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초 반달살이(11)
동백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는 것으로는 골치를 썩인 일이 없다. 그리고 여행에 와서는 아주 잠깐, 100일 무렵 겪는다는 "수유 파업"을 하루 이틀 정도 한 것을 빼고는, 다시 평소의 팔팔하고 건강한 수유량으로 돌아왔다. 왜 이 이야기를 또 하냐면, 그로 인하여 통잠도 없어진 때문이다. 너무 잘 먹고, 잘 움직인다. 그래서 통잠을 자지 않는다. 딱 새벽 두시에서 네시 사이에 한번은 깨서 맘마를 달라고 칭얼거린다. 그것도 목놓아. 그러면 엄마와 아빠는 일어나서 분유를 먹인 뒤 트림도 시키지 않고 그냥 자버린다. 아이도 엄마와 아빠를 따라서 잔다. 그러니까 이것은 0.8통잠 정도는 된다고 봐도 된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신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을지언정 그러나 자기의 끼니를 챙기는.
여행 열흘 째. 자다가도 일어나 배를 채우고 다시 잘 만큼 팔팔하게 커나가는 동백이와 달리, 바깥양반은 전날 피로가 쌓인 여파로 매우 늦게까지 쉬고 일어났다. 그럼 좋지. 편히 쉬면 좋은 일이다. 1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외출을 나와, 대신에 길게 하루를 보낸 뒤에 8시반쯤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는 내내 또 동백이는, 퍽 잠을 잘 잤다. 카페에서도, 식당에서도 고맙게도.
여행을 와서 아이에게 성장의 마중물은 마련되었을까. 아이의 성장발달 추세를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장막이다. 아이가 유다른 행동을 보이면 그것이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채광 조명 탓인지, 외출 탓인지, 행여나 감기나 코로나라도 걸린 것이 아닌지, 이게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따지기가 어렵다. 그런 사이에 방긋방긋 웃음이 많아지고 옹알이도 늘어서, 아이에게 쏟는 정성이나 교감의 양도 많아진다. 그런고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믿고 하나 하나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것 밖에.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갯배선착장에 있는 카페였다. 7시쯤 방문했는데 드넓은 홀에 우리 말고는 손님이 아무도 없다. 평일, 겨울, 밤이었으니 그럴만도. 덕분에 한가롭게 소원 종이에 그림도 그리고 바깥양반은 그날 일기를 마무리하고 알차게 시간을 썼다. 그리고 아이를 안고 두루 돌며 구경을 시키기 좋게 카페 안팍이 형형색색으로 조화롭고 아름답다. 오늘 하루, 나는 내 나름 업무를 많이 처리했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오기 전부터 공문을 이것저것 처리하기 시작, 오늘 처리한 공문이 셋. 그리고 업무를 하나. 방학 후 일주일은 알차게 놀았고 이제 쉬며 쉬며 일을 할 차례다. 학생부 업무, 공문 등 미뤄둔 업무들이 칼바람처럼 날아든다. 그런 우리에게는 아이가 자는 시간이 쉼과 동시에 일의 시간이다.
밤 8시쯤까지 밖에 머물어 본 적이 없는 아이는 편하게 집에서 낮잠을 잔 하루도 아니라서 잠투정을 길게 한다. 내가 잠깐 잠깐 자리를 비우면 반드시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보채고, 안아주면 그 자세로 잠에 들려 한다. 아직까진 그렇다고 다른 손님에게 불편함을 끼친 적은 없었는데 늘 눈치는 보인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그런 고민거리로 꽉 차 있다.
"(속삭이듯)아이가 너무 순하네요 정말. 이런 말하면 안되는데."
"하하 괜찮아요. 그런 말 많이 듣는데 그래도 계속 순하게 크고 있어요."
남자끼리 "군대 시간 빠르다."라는 말이 금기어인 것처럼 아이를 두고 순하다라는 말은 엄마들끼리의 금기어인 모양. 동백이를 보는 사람들은 빠짐 없이 순하다는 말을 고개를 꺾고 몰래 하곤 한다. 순하다는 말 한마디, 시도 때도 없이 아이로 인해 몸과 마음이 할퀴어지는 엄마와 아빠에겐 실례인 모양이다 싶지만, 또 우리 부부의 경우엔 정말로 아이가 순해서 순한 덕을 많이 보는 처지인지라 그저 고맙다. 아이가 내내 순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그러나, 키친온유 식당은 편안하고 친절했다. 우리가 입장하니 아이가 편히 잘 수 있도록 맞춤하게 의자를 붙여주셨다. 그래서 식사 내내 동백이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잠에 들었고, 우리도 몹시도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여기에 맞도 훌륭했는데 설명이 필요가 없을 만큼 핫한 맛집이라, 순하단 말 몰래하는 것처럼 맛나다는 말 몰래하고 줄여두는 게 예의일듯 하다. 예약필수. 너른 주차장이 근처에 있으나 50여 미터를 걸어야 한다.
