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다 자란다 잘한다

겨울 속초 반달살이(9)

by 공존

하룻밤 사이에 아이가 훌쩍 자란 것을 처음 목격한 것이 동백이가 태어난지 한달반쯤 지났을 무렵이던가. 아침이 되어 아이를 안아주는데 얼굴이 확 변해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아이의 얼굴이 한층 영글어있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얼굴이 하룻밤 사이에 크게 변했을 리는 없고, 아이가 불현듯 어떤 얼굴 표정을 짓게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눈 근육에 힘이 붙고, 입술도 앙다물고 해서 갓난아기 태를 벗고 자기 얼굴을 잡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 아이가 실제로 한 걸음 더 성장한 것이니 이것은 하룻밤 사이에 부쩍 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동백이가 여행을 와, 우리가 바란대로 성장의 씨앗들을 두루 얻어내었을까. 요 며칠 간 아이의 옹알이가 크게 늘었다. 열심히 맞장구 쳐주면 3,4분을 엄마 아빠와 마주보고 신나게 떠들기도 하고, 모빌을 켜주고(차에 실어오느라 고생한 품목 중 하나다) 눕혀놓으면 아주 힘차게 누구 들으라는 것인지 떠든다. 그리고 배냇웃음이나 자기 혼자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와 교감하며 웃는 웃음을 짓는다. 이른바 사회적 웃음이다.


이것이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발달 과정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야 할지, 여행을 와 한층 빨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아이가 빠른 건지 느린 건지도 알 수 없다. 지금의 느리고 빠름이, 아이의 성장발달을 종국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것을 두고 "우리 아이 봐요 천재인가봐요!" 같은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 것도, 물론 적절하지 않다.


다만, 더 아이를 보느라 바빠질 일이 두렵고, 더 아이와 나눌 것들이 많아져 기쁠 뿐이다.

어젯밤에도 동백이는 꽤나 호되게 잠투정을 했다. 땀까지 흘려가며 한시간을 칭얼대더니 새벽에도 꼬박 깨어나서 배가 고프다고 식식댄다. 그래 분유를 타와서 물려주니, 두 손을 잡고 젖병을 버틴다. 호오 요것봐라 하고 젖병에서 손을 놨더니만, 자기가 들고 제법 먹는다. 또 하룻밤 사이에 부쩍 자랐구나. 요즘 두 손을 쓰는 재미에 들린 동백이도, 그것을 보는 우리도 마냥 신기하다. 코를 뚫어주려고 기계를 가져가면 파닥거리면서 두 손으로 온 힘을 다 해 아빠의 팔을 밀어내는 것을 보면 또 얼마나 기쁜지.

그렇게 팔팔하고 부지런한 아이가 그런데 또 엄마 아빠를 따라 외출을 하면 아주 새근새근 잠만 잘도 잔다. 아침을 먹고 나와 첫번째로 방문한 카페가 꽤 사람이 몰려서 돗대기 시장 마냥 시끄러웠는데, 눈 한번 뜨지 않고 대자로 누워서 잔다. 혹여, 눈을 떴을 땐, 안아서 놀아주면 방긋방긋 웃더니 이내 다시 눈을 또 감는다. 그런 덕분에 외출이 수월하다.

"혹시 유모차는 없으세요? 여기에 눕히면 불안하실 텐데."

"아 괜찮아요 유모차 가져오면 공간 너무 차지하고 해서. 여기 잘 눕혀놓을게요."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매자식당에서도 동백이는 새근새근. 참하게도 잔다. 매자? 하고 물으니 바깥양반이 사장님 할머니 성함이시란다. 아하 사쿠라코로군. 가게의 연식을 알만하다. 1시 나절에 갔을 때 토요일 오후라 붐빌 시간이긴 하지만, 잠깐 대기 시간이 있었다. 쌀국수를 어찌하여 대기 씩이나 하며 먹는가 했는데 웬걸. 이렇게 훌륭한 쌀국수가 단 돈 만원. 그것도 최근에 인상된 가격.

