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초 반달살이(12)
차를 길가에 대고 식당에 대기열을 등록했다. 30분 이상 걸릴 것이라고 한다. 마침 근처에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젤라또 가게가 있어 두개를 테이크아웃. 아침을 차리려다가 가게 오픈 시간에 맞춰 후딱 나왔다. 그러나 그러고도 시간이 퍽 늦어 배를 곯게 생겼었는데 아침, 공복에 젤라또 한입이면 퍽 괜찮은 위안이다. 우리는 차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동당이 평일 오픈시간부터 한참 대기열이 생길만한 맛집인 이유는 뭘까. 아직 맛을 보지 못해 알 수는 없지만, 토속음식도 아닌 우동 한그릇, 그것도 숱하게 속초를 오가면서도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식당이라 호기심이 동하면서도 몇가지 이유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중 한가지는 당연히 가게의 위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속초 터미널과 속초해변을 낀 절묘한 위치에 무난한 선택지라는 점이다. 속초에 들른 사람들은 대개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바다를 들르기 마련이고 포차거리 앞 등대해변은 좁다. 대포항이나 설악항은 그래도 언덕 하나라도 넘어가야 한다. 차로 방문한 사람이든, 버스로 방문하는 사람이든, 속초를 떠나는 길에는 딱 들르기 좋은 위치. 그리고 좋은 시간.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길가에 무심하게 걸려있는 고등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 사람이 살고 있구나 당연히도. 꾸덕하게 마르면 헹궈서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쪄 먹으면 기름지고 쫀득하겠다.
기름지고 쫀득하다. 돈까스와 우동의 조합. 12시를 제법 넘겨 자리에 앉았다. 음식은 제법 빨리 서빙이 되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아 오빠! 수란 깜빡하고 안 시켰다."
"그냥 먹어 뭐 까먹으면 까먹은 거지."
바깥양반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다. 우동당의 경우 입장하기 몇 순번 전에 미리 주문을 받는 형태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 생기면 뒤늦게 추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수란이라. 집에서 얼마전에 해줬었잖니. 물론 우동에 수란을 올려서 먹으면 더욱 맛있긴 하겠지. 그러나 빠트린다면 빠트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식당의 어떤 음식을 먹는데,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애초에 메뉴를 별도로 분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좋아하면 따로 시켜서 먹으면 되는 것이고, 빠트렸으면, 없으면, 없는대로 먹으면 되는 일.
그러니까, 여행을 한번뿐인 기회로 감각하느냐, 지나가는 과정의 하나로 인식하느냐의 차이가 메뉴 하나에 드러나곤 한다. 지나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나는 다음에도 또 와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니 수란 하나 빠트린 것에 당황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지금 이 순간의 지금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니, 다음에 수란을 먹더라도 이번에 먹지 않은 일은 손실은 손실이라고, 바깥양반은 느끼는 것.
그런 두 사람의 성정의 차이는 일정으로 드러난다. 바깥양반은 반달살이, 한달살이의 긴 일정에도 아주 촘촘히 그리고 샅샅히 일정을 세우고 방문 코스를 짠다. 나는 그것에 맞춰주면서 어찌 어찌 내 할 일을 하는 편이다. 운전을 하고 비용을 분담하는 입장이긴 하나 솔직히 말하여 나의 소관은 아니다. 바깥양반이 어딜 가야 할지 고민을 하면 그때서야 돕는 식이다.
그런 내 성향이라면, 이런 카페에 찾아오진 않을 것 같은데도, 또 온다고 나쁠 일도 없다. 속초시내에 생긴 큰 복합문화공간 형식의 카페에서는 꽤나 이채로운 장면을 보게 됐으니까.
카페에 들어가 아이를 안고 구경을 하는데 4층 한쪽 공간이 왁자지껄하다. 유아를 위한 오감놀이 코스가 있었던 것이다. 마침 1시 클래스가 이제 막 시작되었는지 7,8쌍 정도의 아기와 엄마들이, 보호자는 빠짐없이 모두 엄마뿐이었는데, 강사분의 활기찬 멘트, 그리고 음악, 색색의 교구와 함께 놀고 있었다. 카페 건물에서 이런 프로그램도 있구나. 4개월생인 우리 아이가 낄 수 있는 상황은 여러모로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동백이가 또래의 아기들을 한무리 만난 대사건이라 앞에 서서 한참을 구경했다.
