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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Sep 05. 2022

홍성 중학교 교권 침해 사건에 대하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60987

 나름 "취재"를 한 수준의 오마이뉴스 보도.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길 권함. 게다가 '기간제담임'이라는 점을 헤드라인으로 건 점도 칭찬할만함.




 지난 토요일에는 태풍 예보를 앞둔 벌초가 있었다. 앞서 두 기의 묘를 벌초한 뒤 한숨 돌릴 틈이 나자 큰 형님께서는 나에게 홍성 교권침해 사건에 대하여 의견을 물으셨다. 대화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고, 우리가 충분히 고민을 공유한 뒤에는 시의원 출마 경력이 있으신 넷째 큰아버님께서 이게 다 전교조 때문이라는 당신의 신념을 곁들인 평까지 더해주셨다.


 지난해부터 공부를 새로 시작하며 무언가 알게 된 것에 대하여 충분히 숙고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에 나는 이 사건에 대하여 견해를 정리하고도 굳이 글로 옮기진 않았다. 그러나 큰 형님과의 대화가 길어지면서 나는 요점과 논점을 정리하게 되었고, 아침에, 또 이런 댓글도 하나 보았다. "애들 두들겨 패던 교사들은 이미 꿀 다 빨고 퇴직했고 두들겨 맞던 애들이 교사가 되어서 교권침해 당한다."


 큰아버지의 견해나 뒤 댓글의 견해나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교육은 이처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하여, 짧게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 어쩌다 이런 문제아들이 발생한 것인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사건은 그리 심각한 사안이 전혀 아니다. 옷을 벗은 아이나 촬영한 아이, 교단에 누운 아이 셋 모두 큰 잘못을 한 것은 맞지만 실제 학교에선 학교폭력, 가출, 흡연과 음주 등 훨씬 교육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많다. 의무교육으로써 중학교에 나와 교육활동에 참여해야 할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범죄에 휘말리는 것을 보고도 '촉법소년법 폐지' 같은 선동적인 주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이 현재 한국의 세태인데, 그나마 학교에 나와 교실에 앉아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이 뉴스거리가 된다는 것이, 조금 우스운 일 아닐까?


 버스카드 인식 음성이 "학생입니다."로, 미성년자 대중교통 승차표가 "학생권"으로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중등 의무교육을 청소년의 기본값으로 두고 모든 청소년은 학생이라는 등식 하에, 학생이라는 준거를 벗어난 집단을 아예 집단에서 소거하려는 인식의 표출이다. 그러한 인식이 배격되면서 이제 "학생입니다." 대신 "청소년입니다."라는 음성을 버스에서 들을 수 있는 세상인데, 정작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은 교실 밖 청소년보다 교실 안 청소년들에, 다시 말하여 통제가 가능한 수준의 집단에 대해서만 분노의 칼을 돌리고 통제가 안되는 청소년 집단은 '촉법소년법 폐지'같은 강압적 수단으로만 대처하려 한다. 이는 전형적인 사회전반의 보수화의 특성이다.


 문제아는 늘 있어왔고, 교권침해 역시 늘 있어왔다. 홍성 사건의 아이들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다른 학생들과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하였고 교사의 초상권을 침해하였으며, 동의없이 영상을 게시하였다는 점에서는 법에 저촉되는 바는 있다. 특별한 것은, 이런 자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만 한정적으로 당사자들을 특정집단으로 묶어 교사를, 학교를, 청소년들을 비난하는 한국 사회의 현 풍토다.


