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넘치는 이 맛은 67년.

겨울 속초 반달살이(10)

by 공존

"자."

"어...센스네. 감사. 근데 안사줘도 되는데."

"오빠도 여기 꼭 와봐. 너무 너무 좋아."

"난 뭐 꼭 안와도..."


바깥양반이 차에 타며 커피를 내민다. 과떼말라라고 쓴 글씨가 아기자기하다. 이제 한시간은 운전을 해야 하니 커피야 고맙지. 아침에 한잔 마시고 아침식사를 했으니, 식사 후 조금 시간이 지나 괜찮기도 하고. 음. 그런데 커피도 맛있군. 나는 커피를 홀홀 마시며 미시령으로 차를 몰았다.

이 커피 같은 경우엔 조금의 유별한 사연이 있다. 내가 작년쯤부터 속초에 가면 좋겠다 생각하고 찜해둔 카페가 있는데, 바깥양반에게 알려주니 대번에 너무 좋다며 자기도 가겠다 한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갈 수가 없다. 아무리 우리 동백이가 순해도, 카페에 앉아있는 한시간 내내 잠을 자고 있을 것이라고 해도.


어찌 이런 것인가. 카페의 컨셉이 굉장히 엄격한 침묵과 사유의 공간인 탓이라 한다. 내 취향이잖아! 그런데 아이가 있으니 가질 못하고, 오픈시간에 맞춰 바깥양반을 데려다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1시간을 꼬박 채워서 바깥양반이 카페를 충만히 즐기시도록 한 뒤, 이번엔 외출할 짐을 바리바리 챙겨 아이와 함께 바깥양반을 다시 데리러 갔다.


"너무 좋다니까. 금요일에 다녀와. 오픈시간에 한시간."

"나 혼자? 너랑 동백이랑 집에 있게?"

"응. 오빠도 해방 시간 가져야지"

"어...해방 시간이라면...나 겜방 좀..."

"ㅋㅋㅋ웃기지마."


실패.


금요일에 다시 올까 말까 아직 결정은 하지 못했다. 커피야 뭐. 사색이나 해방은 뭐. 굳이 필요한 라이프 스타일은 아니니까. 바깥양반 혼자서 메뉴를 세개나 시켜서 매우 매우 흡족한 휴식을 가졌다니 됐지 뭐. 커피가 그럭저럭 괜찮았다. 훌륭하진 않다.

이제 오늘의 메인 코스인 인제의 남북면옥 말인데, 한때 속초여행의 필수코스였다. 막국수 맛을 알아가던 2010년 즈음에 시사IN이었던가, 막국수 특집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찾으니 나온다. 이거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59

나는 이 기사 사진을 폰으로 찍어서 오래 보관했다. 그리고 오며 가며 기회가 있을 때 한번씩 방문했다. 저중에는 물론 실패를 경험한 곳도 있지만, 속초 가는 길목에 딱 위치해서 그야말로 지정학적 위치가 탁월한 인제의 남북면옥은, 그 방문의 편의성 만큼이나 내 미각 세계를 확 일깨워주었던 것.


그러니까 막국수의 경우에 약간의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음식이다. 한때 평양냉면의 슴슴함 논쟁이 있었던 것처럼, 막국수도 밍밍함이라는 진입장벽이 있다. 강원도의 유명한 집들 중 여럿이 실제로 밍밍 그 자체인 육수를 내주기도 한다. 상 위에 올려진 간장, 참기름, 설탕, 식초로 알아서 간을 해먹는 게 요령인데 그 방식 자체가 쉽지가 않다. 막국수가 어떤 맛인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육수 간을 조정한다는 말인가. 기간제로 근무하던 학교에서 워크샵을 갔는데, 전체 교직원이 오며 가며 강원도의 막국수 집에서 다들 어색하게 서로 마주보던 일이 있다. 대체 무슨 맛인지 다들 몰랐던 것이다. 내가 상에 올려진 참기름과 식초, 간장 등을 뿌려 척척 먹기 시작하니 우리 테이블부터 시작해서 주변으로 그 흉내를 냈던 기억도, 막국수에 대한 나의 밑바닥의 기억 중 하나다.


그런 음식이었기에. 매력이 있으면서도 어렵고, 또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막국수. 그 해 겨울에 친한 형, 친구와 속초에 처음 함께 놀러가던 길에, 내가 찍어둔 기사의 사진대로 마침 딱 속초가는 길목에 있는 남북면옥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고, 그 맛은 정말이지,


맛있다.


