득 내어주는데 달지않고 시큼한 옛날 스타일 그대로다. 시큼한 그 맛에 입맛이 자꾸 당겨 1인분 막국수 한그릇에 배가 가득찬다. 내 좁은 식견에 이 두곳, 그리고 오늘 간 백촌막국수까지 셋이 최고의 막국수집이다.


물론 세상에 맛집은 많고, 지역마다 쟁쟁한 막국수집은 많다. 당장 홍천에 장원막국수 남한산성에 고기리막국수 주문진에 대동면옥 등등등. 인제의 남북면옥처럼 순한 곳 설악면의 금강막국수처럼 참기름향이 고소한 곳 등 막국수 하나로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볼 이유가 되기도 하지. 허나 메밀이라는 거친 음식을 고유한 향으로 즐기기엔 송원이나 유포리, 백촌처럼 욕심 부리지 않는 식당들이 가장 좋다.

고성의 백촌막국수는 이미 이 지역을 평정하다시피한 유명식당이다. 낡은 옛집을 대강 수리해서 안방과 건넛방에 손님을 받는데, 영업방식도 전통 그대로에서 변하지 않아 성수기에는 서너시간 대기를 하거나 그냥 먹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가야 한다. 식당 공간보다 몇배나 큰 주차장이 백촌막국수 주변에 흩어져있는 시골 식당. 우리는 두 해 전 여름에 처음 왔다. 처음엔 휴무라서 아예 먹질 못했고 준비를 단단히 해서 다시 갔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대기시간은 받았으나, 결국 먹는데 성공. 그리고 오늘은 평일, 겨울, 점심을 이미 꽤 시간이라 적당히 한산해서 대기 없이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곱배기 하나, 수육 하나 시키자 여긴 수육 먹어야돼."

"곱배기 하나? 응 그러자."


곱배기가 9천원, 수육이 2만5천원. 이래야 말이 되지. 주문하고 얼마 안가서 반찬이 깔리고 수육이 나왔다. 허투루 삶지 않은, 잡내 하나 없고 부드럽기가 그지 없는 훌륭한 요리다. 이 수육이 얼마나 깔끔한가 하면 곁들이로 마늘과 파도 나오지 않는다. 백김치, 명태회무침, 백열무김치와 함께 먹으면 되고 양념장에 겨자를 섞어서 먹어도 된다.

그리고 주인공인 막국수. 곱배기로 면이 두덩이가 나와, 앞접시를 받아서 바깥양반이 내것을 먼저 하나 말아주었다. 이렇게 수육 하나에 1인분 막국수 두개가 각각 만들어졌다. 그런데 수육도 맛이 좋지만 막국수가 정말이지 훌륭하다는 것은 면을 말기 위해 살살 풀어보며 젓가락에 전해지는 감촉으로 이미 안다. 얇디 얇은 면이 그야말로 섬섬옥수다. 씹어보면 그대로 후두둑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것이, 녹말가루 한술 안들어간 100% 순메밀임이 명확한데, 어찌 이리 얇고 부드럽게 면을 삶아냈을까. 게다가 그 늘씬한 면을 미처 다 풀어서 말지 못하고 대강 동치미국물에 적셔서 입에 담는 순간, 메일의 달고 구수한 양이 입과 코를 가득 채운다.


이것이 백촌막국수를 반드시 겨울에 와야 할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메밀은 겨울에 수확한다. 겨울에 신선하다. 원래부터 겨울에 먹어야 하는 음식이니 막국수 투어를 한다면 겨울이 최상. 게다가 이때쯤엔 유명한 막국수집들에도 손님들 발길이 확 줄어든다. 여름엔 서너시간 기다리는 맛집도 겨울 이 시기엔 차를 세우고 3,4분만에 수육을 받을 수 있다.


겨울에, 시원한 막국수 국물, 살얼음 보스라기가 그대로 살아있는 막국수를 한 입 가득 입에 넣어 산미를 돋운 다음 따끈하고 부드러운 수육에 명태회 한점, 백김치 한점 올려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그 이상의 미식 경험이란 존재할 리 없다.

"잠시만요 반찬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우리가 말 없이 먹고 있는데 점원이 와서 반찬을 갈아주고 간다. 세상에나 명태회가 복사가 되어버렸다. 한 여름 성수기에도 셀프로 리필을 해먹을 수 있는 정도일뿐, 친절도의 차이일 뿐이지 명태회무침이며 백김치 두종이며를 추가 비용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 게다가 겨울엔, 이렇게 친절하게.


"아 배불러."

"더 먹어. 남기면 아깝잖아."