속초에도 퍽 자주 왔고 쌀국수도 좋아하는데 어찌 이런 가게가 있는지 몰랐나 싶게 맛있다. 매자식당이 자리한 곳이 속초의 구도심 중 하나로, 영랑호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다. 속초에 여러날 여행을 오는 일이 없었고, 1박으로 왔을 땐 물회, 닭강정, 짬뽕이라는 기본 메뉴가 구색이 갖춰져 있어 다른 식사메뉴를 고려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훌륭하고 가격까지 저렴한 맛집을 알지 못했지. 개인적인 경험이 누적되어 SBS 맛집 프로, 특히 3대천왕과 생활의 달인에 출연한 식당은 신뢰하지 않지만 매자식당은, 정말이지 훌륭하다. 벚꽃이 필 때 영랑호와 함께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 원래는 지금 사장님의 할머니, 즉 매자 할머니께서 국수장사를 오래 하던 자리란다.

매자식당 부근에 분위기가 좋은 카페가 몇개 있어 이어서 투어를 했다. 감나무멘션. 양양 감나무식당, 속초 감나무집에 이어 여기도 감나무인가. 작은 양옥을 리모델링한 집이다. 아기자기하게 쉬어가기 좋은 곳인데, 여기서 동백이는 잠에서 깼다. 아기 구경시키기 좋은 곳. 구석구석 꾸며진 것이 많아, 창밖도 보고 가게 인테리어도 구경시킬만하다.


갓난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니 불편한 점이 많다. 코로나와 미세먼지, 찬바람에 아이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여행에서 산책이라는 요소를 빼야 한다. 아무래도 지방 소도시이니 기본적으로 길이 좋지 못한데 눈까지 왔으니 유모차도 옵션에서 빠져있다. 대신에 즐거운 일은, 이런 걸음걸음 하나하나에 아이와의 미래를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이곳을, 아이와 함께 온다면. 여기에, 아이가 커서 함께 거닌다면.

꼭 그런 기대가 좋은 소식과 함께 오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두달 가까이 먹은 분유가 아이의 배앓이를 일으켰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밤마다 아이가 지쳐 잠들 때까지 우는 것을 끌어안고 버텼다. 노발락으로 분유를 바꾸고 배마사지를 해주고, 트름 시키는 방법도 바꾸니 배앓이는 하루 이틀만에 사라졌다. 엄마 아빠가 미련해서 아이가 고생을 했다. 그런데 그 배앓이로 생기는 아이의 특징적 행동이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버티는 것이다. 배앓이를 하는 동안 아이가 다리를 쭉 뻗고 하도 버텨대서 지금도 아이를 안아주고 있으면 바닥을 버티고 대강 서 있으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또, 미련한 아버지라는 사람은 이 아이가 얼른 자라서 고사리손을 아빠 손에 얹고 함께 걸어주려나, 그런 상상도 하게 되는 것이다.

내일까진 휴식. 흰다정에 다시 들러 빙수와 푸딩을 먹고 간단히 엄지네의 꼬막무침을 포장해와 반만 함께 나눠먹은 뒤, 동백이를 씻기고 밤을 맞았다. 아이는 밤에 길고 길게 옹알이와 운동을 했고, 오늘은 어렵지 않게 잠에 들었다.

흰다정

속초 중앙시장에서 차로 3분 정도 거리. 일본식 인테리어와 차 종류를 파는데 위치가 좋고 해서 젊은 층이 특히 많이 찾는다.


매자식당

이정도로 사람이 많으면 가격이 저렴한가? 했는데 맛은 물론이거니와 가격이 충격적으로 훌륭한 맛집. 한우!


감나무멘션

영랑호 산책 후 매자식당과 함께 들르면 좋은 곳. 바로 옆에 유명한 생선구이집도 있고, 두드리진 특징은 없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가서 돈이 아깝지는 않은 수준 이상은 된다.


엄지네포차 속초점

썩어도 준치. 가서 육사시미만 안먹으면 된다. 옛날 포차 시절엔 육사시미도 참으로 훌륭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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