이게 제대로 된 막국수 맛이구나, 처음 나에게 일깨워준 곳이 여기다. 그래서 이번에 속초 여행에서, 일요일이라 속초에 몰려든 인파를 좀 피하고 싶기도 했고, 10일째라 여행의 분위기 전환도 필요하고 해서 인제로 넘어온 것. 게다가 백촌막국수를 최고의 막국수집 중 하나로 꼽고 나니 뭔가 남북면옥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북면옥의 경우 2010년까진 옛 낡은 집에서 그대로 장사를 했었다. 그런데 두번째 방문만에, 새 건물로 가게를 옮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옛 가게는 골목이 좁아 주차도 어려웠고 했는데 잘됐지 뭐야. 두번째, 세번째, 나는 친구,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의 여자친구 등등 여럿을 데리고 이 집에 찾았다. 홍천양양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이라 미시령고개를 넘는 게 속초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 인제며 횡계를 지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고로 나에겐 마치 이곳이 참새방앗간이었다.


그럴만큼 맛있냐 하면, 1955년부터 장사를 한 근본력 넘치는 맛집인 탓에 우선 육수주전자. 당연히 메밀 삶은 국물인데다가,

수육. 이게 단 돈 만원이다. 고추, 마늘, 막장에 쌈이 딸려나오는데 딱히 쌈이 필요없을만큼 잡내 없이 깔끔하고 부드럽게 잘 삶았다.

그리고 국수. 이 흰 면발을 보라지. 여기에 동치미는 달지 않고 짭짤시큼한 국물이다.

내가 남북면옥을 자주 찾았던 이유가 바로 이런, 막국수 본래의 맛에 충실하면서도 진입장벽이 없이 누구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인데 심지어 그때나 지금이나 가격도 저렴하다. 수육이 만원, 감자전 5천원. 강원도를 오가는 길목에서 이처럼 그 정취를 진하게 느낄만한 집이 또 있을까 싶게.

맛은 이왕 백촌막국수를 윗선에 두었으니 비교를 하자면 메밀향은 덜하고 국물의 자극은 더 강하다. 백촌막국수가 감동이라면 남북면옥은 호감 정도랄까. 그러나 순 메밀면에, 순 동치미 국물로 이정도 퀄리티를 즐길 수 있는 집이 따로 없다. 게다가 덜 알려진 편이라 방문할 때의 수고도 덜하다. 지금은 인제 원통 횡계 등등, 속초를 찾는 옛길을 올 일이 드물지만 남북면옥의 이 맛은 글을 쓰는 지금도 그립고 구미가 당긴다. 짭짤 시큼한 국물에 부드러운 메밀면의 조화는 언제든 반갑다.

식사 뒤엔 바로 옆의 카페를 하나 찾아 노을이 질 때까지 각기 일기를 쓰는 등 시간을 보내다 왔다. 남북면옥에서 인제 자작나무 숲이 차로 15분쯤 되는데, 아이가 있어서 들어가긴 어렵고 그냥 차로 입구 근처로 가서 구경만 하다 왔다. 눈이 와서 쌓여있는 오늘같은 날 자작나무 숲이라면 꼭 좋을 테지만, 아직은 아이에게 양보할 일이 많으니까.


다만, 언젠가는 자작나무 숲에, 그것도 겨울에 찾을 테고. 그땐 남북면옥도 가고 오늘 왔던 카페에 또 와도 되겠다. 좋아. 남북면옥에 또 올 이유가 생겼어. 큰 수확이다.


일요일. 속초로 돌아왔을 땐 이미 해가 저물고, 오늘까진 저녁식사를 식당에서 먹기에 한가롭지 못할 것 같아 닭강정을 하나 골라 집으로 왔다. 드라마를 보고, 아이를 씻기고, 밤이 길고 할 일은 많았다.


남북면옥

맛집에 무료 커피까지 있으면 뭐다?


브릭스 블럭482

위치가 위치인지라 방문객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우리 부부의 경우 시장에 갈 때 보통 여기에서 차 한잔 한 뒤에 내가 슥 가서 닭강정 등을 사온다. 한 겨울이어도 속초중앙시장 주차는 힘들다. 그럴 때 고생하지 말고 주차와 뷰를 함께 해결할 수 있으니 고려할만한 옵션이다. 리뷰에 가격이나 음료의 질에 대한 불만이 있는데 애초에 아메리카노나 라떼나 마시면 되지 왜 베리에이션을 굳이...


그때그집

중앙시장 내에 위치한 떡볶이집. 바깥양반이 지난해에 먹어보고 맛있어서 또 사오라고 해서 갔는데...아니 속초분들...왜 여기서 김밥을 계속 포장해 가시는 거죠...? 먹어보고 싶게...


속초닭강정

달달하고 찐득한 "강정" 스타일을 잘 살린 맛이다. 그런데 뼈 강정을 사려다가 기다려야 한다고 하셔서 순살을 샀는데, 닭 한마리의 정육으로 만든 게 맛나 싶은 것이 가슴살이 좀 많이 눈에 띈다. 또 먹진 않을듯.


커피홀베이커리

인제 자작나무숲 부근에선 유일한 괜찮은 카페. 검색 시 주의해야하는데…인제스테이? 하는 숙소에 붙어있으니 지도에서 검색해보고 인제스테이를 찍고 가면 된다.


카페 루루흐

뷰 말고, 커피 말고, “카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추천할만한 카페. 바깥양반은 매일 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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