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초 반달살이(14)
속초 영랑호를 끼고 있는 요가 강습소가 있다고 한다. 핫하다.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이 겨울, 평일에도 아침 코스가 자리가 꽉 찬다고. 바깥양반이 이걸 해볼까 말까 고민을 했고, 당연히 나는 찬성했다. 제대로 산책도 못다닌지 벌써 몇개월째. 내가 아이야 보면 되니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그러나.
현실은 현실인데 어떤 현실이 문제인가하면, 아이가 있다는 게 문제다. 아침 7시반에 바깥양반을 요가 강습소에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그럼 우린 7시엔 늦어도 일어나야 하잖아. 마침 오늘은 동백이가 밤에 두번이나 맘마를 드셨다. 어차피 아기를 끼고 자면 부모는 숙면을 취할 수 없다. 그런데 바깥양반이 아침에 요가 늦을 까봐 또 긴장을 해서 잠을 설치셨다. 그러는 바람에 나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우리 둘 다, 그리고 동백이까지 잠을 잘 자지 못했는데-
우선 아침에 바깥양반의 힐링타임은 성공적. 동백이를 태워 차로 내려준 뒤, 나는 집에 와서 30분 가량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바깥양반을 데리러 가기 위해 15분을 달렸다.
영랑호의 요가센터는 참 괜찮은 곳이라고. 게다가 참가한 요가코스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명상요가 같은 것이어서 어려운 자세 없이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깊이할 수 있는 곳이란다.
시간이 좀 여유가 있었다면 아침에 나란히 영랑호를 걷기 딱 좋은 타이밍인데 우린 아이가 있잖아. 그러니까 빠르게, 숙소로 돌아가 아이를 쉬게 하고, 우리도 쉬어야 한다. 그래서 이 화창날 아침의 영랑호를 뒤로 하고,
속소에 가다가, 그만 참지 못하고 아침을 먹기 위해 곰탕집에 들렀다. 어디라고 말해야 하나. 하여튼 속초 북부의 영랑호 권역의 한적한 동네인데 여기도 쏠쏠한 로컬 맛집인듯하다. 소머리국밥이 땡겨서 찾아뒀는데 마침 요가센터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간판이 눈에 딱 들어왔다.
이것 못 참지. 하고 동백이의 상태를 보고 바로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미안해 딸랑구 우리 아침만 먹고 들어가자꾸나.
그런데 여기도 참 괜찮다. 소머리국밥 11,000원, 설렁탕 10,000원. 딱 깔끔하게 나올 것 나오고, 깍두기랑 김치 맛깔지고, 파 싱싱하다. 고기가 실하다. 지방 소도시라고 할 수 있는 속초에서는 이런 식당들을 알음알음 찾아나가는 재미가 있다. 수도권에서는 임대료가 아무래도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크기 때문에 깔끔하게 음식을 하면서도 가격까지 합리적인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예정에 없이 즉흥적으로 들러 아침을 먹은 것 치곤 꽤나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다만 아침으로 매일 찾기는 우리 예산에 만원씩은 좀 그렇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이럴 때 한다. 뭐 대단한 소비나 사치를 부릴 것도 아니고, 이런 식당 한군데 찜해놓고 아침마다 뜨끈한 국물 들이킬 수 있다면 세상 행복할 텐데.
그러나 오늘의 고민은 소머리국밥을 아침마다 먹을 수 있는 삶이냐의 문제보다 조금 더 까칠까칠한 것이었다.
"아니. 애기 아침부터 우리가 데리고 다녀서 잠도 설쳤고, 나도 피곤해. 좀 쉬다가 나가자."
"오늘 날씨 좋은데 아쉽잖아. 그리고 저녁에 사진관도 예약해놔서 빨리 나가야해."
"후...어디 갈 건데."
"오늘은 양양쪽 돌려고."
"뭐? 사진관을 잡아놓고 굳이 양양을 돌고 오자고?"
그러니까 이런식. 바깥양반은 늘 그렇듯 이 화창한 날씨를 놓치기 아깝다며 오션뷰 식당을 하나 찜해놨다.
우리가 함께 즐겨봤던, 그러나 예상 밖으로 첫시즌이 너무 빨리 끝나버린 넷플릭스 컨텐츠인 <토요일은 밥이좋아>에 등장했던 양양의 떡볶이집을 가려고 한단다. 그런데 오후 네시반까진 속초로 돌아와야한다. 그럼 왕복 두시간을 빼야 하니, 오늘 일정을 알뜰하게 즐기려면 적어도 10시엔 나가야 한다는 논리.
그게 말이 되나.
"안돼. 절대 안돼. 욕심 부리지마. 저녁에 사진관 잡아놓고 굳이 양양까지 동선 잡는 게 어딨어. 그리고 무리한 동선 잡아놓고, 그것 때문에 무리해서 일찍 나가는 건 말도 안돼."
"휴...알았어."
