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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05. 2022

나의 선택, 내가 받아든 결과

한번 뿐인 인생에,

"마 김영득이, 너 그림 하나 좀 그려볼래? 우리 청첩장에 넣을."

"...해보마. 사진 보내. 원하는 컨셉이랑."


 다른 것도 아닌 청첩장을, 나같은 프로도 아닌 아마추어에게 맡기다니, 아무리 20년이나 만난 친한 친구라고 해도 이거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건 좀, 대강 하기 어려운 의뢰지 않을까? 게다가 나는 3월 초, 마침 진짜 정말로 바쁜 와중이었고 말이다. 


 그즈음의 나의 상황은 어떠했냐면, 2월말에 논문 준비로 몇일 또 밤샘을 해가며 기일에 맞춰 제출할 문서를 제출한 뒤였고, 개학을 맞아 분주히 내 학교 수업 준비에 대학원 수업 예습에, 바쁘고 바쁘게 지내던 와중이다. 학교 수업 시간표를 이리저리 옮겨서 대학원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세팅을 하는데만 이틀에 걸쳐 몇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개학 뒤엔 또 워낙 공부할 분량이 늘어날 터이니 시간이 나는대로 책도 읽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나, 대학원 수업이 세개씩이나 되는데다가, 집에오면 뭘 한다 아이를 본다. 말 그대로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는 삶에, 짜낼 수 있는 건 자는 시간 뿐이다. 누가 봐도 나 자신에게나 요청을 한 친구에게나 조심스러운 상황, 


이지만, 

어쨌든, 

나는,

 

 수락했다. 이내 친구놈에겐 신부님의 사진이 두장, 그리고 손그림 청첩장의 샘플이 몇개 날라왔고, 나는 오며 가며, 어떤 그림이 좋을지 천천히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은 일촉즉발. 당연히 짬은 나지 않으니 머릿속의 그림은, 손으로 옮겨지지 않았고 친구의 상견례는 다가오고 있었다. 상견례 때 청첩장은 보여드리고 싶다는 친구의 바람이 있으니, 나는 내 바쁜 사정을 언제까지고 내세울 순 없는 것이다. 마침내는, 대학원 수업을 듣다가, 워드패드에 슥삭, 첫번째 스케치를 그려 친구에게 보냈다. 

 첫 스케치의 아이디어는 내 오리지널이지만 그렇다고 독창적이지도 않다. 인물들이 나란히 달리고 있는, 애니메이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구도다. 흔한 구도라는 것은, 누구나 받아들이기 좋고 쉬운 그림이라는 뜻이다. 


"구상했던 것 중 하나야."

"신부가 귀엽다 하더라."


 어디까지나 스케치였으므로 나 자신은 이 그림에 대하여 만족함과 불만족함이 동시에 다가왔다. 스케치이긴 하지만, 괜찮게 그렸다. 그런데 스케치라곤 해도, 신랑의 얼굴 각도가 마음에 들진 않는다. 좀 더 얼굴을 숙ㅇ서, 입 정도는 가려져야 내가 예상한 그림인데, 후다닥 러프하게 그린 것이라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의 재촉에 따라서 나는 주말에 아이와 아내와 거실에 머무르면서, 짧게 후루룩 몇개의 스케치를 더 해 보냈다. 어떤 건 반지 도안, 어떤 것은 캠핑 도안, 어떤 것은 액자 도안으로.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만족과 불만족을 다시, 동시에 느꼈다. 이것은, 내가 택해 내가 버린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내내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으면서도, 즐겁게 해주고 있는 기묘한 상황.


 그림은 내가 가졌던 최초의 취미이기에 그것을 할 때는 늘 즐겁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 그저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 이따금밖에 할 수 없는 일로 남아있다는 문제에 대한 아쉬운 감정도 언제나 생겨난다. 나에게 그림의 재능이 없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다. 그러나 진정으로 내가 그 일을 추구할만큼의 여력이나 환경은 주어지지 않았다.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몇가지의 재능을 선보인 뒤엔, 공부의 길로 접어들어야 하고, 짧은, 나의 정규직 취업 뒤의 자유분방한 삶 뒤엔, 다시 먼 미래를 위한 대장정으로 나의 삶을 쥐어짜는 일이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림을 그리며 종종 부부의 삶, 임신과 육아에 대하여 나누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이 즐겁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나에겐 그런 여유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나의 진로와 그 결과로 받아들게 된 지금의 삶의 조건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러면서 내가 만족할만한 실력을 키우는 그런 일은,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친구는, 첫번째 스케치를 골랐다. 그리하여 나는 금쪽같은 공강시간을 쪼개 학교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 또한 차라리 시간이 있었으면 주말에라도 했을 일이지만 나에게 집에서? 주말에? 뭔가를 내 개인 일에? 투자하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다행히 그림은 금방 완성되었고, 이번엔 스케치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누가 보더라도 최상의 결과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나왔다. 신랑과 신부 모두 만족했고, 나는 그 주 주말은 한가로이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오랜만에 흰 종이 위에 그려진 나의 창작물에, 나는 기쁘면서도 서글펐다. 이런, 내가 좋아하는 그림, 내가 잘하는 일은, 언제까지고 짬을 내서 해야 할 뿐이니까.


 친구는 이것 말고도 캠핑 도안도 완성해달라 부탁했고, 그 그림은 월요일 오전에 완성했다. 그날은 내 대학원 발표수업과 논문시험이 겹친 날이어서 그림을 그린 그날 나는 단 두시간만 잘 수 있었다. 두시간만 잠을 잘 수 있었던 그날에 나는 미리 두시간을 친구의 청첩장에 할애한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당사자에게 낑낑댈 일도 아니다만 나의 삶은 그런 형태를 띄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이에, 내가 버려두었던, 그러나 내가 간직해 온 나의 작은 특기, 내가 좋아하고 또 내가 잘하는 일은, 어쨌거나 퍽 기꺼운 형태로 점차 완성되어 갔다. 

 그리하여 3월의 마지막주쯤, 나는 친구에게 청첩장을 받고 술과 고기도 얻어먹었다. 내 손에 들려진 작은 청첩장엔, 내가 쌓아올린 대강 서른 다섯 해 쯤의, 온갖 시절과 세월이 차곡차곡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다섯살 고사리 손으로 만화책을 베껴 그리던, 문제지 여백에 그림을 그리며 스트레스를 풀던 수험생 시절의, 마침내 성인이 되어 내 길을 가면서 포기했던, 다양한 나의 모습들. 매 순간의 나, 들. 


 그런고로 내게 그림은 나의 선택이기도 하고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한, 어쩌면 미래의 날 보여주기도 할지 모르는 그런, 애상과 선망의 어떤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딱히 이 그림이라는 특기가 어떤 밥벌이 따위가 되어주진 않을 터이지만. 그럼 또 어떠랴 싶다. 나만 보면 됐지. 내가 좋아 내가 그리는 일일 따름이다. 


 아마도, 당분간 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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