2. 수업권 침해의 문제

 교실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학생들이 교사의 훈육을 거의 듣지 않고 방종하게 생활하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피해자인 해당 교사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통제하고 있었느냐에 따라서 해석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체벌 및 벌점제가 금지되거나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많은 교사들이 현장에서 학생들을 통제하기에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혼란스러운 교실 상황에서 수업을 이끌어야 하는 책무성과 개별 학생에 대한 지도의 책무는 교사에게 다른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다. 훈육 대상이 되는 아이들과의 상담, 인성지도 인프라가 전혀 부재한 상황에서 학생들을 교실에는 함께 두어야 하고, 그럼 이 아이들을 개별 지도하는 데에는 한계가 찾아오고 진도는 나가야 하니, 교사는 어쩔 수 없이 이들이 어느정도 수업 시간 내에 문제행동을 하는 것을 방치하고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놀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동영상 촬영에서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교사는 일단 수업을 진행할 순 있으니 교탁에 누운 아이를 무시하고 수업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업을 방해하느냐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간을 보느냐의 아슬아슬한 선이 교실 내에선 항상 교사와 학생들간에 존재한다. 그리고 촬영을 한 학생의 경우, 이런 행동들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여 촬영하고, 그것이 재밌다고 생각해 틱톡에 게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촬영 및 게시 당사자의 사건에 대한 의도와 별개로 그 인식 자체는 이 사건을 특이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게시자의 의도와 무관하게도 현장의 영상과 사진은 무수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공동체 안에 파급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한가지 질문을 품어보자. 과연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이들에게 가르쳐왔는가?


3. 대책의 부재?

 수업 중인 교실에서 쫒겨나 복도로 내보내지는 방법이 과거 우리 교육 현장에서 굉장히 흔하게 행해져왔기에 별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듯하지만 아이들의 공동체 생활공간인 교실에서 격리되는 조치에 대해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학생의 학습권과 공동체 소속의 권리 때문인데, 학생들이 공동체적 영향에 무지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면, 그에 대한 교육적 조치로서 학생을 교실 바깥으로 내모는 일에 대한 교육적 효력이나 영향력에 대해서도 당연히 고려는 해야 한다. 아이를 교실에서 내모는 것은, 우선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현재 교육정책은 이루어지고 있다.


 당장 미국의 사례에서만도 그러하다. 정학은 상당히 강력한 수단이고, 정학 조치를 막기 위해 학교장과 상담을 하는 장면을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중등교육은 국민의 의무이다. 이런 의무를 박탈한다는 것은, 해당 국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이러한 철학적인 고려까지 하지 않더라도 정학은 출석정지로 학생부에 기재된다. 학교 내의 협의에 따라 졸업 시에 출석 정지에 대한 특기사항까지는 남기지 않을 수 있지만, '무단결석'으로 분류되어 이후에 학생의 진로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체벌과 벌점제가 효력이 없다고 해도, 교권보호위원회나 학교폭력대책위원회(현재는 회복적생활지도 심의원회)가 열려, 해당 학생에 대한 종합평가를 하게 된다. 평소 행실이 나쁜 학생이라면, 이 위원회에서 학생에 대한 교육적 조치에서 종합적인 평가를 받고 봉사활동이나 출석정지 등의 징계를 받게 된다. 이 수준까지 오면 교무실에 와서 교사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학부모들도 숙이고 들어올 수 밖에 없다. 최종적인 학생에 대한 조치가 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 대한 제재수단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체벌이나 강압적 훈육과 같은 즉자적 수단이 아니라 학생의 행동경과를 충분히 살피고 그에 대해 종합평가가 이루어진  징계조치를   있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의 문제행동이 누적되는 기간 동안에는 학교 내부의 자치질서가 충분히 발휘될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의 학급회의 문화가 중등에까지 이어진다면, 학급 자체적으로 누구 누구의 행동이 문제가 되니, 그런 점은 시정해달라고 학급회의에서 안건으로 처리될 것이고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은 공동체적 문제해결 방식을 습득해나갈 텐데, 한번 생각을 해보자. 우리 학급회의가 9, 10살까지의 찬연한 민주주의를 발휘한 , 얼마나 조용히 사람들의 무관심 속으로 사라지는지. 이에 대해 교사들은 어떤 자성을 하고 있는지.


