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고식당들 먹어보고성

겨울 속초 반달살이(13)

by 공존

하루 이틀 또 쉬어갔으니 오늘은 분주히 움직이는 날이다. 당연히도 말이지. 오픈시간이 갓 지난 바다정원에 출동. 다섯해 만에 와보니 원래도 크던 건물 옆에 거의 박물관 수준의 대형 건물을 지어놨다. 어제 갔던 메이트힐이 여러 업체가 합쳐진 거라면, 바다정원은 단독으로 그 정도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위엄이라니.


10년 전에 처음 바깥양반과 속초를 찾았을 때 속초 전역에 오션뷰 카페라곤 바다정원보다 훨씬 오래전에 생긴 나폴리아 뿐이었다. 그때의 나폴리아는 오션뷰라는 것 말고는 허름한데다 앞에 철조망도 있어서 그리 핫플레이스가 되기도 어려운 공간이었고, 어쩔 수 없이 택하는 선택지에 가까웠는데 나폴리아를 시작으로 여러개의 카페가 이렇게 거리를 이루다니 상전벽해. 뭐어 덕분에 화창한 날씨에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기엔 좋다. 아침에 나는 닭강정, 이틀 전에 먹고 남은 것을 먹어치웠고 바깥양반은 제빵소에서 빵을 시켜먹었다. 이런 곳에선 동백이를 데리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지. 엄마 아빠가 아이를 괴롭혀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아직 머리가 무거운 아기는 앉혀놓으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내려와, 그 빵빵한 볼살을 축 늘어트린다. 엄마 아빠 욕심에 아이가 고되다.

이어진 행선지는 아야진 해변. 이곳도 바로 한두해 전과 크게 달라졌다. 일곱빛깔로 도로 경계석을 칠해 바다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잠에 빠져든 동백이를 눕히고 좁은 테이블에서 분주히 일을 했다. 이 바로 옆 펜션에서 코로나가 퍼지기 전 막바지 휴가를 왔었다. 방에서 스파를 즐기며 오션뷰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인데, 당시 가격으로도 퍽 비쌌었다구. 지금 다시 찾아보니 겨울, 평일이라 생각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 그냥 저렴도 아니고 꽤나 싸네?


아마도. 숙소가 너무 많이 늘어난 때문이겠지. 또 나는 차를 몰며 혼자서 골똘이 생각에 빠진다. 차를 달리는 곳곳마다 빈방이 널렸다. 특히 속초나 고성처럼 계절에 따라 방문객이 널을 뛰는 해안 여행지라면 비수기 가격이 꽤나 크게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숙소가 늘어도 너무 너무 늘었다. 국내여행 소요가 아무리 늘었다 한들 이 공급량을 소화하기 어렵겠다 싶을 만큼. 특히 고성이 퍽 그런 편이다. 속초에서 출발해 최대 차로 한시간 이상 달리는 곳까지 고성이 뻗어있는데 그 자락에 모두 숙소는 자리하고 있다. 속초까지만 와도 겨울엔 모두 즐길 거리가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고성은 일반적으로, 속초에서 머물며 한두번 오가기 충분한 곳 정도로 여행객에겐 느껴진다. 아무리 좋은 숙소가 있다고 한들 또, 아야진 정도니까 그나마 지낼만하지 그보다 조금 위로 올라가면 밤에는 불이 모두 꺼져 집밖을 나와서 뭐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정도다.

그런 동네 치곤 말이지.


고식당은 좀 괜찮다. 느즈막히 점심을 먹으러 와서 여긴 좀 맘에 들었다. 우선 위치가 좋다. 백촌막국수 바로 아랫자락이라 백촌에 오는 정도의 감각으로 들를 수 있다. 속초의 청초호를 기준으로 차로 30분이 걸리지 않으니. 아니면 백촌과 고식당 두곳을 묶어서 하루 일정을 짜도 된다. 아점으로 백촌을 먹고 5시쯤, 브레이크타임이 끝나는 시간까지 걷다가, 쉬다가, 마시다가 고식당을 방문하는 일정이면 와 하루 알차다.