나는 강한 어조로 반대했고 바깥양반은 어렵지 않게 수긍했다. 대화는 통하지만, 내 입장에선 애초에 그런 상상력을 발휘하는 쪽이 문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여행을 부지런히 다니는 건 좋지. 그러나 아기가 있잖은가. 여긴 추운 강원도지 않은가. 그 추운곳에 와서 아이 첫 여행 겸 백일 기념사진도 찍겠다고 속초 사진관을 예약해놨지 않은가. 그 사진관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양양을 갔다가 일찍 와야 하니 일찍 나가자는 것이 아닌가.
절대 안돼지. 실제로 내가 피곤하기도 했다. 여행 내내 매일 일기를 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길게 외출을 하니 몸의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감사히도 아이는 많은 것을 보며 무럭무럭 호기심을 키워가고 있지만, 성장이란 올바른 휴식이 있을 때 제대로 이룩되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날 양양에 오긴 왔다. 4시반까지 속초로 돌아가야 하고, 양양 첫번째 카페에 온 게 2시 다 된 시간. 카페에 잠시 들렀다가 식당에서 식사만 마치고 가면 된다. 바깥양반의 고집이지만 들어줄 수 밖에 없는 큰 이유는 결국 이 여행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육아로 인해 크나큰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 아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지. 3월이 되면 난 출근을 하고, 월화수목금, 그럼 바깥양반, 아니 아내는, 혼자서 긴긴 하루를 아이와 보내야 한다. 그런 일은 좀 미안하니까.
꼭 이래야 하냐 싶지만, 이러지 않을 이유도 없다. 어떻게 하루를 보내든 그것은 지나가는 시간일 따름이다. 나로선, 이 여행에서 온전히 아내와 아이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 참이니 그 하루가 운전석 위에서 흐르는 것과 침대 위에서 흐르는 것의 차이는 크지 않다. 10시에 나가자는 걸 12시 넘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이를 채비시킨 게 나로선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늘 스케쥴과 컨디션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특히나,
이렇게, 아이와 사진을 찍으러 오기로 했다면 말이다.
원래 어린 아기의 사진은 아이가 컨디션이 최상일 때 와야 한다. 바깥양반은 속초로 동백이가 첫 여행을 온 참이니 100일 기념도 겸해서 속초에서 사진을 남겨주고 싶어서 온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아기 입장에선, 아침 7시부터 개어나서 차에서 퍽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난 뒤이니, 아무리 앞에서 엄마 아빠가 재간을 부린들, 사진기 앞에서 미소를 보여줄 순 없는 일이다.
게다가 전문 아기 스튜디오도 아니고 하니, 사진관의 작가님은 친절하긴 했지만 아기의 미소를 끌어내는데에는 크게 역할이 없으셨다. 그런 작가님 앞에서 나는 빡세게 그리고 냉정히 바깥양반에게 피드백을 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 컨디션을 생각해서 일정을 잡았어야지. 낮잠을 재울만큼 재우고 샤워도 한번 뜨거운 물에 푹 시키고 밥도 제대로 먹이고 와서 사진을 찍었어야지. 비싼 돈 주고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어디 걸기도 애매한 사진이지 않느냐고.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돌이킬 수도 없다. 결국 양양에 아이를 데리고 따라간 것도 나. 바깥양반의 과욕을 막지 못한 것도 나. 여행에서, 컨디션과 스케쥴을 제대로 조정하도록 케어하지 못한 건, 책임은 나눠져야지. 오늘의 반성이 내일의 더 기쁜 여행이 되길 바라며 우린 저녁을 알뜰살뜰 먹고 숙소로 향했다.
산요가
본문에 설명한 바와 마찬가지로 무난히 괜찮은 힐링스팟이다. 남은 며칠, 몇번 더 가서 요가하라고 했는데 바깥양반은 고민 끝에 여행을 택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요가로 맞는 이효리 같은 하루! 아이가 없다면 아마 또 했을지도!
한우진국설렁탕
주차장 넓~다. 겨울이라 한정메뉴로 만두국도 하는데, 손맛이 어떨까 궁금.
맴맴
뭐랄까 3년만 전에 왔어도 와우 힙해! 했을 것 같은데 양양에도 고성에도 이런 분위기의 카페는 퍽 흔한 것이라.
거북이서프바
<토요일은 밥이 좋아>에 소개된 식당. 양양의 거센 파도를 바라보며 먹는 술안주 느낌의 메뉴다. 우리가 먹은 메뉴들은 그냥 술 안주로 그냥저냥한 가격대에, 술안주로 그냥저냥한 맛과 꾸밈새였던 느낌. 여름엔 한번 가봐도 좋을듯.
서락사진관
깔끔하고 따스한 느낌의 스튜디오. 작가님께서 친절하게 진행해주시면서 빠르게 액자 두가지 사이즈로 구성까지 해서 제작완료. 아마 아이와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이벤트는 많아지겠지.
우미동
카이센동 20,000원짜리를 각각 2개 먹었는데 평일 저녁시간에 현지인들이 제법 식당에 차 있었다. 잘 모르는 음식이라 맛평가가 어렵지만 깔끔하게 한끼 먹었다. 이 역시 장기 여행의 메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