...이라고 쓰면 뭔가 부족할 것 같은데, 서브 메뉴인 찰옥수수 범벅이나 디저트로 나온 푸딩(이름이 뭐였더라)까지 유머와 디테일을 갖추어서 더욱 재미가 있었다. 속초가 단지 관광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은, 이런 공간이 있어서일 터다. 찰옥수수를 졸인 토속음식을 곁들이면서 해초인 꼬시래기에 청어알젓갈을 버무린 토핑. 영월 살롱드림처럼 토속음식과의 퓨전이 잘 이루어진 식단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 뒤편으로는 단골인듯한 남성이 자리를 잡고 사장님과 와인에 대한 이야기,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나눈다. 와인이라. 속초에서? 라고 생각을 하는 외지인의 입장. 그러나, 속초에 사는 사람 중에서도 빠짐없이 와인을 즐기는 사람, 있을 것이고, 여행객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 있을 것이다. 먹으면서는 화사한 가게 인테리어를 보고 이곳은 크리스마스에 와도 좋겠구나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그러니, 지역에 이런 식당이 생겨 방문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도시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도상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점심으로 들른 곳은 제제네 식탁이었다. 속초는 작은 도시라 또 청초호를 기준으로 어딜 가도 10분 이내에 닿는다. 아파트 사이 작은 상가에 위치한 이 작은 식당에서는 알뜰한 가정식을 서빙한다. 바깥양반은 양념새우장, 나는 삼겹살두부정식. 깔끔한 차림새에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제제네나, 키친온유나, 두 곳 모두 접근성이 좋지 못하다. 차 없이는 오기 어려운 곳들. 그러나 차림새로나 맛으로나 여행객들의 환영을 받을만한 곳들이다. 차 없이 오려면 택시를 타지 않으면 안되는데, 말을 꺼내고 보니 차가 없으면 속초는 기차로는 오지 못하는 곳. 고속버스 뿐이다.
물론 대한민국 땅에 기차역 없는 여행지가 수두룩하고 차 없이 이동하기 어려운 곳 투성이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 속속 새로운 식당이 생겨서 나쁜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끌어모으는 것을 보면, 여행의 목적이란, 골목 골목 새로운 방문지를 발견하는, 그런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 그리고 제제네 식당 안에 여러가지 허브를 키우는데, 바로 요리에 쓰신다고.
오늘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청초호반의 카페다. 칠성조선소와도 가깝고 여러 카페가 모여있다. 바깥양반이 한 세시간 잡고 처리할 업무가 있어 카페에 오래 머물렀다. 그러나 동백이가 아무리 순하다고 해도 외출을 해서 몇시간씩이나 잠을 잘 수는 없다. 세시간 여 머무는 동안 한시간 가량은 내가 아이를 돌봤고, 그중 30분 가량은 아이를 안고 홀 안을 빙빙 돌았다.
그리고 나는 두 팔이 점점 무거워짐을 느낀다. 아이의 무게 뿐만 아니라, 이제 손목 팔 팔목, 알이 배기지 않은 곳이 없다.
아무리 튼튼하게 자라고 있어도 우리 아이는 이제 고작 110일, 4개월생의 어린 아이다. 아기띠에 오래 앉아있긴 어렵다. 아기띠 없이 두 팔로 아이를 노상 돌보니, 식당에서 주차를 하고 이동을 할 때면 단 3분만 아이를 들고 걸어도 이내 팔이 뻐근하다. 잘 먹긴 또 어지간히도 잘 먹는 아이니까.
앤 카페에서 아이를 안고 드넓은 홀을 빙빙 도는 동안 나는 정말 팔이 빠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마냥 또 고맙기도 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팔, 어깨, 목도 함께 결린다. 그러나 아기띠에 아이를 앉히고 다닐 수 있게 되면 또 끝날 문제가. 좀 가벼운 유모차에 아이를 대강 앉혀도 되는 단계가 되면 또 더욱 고민은 사라진다.
여행을 오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터,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지금 마침 모빌을 켜주면 혼자서 재밌게 노는 시기라 집에 있으면 잠투정을 받아줄 때 말고는 힘들게 아이를 안고 몇십분이나 방안을 돌 일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아이를 위해 기꺼이 짐을 지고, 그 무게를 견디는 삶을 사는 것이니. 우리의 첫 여행의 목적은, 그런 아이의 무게를 삶의 무게에 더해 버티는, 근육을 기르는 것일지도.
제제네 식탁
종이컵도 제작해서 비치해두고 메뉴도 대중적으로 애를 쓴 흔적이 많다. 주차도 비교적 손쉽다. 메뉴가 다양하지 않은 점은 단점인데...둘 까진 가서 나눠먹어도, 네 명 정도가 가선 메뉴가 겹칠듯. 가격 합리적.
앤 커피 스토리
빨강머리 앤 컨셉의 대형 카페인데 위치가 좋아서 인스타 감성은 아니어도 들를만하다. 게다가 친절하기도 하고. 오래 오래 머물 수 있어서 더욱 좋은 곳. 밀짚모자가 여럿 있어서 아이에게 씌워주고 사진을 몇십장 찍었다.
키친온유
맛을 넘어서 유머와 디테일. 전복 알리오 파스타를 먹은 뒤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식전빵을 한조각만 더 주실 수 있냐 부탁드렸더니 사장님이 장꾸 미소를 얼굴 가득 채우시곤 고개를 끄덕이신다. 디저트까지 감안하면 관광지 물가에 무척이나 훌륭한 가성비가 산출된다. 다시 말하지만 예약 필수. 봄 쯤에는 예약 잡기도 쉽지 않을듯.
스타리안
갯배선착장의 수협 건물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2층에 자리잡은 카페. 엄지네 포차 속초점 맞은편이라고 하면 알기 쉽다. 문화공간답게 그림도 그릴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고 1층에선 여러가지 식당과 아트샵도 있다. 날씨 좋을 때 가면 청초호와 앞의 대교의 뷰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