4. 실질적 대책 

  이 모든 문제의 직접적이고 명확한 원인은 학교장의 역할이 방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하듯 미국의 영화 속 상담 장면에서, 학생에 대한 징계를 정하고 학부모와 상담을 하는 것은 학교장의 책임이다. 우리 학교문화가 제대로 서려면 당장 딱 하나만 시행되어도 된다. 학교장이 학부모들의 악성민원에 대한 유일한 소통창구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체제는 미국에서, 미국의 교육체제는 영국에서 옮아왔다.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영국 학교의 경우, 학교장의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다. 현재까지도 영국 교육에 큰 영향을 남긴 럭비교의 교장 토마스 아놀드는 럭비교를 최고의 명문학교 중 하나로 이끄는 과정에서 학생의 교육과 훈육에 전권을 스스로 부여하였고 실천했다.

https://hmn.wiki/ko/Thomas_Arnold

 대한민국의 학교교육은 일제강점기와 권위주의 정부 시대의 유산이 상당히 잔재해 학교장이 교사들에 대한 감시자이고 통제자의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학교장이 학교교육에 전문성을 갖고 교육을 선도하기보단, 전체 교사들을 통제하여 순종적이고 무감각한 입시교육의 담지자로 학생들을 반복 재생산하도록 해 왔다. 학교장들이 바로서지 못한 교육 역사가 선행되니, 학부모들은 힘 없는 교사들의 머리 끄덩이를 잡고, 교사들은 힘 없는 아이들의 종아리를 두들기는 역사가 반복된 것이다.


 학교장을 영어로 Principal이라고 하는데, 이는 원리, 원칙, 근간에서 온 어원으로 그만큼 학교장은 학교교육 그 자체여야 하며,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학교장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학교에서 교사들의 교육여건을 위해 복무하고, 교사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구석에 가서 역할을 한다면 지금의 제도로 왜 교육이 바뀌지 못한다는 말일까. 지금 당장이라도, 학생들의 훈육과 인성지도를 교장이 책임지고 수행하고, 학부모들은 교무실이 아니라 교장실로 바로 가 교장과 대화를 하도록 하면, 그리고 남은 제도를 그에 맞추어 운영하면 학교는 크게 나아질 것이다.


5. 그리고 인성교육

 이야기를 종합하며, 대책보단 예방이 최선이라는 점에서 인성교육에 대한 강조점을 남긴다. 우리 교육이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으로 수십년간 운영된 병폐가 워낙 크기에 인성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허황되고 유명무실한 것으로 들리는 아이러니가 현장에 존재한다. 아이들의 행동이 공동체 가치를 훼손하게 두고, 교사들의 손발을 묶고 체벌이나 일삼는 정신이상자로 보이도록 만든 것은, 무능력한 교사나 학교가 아니라 우리 사회문화 그 자체다. 인성교육이 입시교육과 병행하여 진급 및 진로결정에까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도록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사실 학생부종합전형도 이러한 가치를 일정 부분 담고 있다. 그 학생부종합전형 역시, 우리 교육의 본질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비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몇가지 구체적인 대책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강고한 학생자치의 협의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아이들이 모든 것을 상의하고 결정하도록 하고, 그 결정을 학교조직이 준수토록 애써야 한다. 이런 민주적 효능감이 아이들에게 민주적 상호작용에 대한 인식을 키운다. 문제 아동에 대한 훈육의 책임을 학교장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훈육에 대한 교사 노동의 보상체계를 마련한다. 훈육전문교사 보직을 두고, 이에 대해 별도의 전문성을 인정하여 보직 수당을 배정한다. 학교장의 문제학생 지도 성과에 대하여 별도의 보상체계를 마련한다면 일원화된 훈육체제가 학교에 조성될 수 있다. 교사를 겁박하고 폭행하는 학부모들에 대한 무관용원칙이 있어야 한다. 이해할 수 없게도 3년 지나면 남남인 교사와 학부모 관계인데, 지나치게 교사들이 '을'의 입장이다. 이것은 교육청과 교장의 책임이고 과실이다. 교육청부터가 학부모 민원 따위를 겁내 교사에 대한 겁박을 못본체하지 말고,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인성적 역량에 대한 평가 보상체계 역시 있어야 한다. 얌전하면 피해만 보는 게 우리 학교 문화일진데, 얌전한 아이들에게도 보상과 긍정적 피드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유명무실한 학기말 상장 따위를 주는 것이 아니라, 개근상, 봉사상, 민주시민상 등등, 우수한 인성역량을 갖춘 학생들(동시에 지적 역량도 갖춘다면 좋을 것이고, 대부분 실제로 그렇다.)에 대한 평가 및 성과보상체계가 있어서 '좋은 인성'의 효과를 아이들이 인식한다면, 아이들은 또래로부터 배우고 그것을 실천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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