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초 반달살이(8)
아침을 먹고 또 카페를 찾았다. 캠핑장을 겸하고 있는 카페로, 바로 아래에서 울산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 한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온 사람은 없을만한 멋진 곳이다. 사실은 어제도 왔었다. 그런데 헛걸음을 했다. 폭설로 길을 정비하느라 하루 쉰다고 했는데 막상 와보니 어제랑 오늘이랑 눈이 치워진 건 차이가 없다. 그런고로 우리는 카페 느루에, 한번만 오지 못해버린 것이다. 저 풍광에 차 한잔 하러.
금토일은 좀 쉬어가기로 했다. 쉬어간다고 해야 아침을 먹고 나와 카페 카페 밥 카페 카페 밥이라는 바깥양반취향의 루틴한 일정의 반복이다. 쉬어감이란 어디서 발생하는가 그렇다면...인적이 드문 카페, 쉬기 좋은 카페를 찾아찾아 간다는 거겠지.
느루의 경우 그래서 하루의 시작으로 그만이라고 생각이 된다. 화창한 날에 속초를 돌아보기 가장 좋은 곳은 아마 여기일듯. 가을에도, 겨울에도, 비오는 날에도 좋을 것 같다. 옥상에서 울산바위를 보다가 카페 안으로 들어오면 소나무숲이다.
걸음을 옮겨 스테이 오롯이를 찾았다. 결혼하고 그 이듬해던가, 아니면 3년째이던가 여행 와서 1박을 묵은 숙소인데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숙박업을 접고 카페로 바뀐 곳이다. 카페가 된 지금에도 속초에서 손꼽히는 핫한 카페인데 입지가 아주 좋다. 사람들이 몰릴만하다. 앞서 찾은 카페에 사람이 없어 더욱 좋았던 것에 비하면 스테이 오롯이의 경우 쉬기 좋다고 하기엔 여러모로 어폐가 있다. 게다가, 숙박일 당시 그 정성 들인 인테리어들은 모두 어딜 가고 내부 벽채와 천장재부터 합판을 덕지덕지 바른듯한 허술함이 가득하다.
다만 설경을 보기엔 좋다. 뷰카페로서는 속초에서 손꼽힌다고 할 수 있다. 중앙정원의 작은 네모진 연못은, 한밤에 더욱 아름다운데 지금은 눈으로 덮여 사람들의 발자국이 가득하다. 논밭 너머 설악산자락이 조망되는데에다가 건물 본채만한 마당이 옆에 붙어있어서 여기도 포토존이 되었다. 아이가 순해서 다행이다. 원래는 방이었던 개별룸에 아이를 눕혀놓고 바깥양반을 따라나와 사진을 조금 찍어주었다. 루틴한 하루다. 쉼이라고 해서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일만 하면 그게 쉼이지.
그 와중에 밥은 또 알음알음으로 올만한 작은 식당을 찾아서 갔다. 화요일에 건너왔던 처제가 찾아준 식당 중 하나로 위치를 설명하자면...칠성조선소에서 걸어서 3분 거리 이내에 있다. 감자옹심이와 회덮밥이라는 전형적인 강원도바닷가 음식을 주문했다. 회덮밥을 주면 감자옹심이가 맛배기로 달려 나온다길래 바깥양반은 두개를 시키려 했지만, 나는 손을 내저으며 내 음식을 옹심이로 바꿨다. 옹심이 먹으로 왔으면 옹심이로 배부르게 먹어야지.
낡은 가게 출입문에 블루리본 스티커가 두개 붙어있다. 한번씩은 유명세를 떨쳤다는 뜻. 그리고 작은 옹기에 걸죽한 옹심이가 담겨나온 것을 보니 노란 것이, 늙은호박. 야 이거 제대로구나 하고 구미가 당긴다. 늙은호박을 이렇게 다룬다는 건 그만큼 옛날 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지. 참고로 태안 향토음식으로 요즘 유명해진 겟국지도 늙은호박을 써야 오리지널이다. 물론 오리지널 겟국지는 도시사람이 먹기에 적당한 음식이 그닥 아니지만,
이 옹심이는 상당히 괜찮다. 8천원. 가격되 괜찮아. 회덮밥은 만원인데 해초가 꽤나 많이 들어가 있고 소스가 자극적이지 않고 편하게 먹을만하다. 반찬들은 임팩트가 있지 않았지만(김치가 짜!) 옹심이는 싹싹 국물까지 모두 긁어먹을만큼 매력적이다. 아마 이정도면 다른 메뉴들도 한번씩 맛봐도 되겠다 싶다. 카운터 아래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늙은호박을 보고 미소를 띠며 가게를 나왔다.
