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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27. 2022

기억이 낱낱이 스미어든 공간, 카페 선유도에 물들다

고군산군도-선유도

"저거 찍어 바깥양반."

"응? 저게 뭔데?"

"따개비네. 나무 사이에 따개비 있잖아."

 나는 천장의 지붕 살을 바라보다 그것을 발견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저건 분명 따개비. 그러나 가로 지주에 얹혀진 저 목재는 물에 잠겨 생긴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매끈하게 손질되어 왁스칠까지 되어있다. 분명, 바닷속에 잠겨있던 목재를 건져 따개비를 살린 그대로 가공했을 테지.


"그거 알아보시는 분이 많지가 않은데요."


 건너편에서 조용히 노트북을 하고 계시던, 새미 캐주얼한 복장을 매끈하게 차려입은 초로의 사장님이 나지막히 말한다.


"아뇨 근데, 와아 너무 좋네요. 리모델링도 너무 잘 되어 있고."

"흐흠."


 사장님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노트북을 응시하며. 낮게 웃음소리를 낸다. 태도에서 뭔가 느껴지는 저 자부심. 저 자신감. 나무 속에 감춰진 따개비처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그 안에 콕 들어찬.


"혹시 사장님 여기 원래 사시던 곳인가요?"

"네 저희 집이예요."

"아하...그럼 저 목재도 옛날 집에 있던 거겠네요.”

“그렇죠.”

역시.  성공한 인생이시다."

"하하."


 나는 다시 가게 안을 눈으로 쓸어담았다. 뒷마당의 대나무, 집 앞의 찰강찰강한 바닷물. 그리고 대형벽돌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곳의 옛 집의 흔적. 카페의 위치도 보통 심상한 것이 아닌데 옛집을 고쳐서 꾸며놓은 것이 역시 보통 정성이 아니다.


 이 공간을 가꾸기 위해 얼마의 정성을 쏟아왔고, 쏟고 있는 것일지. 얼마만큼의 기억이 그런 정성과 사랑을 이 공간에 불어넣고 있는 것인지.


 아마도 가게의 사장님에겐 그 기억의 범위는 평생.




 얄궂은 전날밤의 폭설이 아침이 되니 화창히 개어있다. 군산에서 한시간 거리, 시원한 드라이브를 즐기며 고군산군도에 가는 길이 퍽 즐겁다. 당일치기로 돌아보기에 고군산군도의 여러 볼거리가 퍽 많다. 화창한 겨울 하늘이 아름답기만 하건만 중간 중간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을 짬을 내지 못했다. 둘러볼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 첫번째, 두번째 카페를 만족스럽게 둘러봤다. 무녀도 마을버스 카페는 따스한 햇살이 조각조각 너울에 반사되는 것을 바라보는 푸근함이, 장자도의 라파르는 좁은 다락방 같은 곳에서 마치 남해의 다도해를 보는듯한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단지 딱 하나, 물이 서해라 좀 탁하다는 것.


 고군산군도는 차로 몇개의 섬을 연결해서 관광이 제법 활성화되고 있는 곳이다. 신시도 무녀도 대장도에 장자도 등, 말 그대로 군도라고 부를 여러 섬들이 모여있다. 꽃 피는 봄에 더욱 아름답다는데, 우린 늦겨울 닷새를 군산에서 보내는 중인 터라 하루를 충분히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자동차로는 이곳 라파르가 있는 장자도와 그 앞 대장봉이 보이는 대장도까지가 끝이다.

 

 나는 아내와 아기를 카페에 남겨두고 혼자서 대장봉에 오르기로 했다. 고군산군도 여행의 필수 코스인데 저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두고 그냥 돌아서긴 너무 아쉽다. 카페 라파르에서 왕복 40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 다만 좁은 섬에 불툭 솟은 봉우리라 중간 이후 굉장히 가파르다. 그러나 어려운 정도는 또 아니라서 남녀노소 즐겁게 오를 수 있을듯.

 대장봉에서 내려오니 시간이 네시가 다 되어간다. 마지막 카페는 내가 찾아둔 곳으로 정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한옥카페가 마침 고군산군도 여행의 핵심인 선유도에 있다. 다만 이름이 조금 유치하달까, '선유도에 물들다'라니. 요즘 네이밍은 아니라서 가는 길에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선유도 해수욕장을 지나 좁은 외길로 차를 몰고 들어가서 나온 곳은,


"왜-."

"어 테이크아웃만 된대. 근데 지금 사장님께서 30분만 앉아있다 가라구 하셔서. 내가 애기 안고 있으니 딱해보이셨는지."

"아 다행이다."

 주차를 하고 나서 가게 앞으로 가니 아직 아내와 아기가 밖에 서 있다. 내가 소리높여 무슨 일이냐 물으니, 사장님이 가게 안을 정리중이신듯했다. 코로나 탓인지 테이크아웃만 하고 있었는데 우릴 배려해서 앉아있다 가게 해주신다니, 드문 친절이다.


