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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26. 2022

군산짬뽕 만유기

다섯곳의 중국집, 다섯가지 짬뽕과 짜장면들.

 우리가 군산을 찾은 것은 봄방학이 이어지고 있는 2월의 봄날이었다. 속초에 이어 군산으로 닷새. 중국집 다섯곳을 골라 매일 한군데씩 가보는 일정이다. 운이 좋아 월요일 2시나절에 도착한 지린성, 그 야단스러운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평일이라 홀은 반 가량 비어있다. 군산이 관광지로서 아직은 부족함이 있다는 뜻일 테지만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우리에겐 그저 고마운 일이다.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하니 5분이 지나지 않아 메뉴가 나왔다.

 짬뽕은 첫 술을 뜨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야 이거 완전 시골 짬뽕이네. 사람들이 찾아와서 먹을만하다. 나는 아내에게 큼지막한 당근 두 토막을 집어서 보여준다.


"이거 봐. 당근 이렇게 넣어주는 거 잘 못봤지? 완전 시골식이네."

"응 국물 특이해. 해물탕 같은 느낌이야."

"시골이 이렇게 해 짬뽕을. 시골은 채소가 워낙 흔하고 싸니까  짬뽕에 이렇게 우수수 넣어주는 거지. 애호박이며 시금치며. 이건 와서 먹을만하네."

"응 고추짜장은, 아 맵다."


 지린성의 짬뽕과 고추짜장은 두개가 모두 특색이 있다. 짬뽕은 해물탕에 가깝다. 야채와 해물을 볶아서 풍미를 내는 스타일은 아니고, 찐한 채소 육수, 그리고 싱싱한 해물 육수. 게다가 시금치며 애호박이며 모두 이 겨울에 반가운 채소들이다. 알음알음으로 이런 짬뽕을 내는 시골 중국집들이 조금 있는데, 지린성에서 고추짜장에 곁들여먹기에는 이만한 음식이 없을 것 같다.  맛있는가보다는 희소성과 메인 메뉴인 짬뽕과의 궁합에서 큰 점수를 줄만한 음식. 정석적으로 새우와 오징어 등이 싱싱함을 뽐낸다.


고추짜장 역시 특이한 맛이었는데 희소성면에서, 짜장소스가 일반적으로 먹는 끈적한 스타일이 아니라 덜 졸인 짜파게티 국물과 가깝다. 물론 맛은 천양지차. 꽤나 맵고 간도 세다. 먹다보면 입 안이 얼얼하고 따갑다. 그러나 큼치막한 고추 사이즈에 맞춰 돼지고기를 큼지막하게 썰어 볶아 식감이 훌륭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먹는 짜장의 달달 느끼함과도 거리가 멀고 깔끔하다는 느낌이 남는다.

 

 그에 비하여, 둘 다 양이 퍽 많아 군산에 온 첫 끼니에 벌써 배가 빵빵해져버렸다.

 이튿날은 복성루. 오픈런에 가까운 이른 시간에 가서 10분 남짓 대기를 해 먹었다. 둘째날인 화요일부터 이틀간 폭설이 이어져, 아기를 안고 눈을 맞을까봐 노심초사하며 후다닥 가게에 들어갔다. 5년쯤 전에 아내가 한창 시험 관계로 힘들 때 와서 한참 줄을 서서 먹었던 때가 기억이 나면서, 그때의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에 적잖이 반가운 마음이 생겼다.


어느 지방이 그렇듯 군산도 사람이 몰리고 돈이 몰리면서 새로운 땅덩어리에 아파트와 신축 빌딩이 들어설지언정 옛 거리의 돌과 나무는 대개 그대로다. 복성루의 낮은 천장과 좁은 공간도 그 맛만큼이나 변하지 않았을 터인데.

 복성루의 경우, 우선 면이 다른 짜장면집들과 차이가 있다. 짜장 짬뽕 면이라기보다 살짝 우동면이 아닐까 의심이 가는 두툼한 면발이 식감이 좋게 입에 감긴다. 이 두툼한 면에 볶아서 불향을 입힌 짬뽕 국물이 얹혀지니, 찾아와서 먹을만한 집이다.


 군산에 와서 짬뽕을 먹어야 할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본격적으로 해물 맛이 주가 되는 복성루부터는, 바지락 하나 예사롭지 않다. 바지락은 어지간해선 상등품으로 쓸 일은 없다. 알이 작은 놈을 써도 국물은 잘만 나는데다가, 그렇게 많이 쓸 필요도 없는 것이 홍합도 거의 반드시 함께 들어가기 때문. 그런데 복성루에서 처음 알게 된 건데 군산에서 먹은 짬뽕들이 바지락이 굉장히 크다.

  

 굳이 큰 바지락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외지인들만 와서 먹는 판에 바지락 정도 조금 더 씨알이 잘은 것을 써도 될텐데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즐겁게 해물을 고르고서 국물을 떠보니, 맵지 않고 진한 고추기름이 입안을 꽉 채운다.


