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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10. 2022

오타쿠였던 과거의 나 칭찬해

20년만에 또 보니 좀 놀랍군...

 수업을 조금 일찍 마치고 아이들이랑 노닥거리는데, 한 아이가, 책상 위에 자기가 그린 만화를 들고 있다. 그런데 구경한다고 받아서 보니, 실력이 놀랍다. 미디어 풍년 시대에 태어나 얼마나 많은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받아온 것인지. 아이의 만화 연출력이 예사롭지 않다. 


"얘, 어디 올리기라도 하지 그러니. 아니면 스토리라도 지금부터 써."


 라고 말을 하고, 아이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누는데 가만보자...내가 예전에 그렸던 만화가, 아직 인터넷에 남아있을까? 하고 찾아보니 20대 때 쓰던 블로그에, 아직 있다. 다행이다.


 나는 부모님께서 서점을 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 만화산업은 아기공룡둘리 달려라하니 영심이 등등 풍년기였기 때문에(영심이 얘기를 하고 보니 일본의 크레용짱구도 성인만화였다가 아동물이 되었는데, 열네살 영심이 역시 작가분이 성인물을 주로 하시던 분이 청소년 만화의 대명사로 남은 작품을 그린 게 좀 재미있다.) 만화책을 충분히 보고 자랐고, 그래서 고3 때까지 꿈을 만화가로 남겨두었었다.


 당시의 몹시나 열악했던 만화 인프라란, 만화를 그리기 위한 펜촉을 사려면 큰 화방이나 교보문고처럼 큰 서점을 가야했으니. 만화가지망생의 꿈조차 쉽지가 않았다. 어쩌다 만화용 원고지가 생기면, 거기에 이리 저리 그림을 그리고 스크린톤은 언감생심이고...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그려서 동아리 전시회에 출품했던 만화를 꺼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나도 다시 보니 좀 놀랍기도 하고 생각은 많아진다. 요즘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만화 지망생의 꿈을 유지하면서 그림을 계속 그리지 않았을까? 꼭 직업이나 학과를 다른 길로 가더라도 말이다. 


 나에게도 당연히 타블렛은 있다. 그리고 짬이 나는대로 그림일기를 그리려고 애를 쓴다. 아이를 위해서. 비록 꿈은 내게서 멀어지긴 했지만 과거의 오타쿠였던 나 때문에 지금 이런 즐거움이라도 끌어안고 살 수 있다. 옛 블로그는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니 겸사겸사, 브런치에 옮겨둬야지. MBC에서도 방영했던 마법진 구루구루 (구루구루는 빙글빙글이라는 일본어 의태어로, 국내에서는 "환상의 마법 쿠루쿠루"라고, 뒷부분의 의미를 살리진 않고 음차만 해서 번역 방영했다.)


 내가 아이의 만화를 보고 컷이나 연출을 보고 놀랐는데, 내 옛 그림을 보니 지금의 나보단 나은 구석이 너무 많다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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