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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Sep 19. 2022

<헤어질 결심>, 혹은 모던 인어공주

상승과 하강의 점점에 퍼지는 포말과 '마침내' 시작된 교감


인어가 태어난 경치를 바라보는 것은

 만약 인어공주가 혀를 잘라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두 다리를 갖고 예쁜 목소리까지 그대로 간직한 채로 왕자 앞에 섰다면, 그렇다면 그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현실의 사랑은 그 완벽한 조건들이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손쉽게 사랑의 가소성 하나만으로도 인어공주의 비극이 찾아올 수 있고,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왕자와 그 가문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설명할 방도가 없을 것이다. 궁중예법을 알지도 못할 것이고 배우려 한들 다이애너비처럼 왕실에서 구박만 당하는 신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어공주에게 실연의 비극은 언어의 박탈이 아닌 그 출생에, 아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 사실 자체에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우리가 상기해야 할 것은 인어공주가 저술된 시점은 이미 크나큰 범선으로 유럽인들이 미주, 아프리카, 인도에 극동의 끝자락까지 샅샅이 누비며 군홧발로 짓밟아놓은 19세기라는 것이다. 마침내 인간이 바다를 정복한 대항해시대 내내 유럽의 왕실에선 부풀어버린 재물과 자의식을 주체하지 못하고 동족상잔의 이전투구가 더욱 가열차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바다에는 차츰 인간들이 만들어낸 오물과 총검 등의 쇳덩이가 가라앉고 있었다. 천문학과 수리과학의 놀라운 발전이 인어들이나 노닐 깊은 대양까지 인간들이 배를 끌고 나갈 수 있게 한 이유이고 보면, 어쩌면 인어공주와 왕자의 만남 자체가 첨단화된 인간사회의 산물인 것이며 그에 따라 심해의 원시종족과 다름없는 인어의 뭍에 대한 동경은 필연적 절망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어공주의 사랑에 그 의미가 없을까. 범선에는 사람이 오른다. 선원은 필연적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바다에서 눈을 떼는 것은 선원에겐 그 과업의 종말, 혹은 항해의 끝을 의미하는 일이다. 바다는 정복의 대상임과 동시에 끝없는 탐구의 대상이며, 우리가 이해하고 다가서고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또다시 멀어지고 깊어져가며, 새로운 탐험의 장을 우리에게 연다. 바다 속에 우리의 이해를 벗어난 무언가가, 이를 테면 사람의 형상을 한 물 속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하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이란 말일까. 미지에 대한 동경이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의 하나라면, 인어공주가 인간세계를 동경하고 왕자에게 반한 것 또한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또 운명적인 일일지 모른다.


 그리하여 왕자, 아니 선원과 인어공주는, 상승과 하강의 접점, 아래에선 밝은 빛이 비치고 위에서는 깊은 어둠이 비치는, 파도치는 바다의 수면에서 만난다.


해준, 하강 혹은 추락

 두 팔을 수평으로 꼿꼿이 하고 정면의 과녁으로 총알을 날리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해준은 뭍에 속한 존재임을 넉넉히 추량할 수 있다. 그러나 해준에게 있어서 바다에서 뭍으로의 상승은 그가 원해서 이루어진 일은 아니다. 해준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위로 또 위로 향하여 어느새 위태위태한 고지까지 오른 인물이며 그로 인하여 이야기 내내 하강 혹은 추락의 경보를 보는 이에게 날려댄다.


 그가 스스로 오른 인물이 아니라 이끌려 올라간 인물임은 두번의 추격장면에서 명확히 드러나는데, 고지에 올라 품위를 보이기보단 힘겹게 법인을 제압하며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또다른 범인에게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륜에 대한 구차한 감정을 토로하며 눈 앞의 살인자에게 자신을 투사한다. 그리고 서래의 남편 기도수와 마찬가지로 추락, 사망하는 장면을 눈 앞에서 목격한 뒤 자신의 추락을 넌지시 전한다.


 바다사람이 육지멀미를 한다는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해준은 끝없이 올라야 하는 이 삶에서 고통받고 있다. 불면증, 그 원인은, 위로 위로 헤엄쳐가지 않으면 추락하고야 마는 문명인의 숙명을 나타내고 있으며 영화 서두에서 기계의 힘을 빌어 절벽을 오르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기술, 과학, 문명에 의해 그는 고지에 갇혀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서 반드시 그는 아래로 시선을 돌린다. 그곳이 그가 향할 곳임을 알고 있기에.