여행에서 꼭 가야하는 곳이 따로 있을까. 예를 들어 파리에 가면 에펠탑이 있고, 라스베가스에 가면 그랜드캐년을 함께 가야겠지. 빠트릴 수 없는, 그 나름의 으뜸을 차지하는 여행코스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 공간들을 그저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담에 또 오면 되지 뭘 그랴- 이렇게 손을 저으며 무감각하게 넘기는 나의 충청도식 여행관이, 바깥양반의 알차고 빡센 여행관보다 낫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또, 바깥양반이 고른 다음 코스인 한옥카페, 그리고 이어진 저녁식사에서는 필수코스는 아닌 장소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뜰안 이라는 카페는 50m 거리에 있는 너울집이라는 으뜸 여행코스의 버금 선택지다. 분위기로 보아서는 너울집은 인스타 감성의 20대가 주로 찾는 카페, 뜰안은 30대부터 60대까지 찾을 수 있는 인사동 같은 감성. 너울집은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서빙을 하고, 뜰안은 중년의 사장님께서 활기찬 목소리로 반긴다. 그리고 실로암 메밀국수는, 일요일에 남북면옥을 다녀오고 나서 쓴 일기를 보고 바깥양반이 어 근처에 또 있네. 하며 찾게 된 곳.
그러니까 뜰안도 실로암도 여행의 필수코스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내 입장에선 말이지. 그러나 각자의 특색이 있고 이곳만을 찾는 단골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실로암메밀국수는 정주영 회장이 아주 자주 찾던 곳이라고 하니, 양양 외곽이 이렇게 당당한 건물을 세운 것도 제법 이해가 된다.
어떤 여행지를 가서, 그것이 긴 일정이든 짧은 일정이든 꼭 챙겨야 할 일정이 있고, 사정에 맞추어 택하게 되는 일정들이 있다. 모두의 여행은 으뜸과 버금의 아슬아슬한 교차지점이다. 어떤 장소에서 한시간쯤 대기를 했으면, 그로 인해 생기는 시간의 손실로 인해 포기하게 되는 일정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니까 여행은 또한 매번의 기회비용을 따지는 일이기도.
으뜸인 장소들만을 애써 가는 사람도, 으뜸인 곳을 일부러 피하는 사람들도 있고, 모든 곳에 방문하는 나름의 이유를 지닌 사람도 있다. 조금 주도면밀하게 으뜸과 버금을 가리는 노력도 쓸모가 있겠지. 장기간의 여행일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여행에서 퍽 중요한 요소다. 한 곳을 오래 머물며 두루두루 장소들을 방문하고 여러 카테고리 안에서 자웅을 견줄 수 있는 일이니.
다만 어떤 공간의 "호"를 잘 감각하는 것은 "불호"를 세심하게 인내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은 든다. 모든 공간엔 나름의 존재 근거가 있다. 이를 테면 뜰안의 인사동 감성이 너울집의 인스타 감성과 다르다고 하여, 거기에서 발생하는 불호의 감정으로 호의 감정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은 꽤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럴 땐 조금 너그러이 주변을 볼 일이다. 가만히 보면 보인다. 버금 집들의 아름다운 구석이.
우동당
속초해변이라곤 하지만 주변이 낡은 주택가들이라 주차를 조심해서 해야 한다. 속편히 속초해변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오는 편이. 11시부터 3시까지 영업하는듯. 음식의 양이 넉넉하지 않은 편이라 둘이 간다면 사이드디쉬를 주문하는 것이 좋다.
메이트힐 로스터리 카페
1층은 프라이빗룸, 2층은 빌리엔젤 케이크와 이벤트홀, 3층은 카페, 4층은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대형주차장까지 겸비한 주변 땅값 상승의 주범 같은 곳. 매장에서 로스팅하는 세가지 원두라인 구비. 커피 맛은 인상적이진 않으나...그보다 단점은 3층 좌석에서 콘센트 찾기가 어려웠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오래 앉도록 해놓고는 정작 콘센트들을 두지 않는 건 좀 심술보인듯.
뜰안
우리들 때는 인사동도 마냥 좋았는데.
실로암 메밀국수
맛에 대해 평가하자면 동치미가 무가 아니라 배추를 주로 써서 만들어져서 굉장히 색다른 맛이 난다. 짜지 않은 백김치 육수에 담가먹는 맛이라고 봐야할듯한데, 덕분에 광천수로 만든 육수를 먹는 기분. 탄산수 같은 세큼함이 있다. 가격 이슈, 수육의 수입산 이슈가 있으나 주변의 숱한 무 동치미 막국수의 비슷비슷한 맛에 비하면 메리트가 있다. 또 오라면 못갈 건 없지만 커피자판기를 바깥에 유로로 뒀다. 아 이건 선 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