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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10. 2022

세번째 종강

이제 논문! 

 체력과 건강이 쇠한 것이 느껴진다. 1월부터 잦은 밤샘으로 만성적인 가슴 통증이 자리잡았다. 6개월 꼬박, 매주 2,3일씩은 새벽 늦게까지, 때론 동이 틀 무렵까지 밤을 새며 과제를 했으니 안아프면 이상한 일이지. 정말이지 무리한 6개월이었고 아직 끝은 나지 않았다. 한 2주, 세가지 수업의 기말 레포트를 쓰고 나서야 비로소 해방이 될 것이고 지금 내 주방에는 밀린 설거지, 하지 못한 이유식이 남아있다. 자정이 될 무렵에 아이를 재우고 나서 주방에서 뭘 하기도 어려운지라 나는 오늘의 소회를 정리키 위하여 맥주를 하나 들고 자리에 앉았다. 종강. 세번째 학기의 마지막 수업이 오늘 끝. 


 세번째 학기의, 세개의 수업의, 세개의 기말 과제 약 55페이지 분량을 남긴 이 시점에 내가 자랑하듯 글을 쓰는 것에는 나름의 의의가 있다. 의정부에서 관악구의 서울대까지 차를 몰고 가지 않아도 된다. 일주일에 세번 말이다. 그리고 매주 밤을 지새우게 하던 과제로부터 일단 해방이다. 2주간, 나름의 템포로 세개의 기말과제를 각각 작성하면 된다. 훌륭한 학생은 시험기간에 닥쳐서 벼락치기를 하지 않는 법인데, 나는 나름 밤을 지새워가며 세개의 수업 모두 소기의 성과는 남긴 상태이므로, 그 세개의 기말과제가 과히 부담이 되는 상태는 아니다. 열심히 했다. 건강과 체력을 바치고, 코로나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4월이던가. 육아와 학교 근무와 대학원 세가지가 내 몸을 짜부러트리며 슬슬 영혼과 심장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기 어렵도록 모두가 같이 나에겐 중요한 일들이었다. 그러나 나의 스승이기도 한 지도교수님의 행보를 보면, 아 그게 그냥 사는 거다 싶다. 지도교수님께서는 종강을 하자마자 해외 출장이시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낮엔 협력업무를 하고 밤이면 밤마다 학생들의 기말과제를 검토하고 평가하게 되실 게다. 일전엔 주차장에서 지도교수님을 딱 마주쳤는데,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며 강의동 건물 앞에까지 오자 휴 하고 짧게 심호흡을 하신다. 연유를 여쭈니, 오늘 하루 할 일이 벅차서 그러시다고. 그런 것이다. 지금의 나의 삶은,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기도 어려우나, 그렇다고 비명소리를 바깥으로 내기에도 부끄럽기만 한. 


 몸이 더 이상은 견디어주지 못하는 마당이니 종강을 하자마자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당장 해야겠다. 지금 내 방에 가정용 로잉머신이 있는데 당근마켓으로 거래해 사오고 나선, 영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아서 그냥 관상용으로만 두고 있었다. 헬스장에 등록을 해서 제대로 몸을 혹사시키고 싶은 마당이었는데, 종강을 하면 육아에 더 힘을 쏟아야 할 것 같으니 헬스장은 관두고 집에서나 저 가벼운 로잉머신으로라도 해보아야겠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아령도 집에 있고 하니, 이제 마음먹기 달린 문제 뿐. 


 견디고 견디다, 심전도 검사까지 한번 받아가면서 5월을 넘겼다. 5월 말쯤부턴 이제 종강이 손에 잡힐듯 가까워졌다. 그래서 마음은 마구 조바하면서 종강이 기다려졌으나 웬걸, 논문계획서 발표 평가(프로포절)가 툭 튀어나와 3,4일 정도, 그중 절반은 밤을 정말 새우며 보냈다. 그러고 나니 이제 정말 종강이 굴러떨어져와 있는 지금이다. 이제 남은 한 학기는 논문학기로 교수님과 교신을 하며 열심히 내 연구를 하고 시간을 보내면 되니, 먼 길을 다녀올 걱정은 덜었다. 그러니 정말 고생이 끝났다는 실감에, 새삼 기분이 홀가분하고 기쁜 것이다. 

  왜 이 길을 걷는가. 요즘 들어 부쩍 주변에서 장학사 이야기를 듣는다. 장학사라, 교사로서 뭔가 뜻한 바가 생기면, 이루고자 한다면, 거쳐가야 할 길이다. 이런 길을 스스로 걷고자 생각한 바는 없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으니까. 그러나 현장에서 아이들과 호흡하고 있다보면 당연히, 한 명이 손에 쥔 분필로는 교육이라는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한계를 절감하게 되고, 그럴 때 그 교사는 분필을 놓고, 칠판을 떠나, 책 속으로 그리고 정책 계획서로 들어간다. 연구를 함으로써 교육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 정책을 내놓음으로써 교육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로, 한 사람의 길은 갈라지고 또 이어진다. 내 길도 고스란히 그러했는데, 그렇다고 교실에서 마음이 떠난 바는 없으니 앞길은 한치 앞 모를 안갯속이다. 어디에서 있든 교육을 바꾸려는 시도는,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고, 무엇보다도 방학이란 게 있으니 하루 하루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는 길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또 누구나 이 교육이란 게 무엇인지 또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는 그런 고민을 관통하는 대사가 나온다. "삶의 정수The Quintessence of life" 사진 작가인 숀 오코넬은 파도처럼 시시각각 흐르고 뒤섞여 변화하는 세계의 질서와 삶의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하여, 단 한장의 이미지에 생생한 삶의 진실을 담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다. 그것을 동경하는 월터는 16년의 안주를 마치고 마침내 숀의 세계로, 삶의 정수를 갈구하는 여정으로 뛰어들고 마침내 만나게 된다. 삶의 정수. 단 한장의 사진 속에 담긴 이 삶의 진실을, 그 안에 관통하는 메세지를 고스란히 살려내었던 그의 치열하고 장구한 흔적을. 


 왜 공부하느냐, 하면, 장학사를 위함은 아니요, 오로지 삶의 정수를 찾아온 과정이었다 하면, 사람들은 믿을까. 한길에 불과한 내 마음 속을 들여보게 해 줄 도리가 없으니 나 또한 다른 사람들, 나에게 장학사에 대해 말하고 떠밀어가는 이들의 속을 알 길도, 재단할 이유도 없다. 수백 수천 년의 인간들의 역사가 담긴 이 책장에서 찾아낸 삶의 정수가, 월터와 숀이 보여준 이 생생한, 피와 땀이 흐르는 실제 삶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삶의 정수와, 다르다고 생각되진 않으니, 그저 나에게 이 2년, 지금까지의 1년하고도 반년, 그리고 남은 반년 모두가, 그 하루하루가, 책을 통해 그리고 그 책에서 배운 이론을 학교 교육에, 내 손에 쥐어진 분필, 아니 분빌은 아니고 수성 보드마카에, 아이들과의 교류에, 아마도 살아있겠지. 그리고 밤에 집에 돌아와 이유식을 만들고, 아이를 끌어안고 잠에 들도록 달래는 시간에도. 아내와의 모처럼 갖는 육퇴 시간에도. 


 그 모든 것에도, 삶의 정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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