 그의 아내인 정안이 원자력 전문가인 과학도에 사고방식도 수학으로 꽉 차 있는 것은 감독의 장난끼가 돋보이면서 꽤나 상징적인 부분이다. 과학도인 아내에 의해 섹스 마저 리드당하고, 아내가 온몸을 푹 욕조에 담글 때 고작 족욕기에 발이나 담그고 있는 처지임을 보면 해준은 아내와의 결혼생활을 비롯한 삶 전체에 큰 부적응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끌려서라도 고지에 오르는데에는 빼어난 성실함을 갖추었으며, 또한 고지에서 심연을 바라보는 용기도 갖추었다. 마치 선수상에 버티고 서서 지평선 끝을, 심해의 암흑을 바라보는 선원처럼, 그는 자신의 탐구대상인 범죄 사건들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의지를 보였고, 그것이 마침내 미지의 영역으로의 침범을 그에게 가능케 했다. 그는, 상승할 때는 고지의 끄트머리를 바라보는 인물이고 하강할 때는 가장 깊은 심연을 바라보는 인물. 다만 고지도 심연도, 안개와 암흑에 싸여있어 우리는 그 실상을 알기 어려울 뿐이다.


 그가 홍산오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것은 그래서 몹시 인상적이었다. 선원이 배 위에서 바닷속을 바라보며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듯, 해준은 산오에게서 자신이 골몰하고 있는 범죄사건과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기 때문이다. 심연에서 대상을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보는 그의 갈망은 서래를 만나 끝없는 미지의 미끄럼틀로 쓸려간다.


 그 행보가 수면에 닿을 때까지.


서래, 상승과 구속

 서래는 서쪽에서 왔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외지인의 온갖 메타포를 품은 여인이다. 그녀 자체가 이주여성의 서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배우 본인의 입체적 매력으로 이주여성 서사의 전형성을 조금도 풍기지 않는 점이 신비롭다고 할까. 해준이 바다를 동경하는 선원, 원치 않게 자꾸만 뭍으로 끌려올라가며, 하강을 늘 예비한 인물이라면 서래는 상승의 끝에서 유리천장과도 같은 수면의 벽에 부딪혀 상처입고 찢긴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인어공주가 왕자를 만난 그 지점, 바다의 최상부까지 올라가 기어코 기어코 물을 벗어난다. 그리고 그 선택, 그리고 바다에 묶인 운명에 따라 비극을 맞는다.


 서래가 월요일 할머니에게 읽어준다는 녹색 노트가 산해경이라는 것은 영화 전반에 흐르는 안개처럼 미묘한 기류에 비하면 지나치게 친절하고 유머러스하다. 산해경은 중국 민담 상의 온갖 괴물들이 담긴 책으로, 서래가 적어도 한국사회에선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는 인물임을 시사한다. 그녀가 기도수 살인 후 첫 경찰 조사에서 미소를 흘리는 것, '마침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것 등은 그녀가 교활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인간들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치 인어공주처럼, 그녀는 과학과 수리,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인간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 이미 남편의 가정폭력 증거를 수집해놓은 해준에게 자해로 인한 몸싸움이라는 허술한 변명으로 손톱 아래 DNA라는 결정적 증거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다리를 내어보이는 물색없음, 담배를 쥔 채로 잠에 들고 아이스크림으로 매 저녁 끼니를 떼우는 이 철없음은 무엇인가. 또, 바다에 대한 동경, 상승에 대한 욕구를 감추지 못하고 부산에서나 이포에서나 바다가 보이는 고지대에 자리잡고 살고 있는 것은.

이 장면 스틸컷이 없어서 폰으로 찍음...;;

 사랑이 끝난 지점, 사랑을 깨달은 지점, 사랑이 잊히고 또 시작된 지점에서 서래가 혼자 남은 방의 구도는 그래서 작중 그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장면이다. 방은 거대한 바다, 그것도 심연의 색을 표현하고 있으며 천장은 그래도 수면이다. 해준은 마침내 바다에서 안식을 찾았으나, 그 공간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뭍으로, 불면증과 상승, 그리고 하강이 함게하는 공간으로 나아간다. 서래는 이 바닷속에 고스란히 남아 거대한 천장이 내리누르듯, 수면의 벽에 다시 갇혀 홀로 남았다. 사랑의 기억은 바다에 잠길 것이다. 서래는, 사랑의 기억과 함께 바다에 갇혔다. 다시 해준이 몸을 바다에 담그지 않는 한, 그녀는 헤어날 길이 없다.

폰.......

