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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l 03. 2022

삶의 접촉면

더 모어 마찰 더 모어 표면적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두시간씩 글모임을 한다. 그래서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기부터 챙겨야 하지, 그러고 나면 일요일 오전, 아내는 집을 벗어나고 싶어하지, 이미 한주의 대학원 수업과 육아 등으로 지쳐있는 나의 몸을 이끌고 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몇시간 밖에 머물고 들어오는 것이다. 바쁜 삶의 틈바구니 사이에 일요일 아침 일곱시반부터 아홉시반까지 두시간을 바쳐야 하는, 3월 초부터 꼬박 해 온 일인데 물론 얻어지는 것도 많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봐주고, 이렇게 글이 쓰이게 된 경위를 이야기 나누고, 때론 어떻게 교육을 바꾸어나갈지에 대해 논쟁도 하면서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오늘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글모임에 참여하는 학부모님이 자주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내어, 나는 그분과의 대화로 벌써 두편의 글을 썼는데, 오늘은 그 어머님을 중심으로 학교에서 겪은 비민주적 경험을 두시간 내 들으면서 여러가지 진단과 함께 글쓰기, 문제 해결 두 방향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어머님의 학교는 노회한 학교장이 전체 교사들과 학부모회까지 꽉 쥐고 운영하고 있는 학교였는데, 그래서 학부모회도 허울뿐인 자치회, 학교대토론회는 학부모들의 낮은 참여율(학교민주주의가 부재하고 민주적 효능감이 없으니 학부모들의 참여율이 높을 수가 없다.) 속에, 참여한 학부모가 교사에게 훈계나 듣는 그런 충격적인 일을 여러가지 들을 수 있었다. 


 반면 이 학부모님은, 학부모회 임원을 하며 학교장의 정치력에 농락당하는 학부모회 속에서 왕따에 가까운 소외를 당하면서도 틈만 나면 의견개진을 하며 꿋꿋하게 아이의 학교에서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분투하고 계셨다. 온라인 수업 시엔 쌍방향 수업을 늘려달라, 혁신학교 재지정 토론회에선 실제 부담을 겪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게 해달라, 학부모회에서도 실질적인 학교참여를 할 수 있게 해달라 등등. 말 그대로 좌충우돌, 이곳저곳에서 받고 받히는 와중에 우리 글모임에 와서 지금까지의 비민주적 학교 경험이 어떤 성격인 것인지 알아가며, 적지 않은 위로를 받고 계시다고 한다.


 나는 이 어머님을 보며 삶의 표면적에 대한 생각을 떠올린다. 삶에서 많은 마찰이 발생한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면적이 넓다는 뜻이다. 우리가 마찰이라는 말을 부정적인 어감으로 받아들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매 순간 마찰을 하며 살아간다. 지금 당장, 내가 의자에 앉아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 단순한 동작에도, 나와 의자 사이의 마찰력, 키보드를 쓸어내려가는 내 손과 키의 마찰력, 멀쩡히 잘 제자리에 앉아있는 모니터의 마찰력, PC 본체의 마찰력 등 수 없이 많은 접촉면이 존재하고, 거기서 마찰력은 발생하고 있다. 마찰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의 문제일뿐, 마찰은 늘 존재한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는 말처럼, 우리는 그것을 매 순간 선택하고 있을 뿐이다.


 학부모회에 굳이 참여해가며, 굳이 대토론회에 참여해가며, 가서 교사에게 훈계를 당해가면서까지, 이 어머님을 학교민주주의에 대해 계속 추구해나가도록 한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한 개인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의지, 그 본성 자체라고 생각을 한다. 호랑이가 개 우리에서 살 수는 없듯, 개인의 생애과정을 통해 더 넓은 삶의 표면적이 생겨나도록, 덩치가 커지고 활달해진 삶의 에너지체는 좁은 틀 안에 갇혀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갇히는 순간 더 많은 마찰이 발생하고, 만약에 틀이, 그 사람을 묶어두려고 한다면 발생하는 것은 마찰의 파열음이다. 


 삶의 접촉면에서 발생하는 마찰에 대하여 어찌 감당할지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아예 무관심하거나, 개개의 이익을 내세우곤 한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각자의 과정이 있다. 그 중에 유익한 것은 오늘 이야기 나눈 학부모님의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마찰하되 파열하지 않으며, 저항하면서 스스로 패배하지는 않는. 그러므로 삶에서 마찰이 자꾸, 생겨난다고 또 슬퍼할 일은 아닌 게다. 나의 삶의 표면적에서 발생하는 일일 따름이니. 그 모두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기도 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찰은 마찰로 끝나지 않고 마찰"력"이다. 순방향과 역방향, 미끄러짐과 지탱하는 힘 중 어찌 이끌지는 또 그 마찰하는 사람 각각의 능력에 달린 것일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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