국물까지 싹싹 막국수를 긁어먹으니 곱배기 하나를 둘로 나눈 것만으로 이미 배가 부르다. 부지런히 김치들까지 곁들여서 수육을 먹으니 고기가 몇점 남았는데도 둘이 배가 부르다. 남기기엔 너무 아깝고 너무 맛있는 음식이다. 그런데 이때 마침 명태회무침도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점원께 명태회무침 조금만 더 주실 수 있냐고 물으니 순식간에 멀쩡한 접시를 하나 가져다 주었다. 세상에나 이런.

어떤 음식블로거는 세상에 반드시 기다려 가며 먹을 식당은 없다고 말했는데, 나는 견해가 다르다. 단지 음식의 맛 뿐만 아니라 친절함이나 디테일 등에서 다른 집에서 흉내낼 수 없는 식당도 여럿이다. 백촌막국수의 경우 낡은 구옥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고집에서부터 겨울에나 여름에나 변하지 않는 친절한 접객이(지난 여름에 방문했을 때도 나쁜 기억이라곤 없었으니.) 그 유명세를 더욱 빛나게 한다.


알고보면 속초의 유명한 요리들 태반이 겨울에 먹기 딱 좋다. 황태, 대구, 막국수, 칼국수. 어쩌다보니 물회도 번번이 겨울에 와선 먹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설경이 있지. 어제 폭설을 뚫고 달려온 덕분에, 우리 가족은 겨울 해안의 설경과 함께 아침을 맞았다.

지난밤 속초엔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무겁게 내려앉은 구름 속에 눈이 잔뜩 내렸다. 아침 여명과 함께 바라보니 이토록 아름답기까지 하다. 창밖을 한적하게 바라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커피를 내린다. 어제 볶아온 커피. 아직 충분히 가스가 빠지고 숙성되진 않은 상태지만, 볶은 그날, 혹은 다음날 이렇게 한잔씩 내려먹는 재미에 또 콩을 볶기도 하는 것이지.


일찍 나가기로 했다. 어제 내가 서울에 다녀오느라 못 놀아준 것도 있고 해서, 벌충을 해야 한다. 그리고 혼자서 속초와 서울을 오가며(물론 장모님과 처제를 모시고 가긴 했지만) 이리 저리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조금 더 아내 아니 바깥양반에게 잘해야겠고, 아이를 우선으로 해야 하겠다는 생각.

아침은 속초에서 고성 넘어가는 언덕배기 아래 자리한 설렁탕집에서 먹었다. 이렇게 한그릇이 만원인데 지역 주민들이 아침에 또 한바탕 들어왔다 나간 모양인지 우리가 방문했을 부렴 꽤 많은 사발들이 식당 안에 쌓여 있다. 속초가 관광지화되다보니, 좀 물가가 우스운 측면이 있는데 저렴한 음식의 대명사인 순대국이, 별미순대국의 경우 1인분에 9천원인데 한우로 고아낸 요 설렁탕이 만원이다. 어떻게 봐도 순대국 먹을 양이면 천원 보태어 설렁탕을 먹는 게 낫지 않나? 아니면, 그 돈 그대로 아바이 마을로 가서 홍게칼국수를 먹어도 되겠고.


설렁탕집에 오는 길목은 온통 쌓인 눈으로 진창이 되어 있었는데, 아침에 하얀 눈을 보고, 그리고 식당 창 밖으로 또 하얀 눈을 바라보며 뜨는 이 뽀얀 국물은, 이 또한 겨울이구나.


겨울, 반드시, 겨울에 올만한 곳. 겨울에 생겨난 우리 아이도, 흰 눈과 함께 푸른 하늘, 파아란 바다와 함께 자라난다.



백촌막국수

막국수는 장사 오래한 낡은 집에서 먹는 게 좋다. 말끔한 새건물에서 먹는 음식도 물론 좋다만 그런 곳에서 먹을 음식이 따로 있고, 노포에서 먹을 음식이 따로 있다. 막국수란 말 그대로 막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방구들의 뜨끈함을 느끼며 살얼음 낀 동미치 국물에, 겨울에 갓 수확해 갈아낸 메밀의 향 가득 느끼면서.


소구리설렁탕

로컬 설렁탕 맛집. 김치와 깍두기가 싱싱한 편인 것이 매출이나 소비량을 짐작할 수 있다. 저렴한 가격을 봐서라도 방문해봐도 좋을만하다.


시드누아(속초점)

설경을 보기에 괜찮은 카페.


코끼리만두분식

중앙시장 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어묵이 맛있다!


ONC

고성 / 힙 / 오션뷰


메종설악

그닥 볼 것은 없었음


스위밍터틀

아야진 권역의 카페 중 하나. 철조망만 없어지면 손님이 세배는 늘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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