"와 여기 노을 되게 좋겠네요."

"그럼요 여기 사진도 있잖아요.

"아하...오..."


 그런데 작은 폰 화면으로 검색만 해서 보던 것보다 훨씬 가게의 외관이 좋다. 숙박으로 쓰는지 옆 건물은 아주 말끔하게 손질되어 있고, 가게 안의 모습도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 허술한 것이 없다. 다만 커피가 역시나 맛은 특별하지 않았는데, 뭐어 바리스타께서 운영하는 카페는 아니니 어쩔 수 없다. 그저 훌륭한 인테리어에 만족하며, 앞바다의 경관에 만족하며 자리에 앉아, 조금 전 급하게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느라 몸을 적신 땀을 천천히 식힌다.


 그리고, 나는 문득 고개를 들다가 이 따개비를, 발견하고 만 것이다.

 그러고 나니 가게의 모든 것이, 가뜩이나 정성 듬뿍 들어가 있는 이 공간이 세상 그 어느것보다 특별하고 사랑스러워보였다. 공간에 스미어든 기억이, 시간에 잠겨있는 애틋함이 이 나른한 오후의 햇볕에, 뜨거운 커피 한모금에 실려 내 몸에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성공한 인생. 나는 부지불식 우리 시골집과 외갓집을 떠올렸다. 나는 친가와 외가 두 집이 모두 시골에 있는 요즘 보기 드문 건실한 청장년이며 또한 그에 따라 쇠락한 양가의 옛집들에 대한 애잔함을 늘 품고 산다. 어린 시절 모기장 하나에 의지해 형제들과 함께 잠을 청하던 좁은 시골집은 과거의 영화를 뒤로하고 한번의 리모델링을 거친 뒤로는 그저 우리 가문의 뿌리를 상징하는 낡은 공간으로만 남아있다. 한편, 어린 시절 산딸기도 따먹고 토마토도 설탕에 재워먹고, 병정놀이와 방아깨비를 잡아와 닭장에 던져주며 놀던 온갖 즐거운 추억이 가득하던 외갓집은 지금 아무도 살지 않아 그저 이모와 외고종사촌들이 이따금 손을 보는 정도다.


 한해 한해 소득을 늘려나가기 위해 아득바득 살아야 하는 시기의 나와, 반백의 머리를 매끈하게 정돈해 차 한잔 마시며, 옛집을 고친 그 자리에서 손님을 받고 그 시절의 영화를 지금에 이어가고 있는 사장님 사이엔 제법 까마득한 격차와 세월이 있는듯, 그러나 그것이 거저는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나는 이 공간이 한없이 부럽기도 하고, 그러나 경외심마저 한켠에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 공간의 따스함은, 전북의 한 섬마을에서 비바람에, 습기와 모기에 시달리고 쪼이며 억세게 버티고 살아온 이들의 기억들이, 그들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만든 것일 터이니까.  

 나는 다시금 일어나 가게 구석구석을 살피다가 집을 고치기 전의 옛모습을 보았다. 옆에, 숙박으로 쓰고 있는 집이 세칸 혹은 네칸짜리 본채이고, 카페는 광으로 쓰던 건물이다. 내가 옛 사진을 보고 더욱 놀란 것은, 그 광이 한쪽 벽이 허물어져 있었는데, 그 허물어진 벽공간을 그대로 살려 문과 창을 이어놓은 것이다. 이 얼마나, 정말 각별한 관심이고 사랑인지.


 이 모든 감상이 따개비를 내가 알아봄에 따라 시작되었다. 사장님은, 30분의 여유를 허락해준 덕에 드물게 그 따개비를 알아보는 손님을 맞았다. 지음(知音)같은 옛 사례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관심이 서로의 즐거움이 된, 이 또한 즐거운 일이다.


 나와 아내는 이 공간을 그만 사랑하게 되어, 그 자리에서 숙박을 검색해보고 언제쯤 군산과 선유도에 다시 올까 또 다시 짤막한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 언제가 되든, 저 목재가 따개비와 함께 잠들어 있었을 저 바다에 발을 담구고 한적하게 노을을 보는 상상도 해보았다.


 분명, 집이 집이었을 시절 이 노을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을게다. 바다의 짠 내음은 목덜미를 흐르는 소금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게다. 마치 박박 닦아내도 그 자리에 흔적이 보기 싫게 남아있는 따개비의 껍질마냥, 섬집아이가 자란 그 집에서의 삶은 지금의 그 모습처럼 여유롭고, 자부심 넘치는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게다.


 다만 객은, 커피 한잔에 그 모든 세월을, 그것이 깃든 자리에서 향기 맡아보는 것이다.


 선유도의 노을은 그렇게 마치 스미듯 우리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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