고식당의 경우 여러모로 내 취향에 맞는 곳인데 우선 가게가 위치한 곳부터가 시골정경이라, 농촌 기사식당 정도의 입지라고 생각하면 딱이다. 그래, 여행와서 이런데서 먹어줘야지 하고 차를 대고 식당에 올라가면 또 깔끔한 인테리어에 감각적인 포스터. 그리고 페어링할 와인까지 구비되어 있어서 색다른 재미. 이제 음식만 맛이 있으면 된다. 2인에 3만원인 낙지 새우 철판 볶음과 문어부침개를 시켰다고 바깥양반이.

일단은 깔끔한 인테리어처럼 접시 소품 등이 모던하고,그런 가운데 철판냄비는 정작 연식이 제법 되어 보인다. 퍽 오래 다른 식당에서 길들여진 철판들을 들여온 모양. 그리고 미나리가 듬뿍 들어간 것이 반갑다. 벌써 미나리 먹을 철이구나. 위에 올라간 새우는 흰다리새우는 아니고 이름을 잘 모르겠다. 타이거새우던가? 어쨌든, 사장님의 안내대로 끓기 시작하자 불을 줄이고, 새우를 손질해 볶고 있으려니 이내 문어부침개가 나온다 오코노미야키에 문어숙회를 슬라이스해 올려, 평범했다. 대신 가격이 훌륭했는데 저 정도 퀄리티의 사이드디쉬가 1만원.


하여, 지글지글 철판이 한소끔 끓자 나는 낙지들을 모두 건져 바깥양반과 내 그릇에 담았다. 두족류는 대치는 것 이상으로 조리를 해버리면 금방 질겨진다. 오동통한 식감이 살아있을 때 그대로 먹으니 흐음. 부드럽고 감칠맛이 좋다. 바쁠 땐 대기 및 예약을 염두해야 한다고 하더니만 닙득이 가는 식당이다.

철판에 남겨둔 새우 머리에서 지글지글 기름이 끓어나온다. 낙지는 빨리, 그러나 새우머리는 충분히 익혀서 먹는다. 새우머리에서 기름이 끓어나올 이때쯤이 감칠맛이 넘칠 때지. 새우 머리를 집어 깨물어먹는다. 그리고 남은 새우를 집어먹고, 볶음밥을 시킬 차례다. 볶음밥을 주문한 뒤 아침에 다녀온 베이커리 카페에서 빵을 먹어 아직 배도 차 있기 때문에 배도 좀 차고, 동백이는 안기고 싶어해서 아이를 안고 가게를 빙빙 돈다. 그러려니 블라인드 넘어로 저 앞바다가 보인다. 아늑한 시골, 바닷가마을의 정경. 여기에 볶음밥 재료를 담아나온 통엔 또 썰어놓은 시원한 미나리가 가득이다. 볶음밥에 아낌없이 부어준 건 아니지만, 미나리 향이 마냥 반갑다. 겨울에 속초-고성을 들를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기분이다.


바깥양반은 식사 뒤에 두무부침에 간장양파절임을 올린 반찬에도 높은 평가를 줬다. 나도 그렇다. 굳이 메인메뉴들과 겹치지 않는 두부를 저렇게 따로 대접하는 차림새에서 고식당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식사를 하고 나온 우리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걷고싶다!


모처럼 속초까지 여행을 왔는데 통 걸을 기회가 없다. 바람은 싱싱 불고, 4개월 난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돌만이라도 지나면 어떻게 잠깐잠깐이라도 아이를 데리고 걸을 텐데, 매 끼니 외식은 하고 있지, 배는 부르지 그런데 또 아이 데리고 차에는 타야 하지.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아이가 세살쯤 되면 제발 그만 좀 뛰어다니라고 사정을 해야할 시기가 오겠지만 그땐 그때의 일이다. 지금 벌써 몇개월째 아이와 집안에만 갇혀 있어서 둘이서 살이 5kg 씩은 찐 상태다. 그나마, 여행을 오기 전엔 집에서 하루 한시간씩이라도 어떻게 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여행에 와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자연스레 열흘을 넘긴 쯤이니 걷고 싶어서 미칠 지경.


결국 우린 고식당 근처에 차를 대고 교대로 바닷가를 한바퀴씩 돌았다. 한 10분씩 좁은 해변을 왕복했을 뿐인데도 기분전환이 되고,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니 이보다 호젓하고 한가로울수가. 이럴 땐 인적이 드문 겨울의 바다가 더욱 고맙다. 마침 날씨가 바람에 비해 포근한 편이기도 했고.