 한가지, 영상언어 측면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그녀가 해준을 바라보는 시선이 물 아래에서 수면 위를 바라보는 식으로 구성되는 장면이 여럿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요한 수면이기도 했고, 파도치는 바다이기도 하다. 한때는 그 둘이 함께 바닷속으로, 함께 물 바깥으로 나온적도 있으나 마지막, 그녀가 물거품이 되길 택했을 때 다시 대화는 수면의 레이어를 통해 이어진다. 마치, 물 속에 그녀가 언제까지고 해준을 이처럼 올려볼 것처럼. 


 그러나 물 속의 그녀는 뭍에 속한 인간들에겐 한낱 먹잇감에 불과하다. 해준은 생선을 직접 손질해 손 가득 피를 묻히고 해준의 아내인 정안은 눈을 찔러 생선의 신선함을 확인해본다. 이 두 장면 뒤에 서래가 나란히 등장하는 구성을 생각해보면, 해준이 생선을 칼로 토막내듯 곧 서래의 마음을 칼로 후빌 것이며, 정안이 생선으 눈을 찌르듯 두 눈으로 서래를 확인하고, 그럼에도 그녀를 그저 죽은 시체처럼 여길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다. 시장에서 정안은 서래와 아무런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다. 정안에게 서래는 아무 의미 없는 물체이니까. 


외부인과 언어 박탈의 알레고리

 인어공주가 언어를 빼앗기고 왕자와의 소통에 실패하듯, 처음부터 끝까지 서래와 해준은 소통에 실패한다. 둘의 말은 늘 비껴나가고, 마지막의 마지막 한 순간을 제외하곤 매 순간 서로를 이해시키지 못한다. 사랑이 끝난 순간에조차 서래는 해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과학문명의 힘을 빌어 붕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고서야 그가 얼마나 큰 상실을 겪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러나 둘의 소통의 실패는 언어의 문제가 아닌, 태생 혹은 삶의 이력에서 빚어진 문제였다. 대한민국 육지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인 서래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익힌 습속으로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이 되었고, 두 남편 모두의 심각한 범죄행위를 제대로 외부에 알리고 도움을 구하지도 못하는 '목소리를 잃은 존재'가 되었다. 그로 인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해준과 서래의 소통은 마치 빛이 수면에서 굴절되듯 어긋나며, 그들은 다만 수면을 마주하고 선 뭍과 바다의 존재가 서로를 바라보듯, 그 존재 자체의 끌림으로 서로에게 다가간다. 


 해준은 원치 않은 상승의 중력에 이끌려 순수와 본성의 세계가 아닌, 허위와 이치의 세계에 머문다. 그 곳에서 자기를 옭아멘 자의식의 밧줄을 허리에 감고 위태롭게 절벽에 서 있다. 반대로 서래는 이치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심연에 갇혀있다. 두꺼운 푸른 천장을 퉁퉁 두드리지만, 그럴때마다 다시 물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신세. 호미산에 오르는 때에야 둘은 각자의 힘으로 함께 고지에 오른다. 그러나 해준은 뭍에 속하여 물에 이끌리고, 서래는 물에 속하여 뭍에 이끌리어 둘의 빗겨남은 이번에도 반복된다. 해준은 다시금 추락하려 한다. 서래는 그를 상승시킨다. 서래와 해준이 함께 행복한 길이란 고지에 함께 머물거나, 바다로 함께 들어가는 길일 뿐. 아니면, 왕자의 심장을 인어가 갖거나. 


 그러나 해준은 그를 가둔 이치의 굴레에, 서래는 그녀를 가둔 언어박탈의 굴레에 구속되어 결국 둘은 갈라지고 만다. 서래는 이치에 머물지 못하여 사법처리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사랑을 불멸의 것으로 만드는 길을 택한다. 해준은 이치에 묶여 그 사랑을 끝까지 보지 못한다. 최후의 대화가 바다와 뭍을 가르는 도로에서 정지되는 장면은 더욱 비극적이다. 물에 속한 서래와 뭍에 속한 해준. 둘은 나란히 바다를 사랑했으나 동족이 될 순 없었다. 

이 장면의 파도는 서래의 옆얼굴을 구현한 것이라고...

