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대학원 두번 붙은 사연(18)
아침 7시가 조금 안된 시간, 나는 집을 나섰다. 집에서 서울대까지는 대중교통으로 2시간. 그것은 나에게는 지난 2년간의 긴 준비의 시간을 정리하고 평가할 한번의 전환점이 될 것이었다. 가방에는 그간 준비한 필기 시험 문안들 몇개의 중요한 논문을 챙기고 나는 텅 빈 지하철에 앉아 눈을 감았다. 이제 시작이다. 대학원 입학시험을 통과하고 나서는 본게임인 교육청의 파견 평가가 남아있다. 이미 지난해에 시험조차 치지 못하고 포기하지 못한 판이라 나는 절박했다. 그리고 7호선의 시점인 장암역에서 지하철이 출발하면서 차츰 생각은 뒤에서 앞으로 향했다. 앞으로, 앞으로. 이제 시험을 치고 나면 미뤄두었던 게임부터 좀 하자.
지하철을 두번 갈아타 낙성대역에서 내렸다. 일찍 온 편인지 토요일의 이른 아침, 아직 서울대 후문으로 오르는 마을버스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마을버스까지 합치면 세번의 환승. 그리고 후문에서 기숙사를 지나 사범대 건물 앞에 내리는 또 10여분 걸리는 길. 그러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했다. 앞서 먼저 석사 과정을 마친 친구들이라는, 이뤄진 현실이 내 가까이에 있었다. 나에게도 대학원 합격 후의 미래가 그리 어려운 일일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사범대 앞 건물에는 지난번에 교수님과 갔던 커피숍이 있었다. 도착시간이 생각보다 빨라 30분 가량 마지막으로 필기 문안을 검토했다. 한장 한장 논문 여러 건을 검토해 작성한 것들이라 내용 면에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양이 30장이 넘다보니 한바퀴 슥 검토하는 것 정도가 그 시점에서는 한계. 커피를 마저 비우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이미 사람이 제법 자리를 채우고 있는 계단식 대강의실에서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뒤에 조교 두 사람과 시험관인, 어라, 교수님이다. 흐음. 더 잘할 수 밖에 없겠군, 하며 나는 필기 시험 준비를 하고 남은 짐을 가방에 넣었다.
필기는 예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예측범위에서 문제들이 나왔다. 교육사회학에서는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교육과정에서는 역량중심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를, 교육사에선 대학과 소학의 구분을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다섯개 영역을 준비해 왔지만 교육과정과 교육사회학에서는 특히 익히 잘 알고 있는 문제들이라 만족스러운 속도로 답지를 채워나갈 수 있었다. 시험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일부는 마지막까지 매우 많은 양을 작성하기도, 어떤 사람은 미리 제공된 두장의 답안지 외에 여분을 더 받아가기도 했다. 나는 나대로, 시험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가는 인파에 섞여 제출을 하고 나갔다. 교수님과는 가벼운 목례를 나누었다. 한시간 넘게 내내 글을 쓰니 손이 아파왔다.
"형 끝나셨어요?"
"어어. 응. 뭐 그냥 대충 쓰고 나왔어."
"밥 드실래요?"
시험장을 나와서 잠시 사범대 건물 앞을 배회하고 있는데 이규빈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고마운 제안이라, 도서관 방향의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서점으로 향했다. 캠퍼스엔 나처럼 시험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이내 언덕길을 가득히 메웠다. 당시 이규빈 선생님은 석사 학위 논문을 쓰던 중이었다. 어떤, 대학원생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신중하고 조용히 자기의 연구에 대해 고민 또 고민을 이어가는 그런 상태가 대화를 통해 전달되었다. 서점에서 책을 한권 고르고 다시 언덕을 거슬러 올라 사범대 건물로 향한다. 이제 면접장에 입실해야 할 시간.
"그래서 왜 교육사회학을 공부하겠다는 건데?"
그러나,
"그러니까 이게 설명이 잘 안된 것 같은데, 그래서 왜 교육사회학을 공부하겠다는 건지, 자세히 말해줘야 할 것 같은데."
면접은,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필기와는 다르게.
"어- 어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는 민주주의와 교육의 관계를 공부하고 싶고, 교육사회학이 그런 민주주의와 교육의 관계를 밝히는데 적합한 학문이라고 생각을..."
"그건 좀 구체적인 질문이 아닌데? 교육사회학이 어떤 학문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말해봐야 할 것 같은데?"
면접시험에 대하여, 나는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다. 교사로서 지난 10년간 열심히 살아왔고, 충분히 독서를 했고, 교사로서의 가치관이나 내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 역시 나름 확고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지망생"의 착각이었을 뿐이다. 면접스터디에 참여하지 않고 혼자 털레털레 시험장까지 온 나는, 어떤 질문이 교수님들에게서 쏟아질지,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나의 연구 관심이나 준비 태도 모두 수십년의 연구 수련을 거친 교수님들껜 그저 나이브하고 순수한, 아니 그보단, "까맣게 모르는" 어리석음 밖에는 되지 않았다.
내가 면접에 대비하며 준비한 것은 첫 인사를 한 뒤, 대학원 지망 이유를 묻는 것에 대한 답변 하나 뿐이었다. 그 뒤에 이어진 질문들에 대해선, 5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한심한 수준의 답변 밖에는 하지 못했다. 2018년 그때나 2022년 최근에나 내가 속한 교육학B조에서는 교육철학의 곽덕주 교수님, 교육사의 우용제 교수님, 교육과정의 소경희 교수님 세 분이 면접관이셨다. 그 중에 가장 경력이 많으신 우용제 교수님은 수험생들에게 웃음을 곁들여 날카로운 질문으로 헛점을 파고드셨다.
필기시험에서 만족스럽게 답변을 작성하고 나와서 여유로웠던 나의 마음은 면접에서 우용제 교수님의 송곳 같은 질문에 꿰뚫리고 나선 갈팡질팡,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우용제 교수님께선,
"그래서 어떤 책을 읽었지요?"
라며, 정말이지 내 자신만만함이 그저 어리석은 천출내기의 자만이었을 뿐임을 일깨워주셨다. 일개 교사가 교양서 수준의 책 몇권을 읽고 껄떡대고 있었던 것이 당시의 나의 수준에 불과했다. 내가 뭘 읽었지? 민주주의와 교육? 뭐, Education Fever? 나의 더듬대는 답변은 여전히 길을 찾지 못했다. 면접은 마치 죄인이 죄사함을 받듯, 고개를 푸욱 숙이고 거의 용서를 구하듯 끝났다.
이제 나는 파견이 아니라 대학원 합격을 걱정하게 생겼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홀가분함과 허탈함이 뒤섞여있었다. 그러나 그냥 쉴 수도 없어서 나는 그 길로 지역 교육활동을 위해 학생들을 만나러 가야 했다. 라이프, 스틸 고즈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