 물짬뽕은 아내와 나 모두 처음으로 맛보는 음식이다. 맑은 국물이 걸죽한 것이 풍성한 채소와 돼지고기를 볶아 국물을 낸 뒤 거기에 약간의 양념을 더한 요리. 계란후라이가 바삭하게 튀겨져 올라가있는 것이, 물짜장소스를 붓고 젓가락으로 비비니 이내 노른자가 면발 사이사이로 배어드는 것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잘 튀겨진 바삭한 계란을 면에 말아서 한 젓가락 뜨면, 군산의 낡은 골목에 앉아 느끼는 미식의 행복이 몸 안에 번진다.


지린성과 복성루 두곳을 비교하자면 짜장과 짬뽕 넷이 모두 일반적인 중식당과는 다른 특색이 있어서 찾아올 가치가 있다. 지린성은 짜장을 고추짜장으로 업그레이드 했고, 복성루는 짬뽕을 정석적으로 불에 잘 볶아서 냈는데 자극적이진 않고 진한 국물이 오히려 속을 편안히 한다.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반면, 다른 군산의 중국집들에 비하면 확실히 수준이 높다.  

 빈해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이다. 맛을 따져 지린성과 복성루를 첫날과 둘째날 가보았으니 셋째날엔 빈해원을 찾아가볼만하다. 홀로 들어가니 객잔처럼 가운데가 트여진 건물구조가 낡은 화상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여행객들 입장에선 근대화거리에 위치해 이성당과도 가깝고, 접근성은 앞서의 다른 두 집보다 좋다.

  

 그러나 맛은 장점이 없다. 50개가 넘는 메뉴들 중, 빈해원이 주력으로 하는듯한 요리부를 제끼고 짬뽕에 간짜장 하나를 시켜서 먹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 박하지와 죽순 등, 기본 짬뽕에 일반적으론 들어가지 않는 재료들이 들어가는 건 평가해줄만하지만, 그 이상의 특색이 없다.


 간짜장도 일부러 삼선으로 시켜보았는데 메리트는 없다. 나는 이쯤에서 군만두를 시켜보았는데, 그 이유는 빈해원이 원래 식사부가 아닌 요리부가 주력인 집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이라 하니, 만두를 어찌 하나를 보고 그 실력을 가늠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빈해원에 온 것이 맛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역사적 가치가 있어 셋째 일정으로 정한 집이고, 과식을 피하기 위해서 짜장 하나 짬뽕 하나라는 군산 여행의 컨셉을 지키기 위해 탕수유 등의 요리를 시키지 않은 것뿐. 그런데, 아니 근데 만두가 이게 뭔가.


"시판만두네...아 어이가 없네."

"아니 그러게 왜 시켰어."

"검색해보고 시킨 거야. 3년 전까진 만두 만들었었나봐."

"ㅋㅋㅋㅋ시키지 말라니까."


 만두가, 만두가, 만두가...직접 빚는 것이 아니라 공장제 만두다. 거금 5천원을 투자해 시켜본 것인데 완전히 기대를 배신하고 자시고가 아니라, 조금 황당하기까지. 사람들이 시키지 않아서 점차로 만두를 빚지 않게 되었다면 메뉴판에서 빼기라도 할 것인지 떡하니 메뉴판에 넣어놓고 공장제 만두를 낼 일이 뭔가. 그런데다, 그 와중에 튀기긴 또 잘 튀겨서 더 화가 난다. 원래 이정도로 튀길 수 있는 집이란 말이지. 그리고 요리를 수십가지 구비한 곳이라, 짬뽕에 죽순을 넣을 정도로 나름 쫀심도 부리는 집인 것이다. 그런데 시판만두라. 100년 손맛 설렁탕집에서 깍두기를 공장에서 사다가 쓰는 그런 기분.

 쌍용반점은 빈해원까지 방문하고나서 고민 끝에 택한 곳이다. 원래는 군산의 중국집 하면 지린성과 복성루 다음으로 국제반점이나 형제반점 정도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인데, 국제반점은 지난 여름에 제주도에서 올라오는 길에 잠깐 들러 탕수육과 짬뽕을 먹은 바가 있다. 요번엔 패스.


 옛 군산항 자락에 위치한 쌍용반점은 외지인보다 현지인들이 주로 먹는 맛집이라는데 조개짬뽕이라는 메뉴가 있어 차별화가 된다. 깔끔한 큰 건물에 통유리로 군산 앞바다를 보며 술과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


"어 피조개가 들어가네. 아 맛있다."

"꼬막 아냐?"

"서해쪽에선 피조개라고 해. 여기서도 그러나 모르겠다."


 그런데 조개 짬뽕의 경우, 위에 올려진 싱싱한 꼬막을 한입 맛보고 '음 맛있네' 정도 감상을 처음 받은 뒤에 어떻게 따로 즐거움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섯가지 조개가 들어가있다고 하는데 뭔가가 보이긴 보이지만, 뭔지는 잘 알 수가 없다는 게 쌍용반점의 불리함이다.


