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무엇에 대해 쓰는가

by 공존

앞서, "왜"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무엇을" 쓸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할 차례다. 교사는 무엇에 대해 쓸까?


누구에게나 글쓰기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나의 생각의 옳고 그름을 확인할 수 있고, 타인과의 교류의 장을 열고, 세상을 보다 나은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글쓰기의 세가지 소용을 마음에 담고 그냥 무엇이든 꾸준히 써나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무엇에 대해 글을 쓸지 갈피가 찾아진다. 그러므로 우선은 자유롭게 충분히 써나가는 게 가장 좋다. 하루 하루의 교실 이야기라거나 우리 과목의 어떤 중심 지식 내용이라거나, 아이들의 목소리라거나.


이렇게 좋은 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많은 교사들이 글쓰기를 도외시하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무엇인가 얻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지난해에 요상한 단체에 하나 가입해서 글쓰기를 꾸준히 할 일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 아직 글쓰기 수련이 되지 않은 한 참여자가 "원고료를 안주나요?"라고 물은 일이 있다. 원고료라 함은 그의 글이 타인들에게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공공연히 합의가 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글을 쓰자고 모인 사람들이 원고료부터 탐을 내니 제물에만 욕심을 둔 사람으로 보였고, 예상대로 그는 1년간 단 한편의 글도 써올리지 못했다. 글쓰기라는 노동 활동을 했는데 원고료를 받지 못하니,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다고 그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의 소용은 글쓰기 노동으로 인한 수익에 있지 않다. 글쓰기가 노동으로 인식되는, 수익을 고려하는 이런 단계에서는 굳이 힘들여 썼더니 내게 돌아오는 것도 없고 효능감도 생기지 않다고 느낀다. 금새 그만두기가 십상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글쓰기를 당연히, 돈벌이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자기계발 과정이나 소통의 과정으로, 나 자신을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 글쓰기가 자기연찬의 방법이 되는가? 그것은 글쓰기가 고도의 사고과정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자하면 가장 먼저 하나의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관찰과 분석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대상이 위치한 맥락과 배경에 대해 사고해야 한다. 그 다음엔 그것을 나 자신과 연결시키고, 내 글을 읽을 독자들을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한 문장 한 문장, 마치 아귀가 척척 맞도록 벽돌을 쌓듯, 색색 각각의 다양한 블럭으로 테트리스를 하듯, 글을 이어이어나가야 한다.


문장에서 문장으로 글을 이어나가는 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다. 글이 밀어지지 않는다. 하얀 원고지를, 혹은 하얀 모니터를 두고 자판을 두들기며 우리는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나의 글과 씨름을 하게 된다. 그러나 글은 쓰면 쓸수록 내 안에 문장이 쌓이고 문장들의 연결고리, 그리고 문장들이 모여 생긴 구조물이 쌓이게 된다. 글이 앞으로 나가지지 못한다고 느껴진다면 그러므로 더욱 써야 한다. 쓰고 쓰다보면 결국에는 문장은 나아가고 글은 내 원고료의 마침표 바깥으로 밀려나진다. 이 모든게 하나의 수련이고 훈련이며, 그를 통해 정교하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나의 내면이 성숙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가장 좋은 자기연찬이다.


두번째 해결책은 나 자신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나의 감정을 밝히는 일로 글쓰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과 교류의 장을 여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일이다. 요즘 거의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는 MBTI의 I 성향 사람들처럼, 타인과 교류가 그리 달갑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 타인과의 교류의 장을 여는 것이 글쓰기의 소용이라고 할지언정, 글쓰기가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그럼, 나 자신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것, 나의 감정을 밝히는 것은 교류와는 조금 다른 의미일 터이다.


나를 타인에게 인식시킨다는 것은 다시 말하여 존재의 증명이다. 우리의 어떤 평범한 하루가, 일기 한 편을 남김으로써 두고 두고 기억되고 인식될 수 있는 것처럼, 글을 써나가는 일은 나의 존재를 타인에게 인식시키고, 그들과의 영역을 구분하는 선을 만들고, 서로에게 존중할 수 있는 연결점을 만들어나가는 활동이다. 이를 통해 교류가 아닌, 나 자신의 좌표가 내가 속한 집단 안에서 생성되고, 내가 원하면 그들과의 교류가 생길 것이며 내가 독립을 원할 경우 타인은 나의 영역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 선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일을 나 자신과 하는 일이 나 자신의 감정을 밝히는 일이다. 나를 타인에게 인식시키는 것과 나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인식시키는 것은 영역만 다른 같은 활동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를 앎으로써 나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더욱 잘 다룰 수 있게되고, 그를 통해 세상을 더 명료히 인식할 수 있다. 감정이란 세상을 인식하는 통로에 존재하는 필터와 비슷하다. 같은 현상도 감정에 따라 다르게 인식이 되니까. 글쓰기를 통해 내 감정을 추적함으로써 그 발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이 감정을 흥분시키지 않고 조화롭게 내면에 안착시킬지 알아갈 수 있다. 그런 노력을 통해 내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고 나를 긍정할 수도 있다. 글쓰기란 이런 의미를 가진 일이다.


교사는 운이 좋은 집단이다. 사무직이며, 업무 중 공강시간도 나름 있는 편에, 교실생활, 아이들의 모습, 교과지식 등 글에 담기 좋은 일들이 많은 직장을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교실 속에서도, 내가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다면, 이 두가지 방법에 대해서 우선 써보아도 좋다. 글쓰기의 주제가 "나는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될까?" "지금 내 감정들은 무엇이고 이것은 왜 생겨났을까?"가 된다면, 그래서 이 글이 길게 길게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나 자신에게 이롭고 효과적인 글이 아닐까.


만약 높은 글쓰기 수익을 바라는 교사라면, 당연히 전문적인 글쓰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전문성과 대중성은 아예 반대의 방향성이다. 대중적이며 전문적인 글은 많은 노력 끝에 얻어지는 매우 복잡한 고도의 사고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연습과 대중성을 위한 연습이 별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양쪽의 수련이 이루어져 하나의 대중적이며 전문적인 글에 담기는 것이다.


아주 쉽고 효과적인 전문적 글쓰기가 있는데, "자기 내러티브"라는 글쓰기 방식이다. 자기 자신의 내러티브, 즉 살아온 이야기. 이는 또 위에서 이야기한 글쓰기 싫은 사람에게 효과적인 두가지 글쓰기 방법, 자기연찬을 위한 글쓰기와 자기인식을 위한 글쓰기와 비슷하다. 나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고 그것을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인데,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각자가 다르게 받아들이는 저마다의 현실인식을 모두가 옳다고 전제하고 각자가 그러한 판단을 하게 된 과정을 스스로가 객관적인 것으로 만들어 들여다보는 일이다. 자기 내러티브로 논문도 잘만 나온다.


먼저 나 자신이 누구인가,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갈고 닦으며, 그것을 타인에게 드러내보이고, 나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가. 이것은 모두에게 중요한 글쓰기 소재다. 글이란 반드시 "나"에서 시작된다. 이어서 다음에는 나에서 시작된 글쓰기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세상 속에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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