카페 카페 밥 카페 카페 밥이라는 장기 여행의 루틴은 어떻게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는가. 바깥양반에게 가장 힐링이 되는 시간이 이렇게 바다와 하늘 풍경을 바라보며 달달한 음료를 마실 때란다. 나는 풍경은 좋지만 카페를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취향은 아닌지라 이런 소비패턴에 대해 걸핏하면 까칠해지기 일쑤다. 그러나 이것도 부부가 함께 부대끼며 사는 과정이니 그냥저냥 맞춰주려고 노력한다. 카페에 와서 나도 할 것이야 많다. 사실 어디 카페에 앉혀놓아도 책 한권, 키보드 하나면 몇시간이나 앉아있을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물론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 카페에 와도 내가 책을 보거나 뭘 글을 쓰거나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지만.
이제 삶이란 이렇게 흘러갈 모양이다. 연말부터 새벽에 주로 과제와 업무를 하면서 아이가 자는 시간을 활용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아이가 깨어나 있을 땐 내 일보다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일. 그리고 출근해서 또 시간을 쪼개 열심히 일을 해야 할 것이고.
마침 지금이 아이가 100일을 조금 지나, 엊그제부터 갑자기 수유량이 반으로 딱 줄었다. 이제 포만감을 느끼면 스스로 젖병을 뱉어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안정의 욕구와 배부름의 욕구를 분리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란다. 원래부터 먹성이 좋아서 특히 3개월차에는 200ml 씩 끼니 거르지 않고 비우던 아이가, 부모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우린 우리 나름대로 공부를 해가며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잠투정도 늘어서 밤마다 한시간 이상 안아주기도 한다. 그 또한, 견뎌나갈 일. 동백이는 이렇게 엄마 아빠를 따라나와 바쁜 하루를 보냈으니 말이지.
마지막으로 일식 식당에서 간단한 메뉴로 저녁을 해치우고 드디어, 쉬러 간다.
카페 느루
15명 정도 들어가면 카페 공간은 만실인 작은 카페인데 울산바위 조망이 뛰어남. 위치가 미시령 옛길을 타고 가는 곳이라 단풍여행 따는 반드시 거쳐갈만한 코스.
스테이 오롯이
숙박 때의 장점을 살리지 못해 아쉬움은 크지만 분리된 공간에서 마냥 한적하게 쉬기엔 또 좋다. 눈치 안보면서 오롯이.
감자바우
청초호 북쪽 길목들이 포구를 끼고 오랫동안 장사한 집들이 많다. 그 유명한 함흠냉면옥도 바로 이 자락에 있고. 사실, 사진 담당인 바깥양반이 놓친 부분인데 옹심이가 찐이다. 거칠게 주물러 삶아낸 그 터프한 옹심이를 뜨끈한 국물과 함께 먹고 한걸음 쉬어가기에 좋다.
어나더블루
콩 종류도 많고 직접 로스팅을 해서 맛 관리도 잘 되고...2층 가서 로스팅룸 보고 신뢰도가 매우 상승. 오션뷰를 갖춘 커피맛집. 그러나 이미 유명한 집이라 손님은 제법 차는 편이다. 영랑호-장사항 코스로 끼고 방문하기에 좋다.
카페해요
인테리어가 아늑하고 오션뷰가 깔끔하다.
하마식당
요즘 뜨고 있는 라이트한 일식당. 참치와 아보카도, 계란카스테라를 넣은 후토마키와 마제소바 등이 인기인데 고로케가...정말 새로 튀겨내서 바로 서빙되는 것인지 뜨겁다. 핫플레이스이므로 방문하려면 브레이크 타임과 대기 시간에 주의. 그러나...굳이 속초에서 먹어야 할 음식인가?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