 그러나 조개만을 넣어 만든 짬뽕이라는 게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쌍용반점에 들르는 목적은 꽤나 뚜렷해보인다. 항구에 위치해, 노동자와 낚시꾼들이 주로 찾는 곳. 그리고 술을 함께 먹으러 오는 사람이 많은 곳. 외지인인 우리야 알 수 없지만, 다섯가지 조개가 들어간 국물에 다른 요리를 한두가지 시켜 술과 먹거나 해장을 하기엔 퍽 좋을 것 같다. 오동통한 꼬막, 아니 피조개를 짬뽕국물과 함께 한숟갈하는 것은 조개러버에겐 꽤나 흥미로운 체험일 테니. 그리고 기분탓인지 모르겠지만, 홍합도 냉동되지 않은 걸 쓰는지 퍽 부드럽고 맛이 좋다.


 그런데다가 간짜장이 퍽 괜찮다. 지린성의 국물 스타일 고추짜장에 비해 이쪽은, 정석적으로 꾸덕하게 잘 볶아낸 짜장이다.

 마지막 다다원은 형제반점을 마지막 날 코스로 잡아뒀다가 당분간 영업을 안한다는 팻말을 보고 발을 돌려, 영화원을 도전해봤다가 역시 그집도 휴업중이라 피치못하게 택한 세번째 선택지였다. 군산 짬뽕 투어의 마지막에 이렇게 두바퀴나 돌고나서 식사할 곳을 정하게 되다니. 게다가 그곳이, 생활의 달인 맛집이라니.


 생활의 달인이나 삼대천왕 맛집에 한두번 당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 없으랴만, 의심을 가득 품고 방문한 다다원 역시 위치는 나름 괜찮다. 다다미방을 체험해볼 수 있는 군산의 유명 숙박에서 걸어서 3분 남짓. 그리고 주택가와도 면해 있어, 가게에 자리를 잡고서 둘러보니 쉴 틈 없이 주문전화가 울리고 포장 배달을 위해 봉지에 담긴 것만 열가지가 넘는 것이, 우선 현지인 맛집인 것은 확실.


 그 주문행렬에 마음을 놓고 짬뽕을 먼저 맛보니 뭐, 맛은 그냥저냥 무난하다. 다만 7천원의 가격에서 맛보기 어려운 퀄리티다. 양도 많고 싱싱하다. 탕수육이 비범해보여 먹어보고 싶었지만 다다원에 와서는, 짬뽕투어이므로 짬뽕 하나에 중화비빔밥으로 메뉴는 고정되어 있다.


 오징어 한마리가 통으로 들어가는듯한 중화비빔밥은 내 경우엔 그렇게 큰 메리트는 없었다. 불맛 나게 볶아낸 오징어가 중화소스에 더해진 맛. 계란후라이는 복성루의 그 공력과는 비교가 많이 된다. 그리고 오징어를 손질한 솜씨가 좋진 못하다. 좀 잡다한 오징어 머리쪽까지 막 들어가있어서 오히려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다.


다다원에 오는 외지인이라면, 탕수육을 시켜서 식사류와 함께 먹는 것이 좋을 것 같다.가격대가 저렴하게 형성되어 있어 탕수육이라면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을듯하다. 그러나 뭔가 특별한 맛을 원한다면, 중화비빔밥은 특별한 메리트는 없다.

 

정리하자면,


군산에 와서 중국집 다섯곳을 돌아보는 기획이 만족스러웠는가? 하면 인원수의 부족으로 탕수육을 맛보진 못했지만, 나름 성공한 기획이 된 것 같다. 하루에 한가지씩은 특색있는 중국음식을 먹어본 데다가, 그 와중에 고추짜장이나 시골짬뽕, 물짜장에 조개짬뽕까지 개성넘치는 음식들을 맛봤다.


 그럼 어딜 가야 하느냐? 순서대로 정한다면  개인적인 의견은 복성루를 먼저 고려하고  다음이 지린성이  것이며, 나머지는 대동소이하다. 정보와 지식의 발달로 어딜 가나 아주 맛난 짬뽕과 짜장, 탕수육 등을 먹을  있는 세상인지라  군산에 와야만 먹을  있는 음식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린성과 복성루 정도의 음식들은, 맛은 둘째로 하고 찾아와서 먹을 정도의 특색은 있는 데다가, 고생스럽게 기다렸다가 먹을 가치가 있는 만족도가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두세시간 서서 기다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군산에 갈 때 한군데를 간다면 어딜 고를까? 하면 나는 쌍용반점을 고를 것 같다. 쌍용반점 전망이 매우 좋아서, 탕수육에 배갈 한잔 하며 바다를 바라보면 참 행복하겠다.


곧 봄이니, 은파호수엔 벚꽃도 아름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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