그러나 우리의 그런 시도도 두번째에는 영 좋지 못한 결과로 끝났다. 거진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는 길이라 해 저물녘에 걸쳐 송지호에 잠깐 차를 세웠고, 주차장에서 여기 전망대까지 딱 5분 거리를 함께 다녀왔을 뿐인데 그 사이에 차에서 잠을 자던 아이가 혼자 차에 남은 걸 알고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차에 와서 아이를 봤을 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였다. 5분 가량을 혼자 울었으니 오죽 서운하고 엄마 아빠를 원망했을까. 다행히 가슴을 몇번 쓰다듬어주니 진정하였고, 우린 차를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속초에서 거진읍 중심부까지는 차로 한시간 거리다. 퍽 많이도 와버렸다. 찾은 곳은 장미경양식. 3대천왕에 출연한 맛집이라고. 바깥양반이 고성으로 코스를 잡으면서 거진의 식당 두군데를 찾아놨다. 하나는 막국수집인데 몇해전에 함께 다녀와서 패스. 후보였던 장미경양식이 낙점되었다.


저녁 여섯시 나절이었는데도 거진읍 시장 거리는 한산하고 어두웠고 경양식집의 간판이 총총히 빛난다. 나는 입구의 아주 낡은 나무간판에 한번, 식당에 들어서서 한켠에 걸려있는 대형 수레바퀴에 또 한번 웃어버렸다. 내부를 싹 리모델링하긴 했지만 가게의 연식과 옛 컨셉을 알만했다. 경양식이 가족외식 장소로 각광받던 시절엔 저 나무간판에 수레바퀴에 어울리는 인테리어였겠지.


그리고 돈까스도 딱 그시절 그맛이라고 할만했다. 1인분에 만원, 곱배기는 1만 3천원. 위치를 고려하면 비싸다. 그러나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오뚜기 스프는 잘 끓여져 나왔고 단촐한 사이드디쉬로 꾸며진 돈까스에선 진짜로 예전 그 "돈까스 맛"이 났다. 소스가 아니라 돈까스에서 우러나오는 특유의 육향 말이다. 돈까스 맛집으로는 점수가 좀 깎일 여지가 있으나, 경양식으로선 꽤나 괜찮다. 요즘에 "맛"을 내세운 돈까스집 치고 만원을 넘기지 않는 집도 없는 판이고, 장미경양식의 경우 두께도 지나치게 얇지 않고, 식감도 제법 살아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경양식 돈까스에 대해 평을 하기 어렵다. 돈까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집에서 직접 만들어먹는 경우가 더 많을 만큼 외식으로서 돈까스를 자주 찾지 않는다. 그러니 요즘 경양식 집의 시세가 어떤지, 차림새가 어떤지에 대해 평가할 기준이 부재하다. 그러나 평가는 가격을 반영하여 전적으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식사를 마친 감상으론 만원 값은 한다고 할까. 단지 최고의 맛이 아니라 경양식 돈까스 고유의 그 맛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집보다 나은 곳이 몇곳이나 있을까.




바다정원

설명은 불필요. 오픈시간 때 일단 와서 자리를 잡은 뒤에 어딜 갈지 고민을 하는 게 좋을듯.


고식당

정갈하고 싱싱한 철판볶음밥. 가격이 좀 나가는 편이다. 2인 4만원은 잡고 가야 한다. 속초나 고성이나 해산물을 주력으로 하는 집은 1인 2만원이 기준선이므로 평균이라 할 수 있다. 그 돈을 내고 매운탕을 먹고는 싶지 않을 때 괜찮은 선택지.


고성빵가

장미경양식과 고식당 사이의 코스로 쉬러 온 곳. 온실뷰를 즐길 수 있는 카페인데 사장님의 선곡 리스트가 내 취향이라 좋았고, 한적한 고성 동네의 분위기라 또 개취.


장미경양식

재작년에 여름 휴가로 고성에 4박 5일 머물렀었다. 숙박이 그나마 동해에서 저렴한 편이기 때문. 그런 여행객들이라면 방문을 추천. 고성에 다른 외식 거리가 많지가 또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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