헤어질 결심, 시작된 사랑

 영화 전반에 흐르는 긴장감과 안개처럼 미묘한 감정을 뚫고 마침내 폭발한 감정이 상승과 하강의 접접인 수면에서 흩어지는 순간, 지금까지 꾹꾹 참아온 관객들의 인내심은 아련함의 극치로 전환되고 불가능한 사랑, 불륜과 범죄, 의심과 단절은 불멸의 것으로 치환된다. 우리는 그 바닷가에 해준이 언제까지나 묶여있을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 바닷가에 누운 서래가 그를 언제까지고 바라볼 것임을 안다. 실패한 사랑은 이렇게나 고통스러우면서 영원한 것. 마치 사진에 갇힌 미제사건 처럼 말이다. 


 나에게 이 이야기가 현대적 인어공주로 읽혔던 것은 서래가 "현대사람치고는" 너무나 물색없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법규법에 대한 감수성이 낮으며 자신을 감시하는 타인을, 단지 자신에 대한 호감을 노골적으로 보였다는 이유로 보호 의사로 받아들인다. 모국어를 사용할 때 그녀는 고상하게 논어의 한구절과 비유적 표현을 품위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한국 사회에선 한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신세다. 그러나 바다를 상징하는 그녀에게선 동시에 미지, 향수, 순수가 동시에 읽히며 그것은 그녀의 매력적인 외모나 탕웨이의 연기와 별개로 해준 그리고 보편적 그리움의 정서를 일깨운다. 고통스러운 상승으로 점철된 우리의 생에 서래와 같은 방문자가 있다면, 그래서 그녀에게서 보호본능을 느끼고, 고양이와 대화하는 모습, 아이스크림을 까먹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이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호기심과 끌림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결혼이라는 습속, 살인 금지라는 법제도에서 눈을 돌린 자리에 사랑이 존재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일까? 그러나 습속 이전에 법제도 이전에 인간이 태어났고 사랑이 존재했다. 해준과 서래의 사랑은 그처럼 가장 본질적인, 그래서 멀디 먼 자리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진다. 우리 대개는 그러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따라서 영화가 끝나는 최후의 최후까지 그저 복잡하고 난감한 감정만을 짐덩어리처럼 받아안는다. 그 무거운 짐덩이를 안고 우리는 서래의 죽음과 해준의 기나긴 방황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더욱, 이 감정의 잔향이 쉽게 떨쳐지기 어려울 터다. 


 그저 어딘가에, 정말로 물색없이 한 남자를 사랑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가 사랑을 할 때는 법도 이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수평선, 바다와 땅이 만나는 자리에 잠들었다. 그 수평선에 언어도, 상승도 하강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로소 시작된 이해의 지점에서 마치 메아리처럼 파도가 언제까지나 흰 물거품들을 위로 밀어올릴뿐.


 나에게 이 이야기는 비극은 아니었다. 사랑이, 습속과 제도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었다면 그 사랑의 형태도 언어와 실체 이전의 무언가가 될 수도 있는 것일 테니.


 그녀는 왕자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왕자와 그의 신부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편안하게 잠자고 있었다. 서로의 팔을 벤 채 잠들어 있었다. 인어공주는 몸을 숙여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칼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왕자를 쳐다보았다. 


 안 돼, 그녀는 왕자를 죽일 수 없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그래서 그녀는 창 너머로 칼을 던져 버렸다. 


 칼은 바다로 떨어졌다. 그녀는 칼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갑판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차가운 바닷물을 느꼈다. '난 죽고 있어.' 그녀가 생각했다. 


 갑자기, 인어공주는 자신이 물 위에 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몸이 만져졌다. 


 그녀는 공기 중에 있었다. 그리고 다른 아름다운 뭔가를 보았다.


 "여긴 어디죠? 당신들은 누구세요?  무슨 일이 일어났죠?" 그녀가 그들에게 물었다.


"우리는 공기의 딸들이야." 그들이 말했다. "우린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꽃과 향수의 좋은 향기를 나르지. 넌 이제 공기의 딸이야."


"넌 인어였어." 그들이 계속 말했다. "넌 영혼을 얻으려고 무척 애썼더구나. 공기의 딸들은 3백 년 동안 살 수 있단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하면, 우린 영혼을 얻을 수 있어."


"영혼을 얻을 수 있다고요? 정말 멋져요."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이제, 그녀는 배를 보았다. 배는 고요히 항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왕자와 그의 신부를 보았다. 그들은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들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무척 슬퍼 보였다.


 인어공주는 그들에게 갔다. 물론, 그들은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그녀는 그들 주위를 돌았다. 그들은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왕자와 그의 신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멀리 날아갔다. 그녀는 공기의 딸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함께 좋은 일을 하러 떠났다. 지금부터 3백 년 후에, 인어공주는 영혼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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