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가르침의 요소들 The Elements of Teaching
2차 지필평가(기말고사)가 종료되고 한창 바쁜 시기에 이 책을 집었다. 추천사는 조금 상투적이라고 생각했고 서문은 동어반복적이라고 느꼈다. 사실 10년 이상 경력의 노련한, 게다가 혁신교육 운동에 복무해 온 교사에게 배움이란 무엇이고 가르침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그간 현장에서 무수히 많이 접해 온 메세지들의 연장에 불과하다. 정책보고서와 연구보고서, 각종 연수 자료들은 우리에게 '현장(현상) 중심' '학생 중심' '배움 중심' '과정 중심' 등의 교육 담론들을 몹시나 익숙한 것으로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익숙하다는 것이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고 적용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인가 질문한다면, 저언혀 그렇지는 않다. 이것이 한국의 교직이 품고 있는 여러 문제들 중 하나다. 한때 고등교육(대학 이상)의 진학율이 90%를 돌파했던 한국사회는 70년 이상, 극도의 교육열에 전국민이 시달려왔다. 치맛바람과 우골탑, 개천용과 능력주의 등 다양한 키워드들이 상징하는 교육에 대한 각자의 절박함에 가까운 신념들이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견인하기도 했고, 그 반면 교육주체들의 삶은 도탄에 빠트려오기도 했다. 교육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그 무엇보다 익숙한 문제이지만, 단지 누적된 과제, 그래서 익숙하고 도리어 관심의 영역 밖에 머물러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한 현실은 교사라고 다르지 않다. 바로 그 교육을 전문적 생업으로 삼고 있지만, 그저 너무나 익숙하고 심지어 지겨운 문제로, 교육을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현장의 교사에게 교육이란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교사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첫째는 시험, 둘째는 대입, 셋째는 생기부, 넷째는 학생관리, 다섯째는 학부모민원이다. 그 어느것 하나 흥미진진한 주제, 본질적인 질문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상 본질적인 교육활동들도 아니다. 교육의 본질은 관심의 영역 바깥에 남기고 교사들은 주로 '테크닉'이나 '문제problem'를 두고 평생을 씨름하며, 자연스럽게 학생-교사의 상호작용인 가르침과 배움에 대해서는 관심도 기력도 소진된 채 시간을 보낸다. 그럼으로써 교육의 본질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기껏해야 교육의 원리principle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기연찬을 하거나, 그것에 대하여 탐구한 내용을 실천에 옮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훌륭한 교사는 이렇게 가르친다>의 원제인 The Elements of Teaching, 가르침의 요소들이 학술적, 실천적 시사점을 갖는다. 작동원리로서의 principle은 교직 테크닉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전문적 교사의 제일의 관심사다. 즉,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대한 질문들이 지금까지 주되게 다루어져왔고, 현장에서 적용되어왔던 것이다. 학생 중심, 과정 중심, 현장과 현장 중심, 이런 것들이 모두 원리 중심의 교육론이 펼쳐진 결과다. 그러나 원리가 아닌 요소에 집중한다면, 교육은 새로이 바라보아진다. Elements를 우리말로 옮김에 있어서 보다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요소'라는 개념을 채택하고 있지만, 기실 한국인의 의식 맥락에서 원의를 정확히 받아들이려면 '원소'라는 개념을 담아서 해석함이 옳다. 어떤 사물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원소들, 그것을 저자인 배너와 캐넌은 열가지로 정리했다. 배움, 권위, 윤리, 질서, 상상력, 연민, 인내, 끈기, 인격, 즐거움이 그것들이다.
서문을 지나 본문의 첫장인 '배움'을 열고 깜짝 놀랐다. 놀라울 정도로 심도있는 내용을 평이한 용어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뜻하지만, 어쩌면 전부를 의미할 수도 있다. 첫째, 지식을 얻는 행위. '무언가를 배운다'는 뜻이다. 둘째, 이 행위를 통해서 얻는 지식. '알게 된 것'을 의미한다. 셋째, 지식을 얻는 과정, '어떻게 알게 되는지를 배운다'는 뜻이다. 훌륭한 가르침을 위해 이 세 요소는 없어서는 안된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각자에게 배움에 대한 이런 다각적인 논의는 매우 낯설다. 대다수의 교육주체들은 배움이 무엇인지, 반대편에서 가르침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 없이 그저 자신의 경험으로 형성된 인식을 토대로만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저자 두 사람은 이토록 심도있고 필수적인 질문들을 별다른 논증도 없이 선험적인 명제처럼 독자에게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설득해나간다.
논증이 비어있는 명제들과 그것이 구성하는 교육론이란 편리한 점도 있다. 교육 전문가에겐 대다수 쉽게 합의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 글을 읽기에 효율적이고, 교육 수요자들에겐 압축적으로 중요한 내용들만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증의 공백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그러나 저자들이 10가지 교육의 원소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있다. 이 책이 갖는 두번째 중요한 특징은, 논증이 비어있는 대신, 10가지 교육의 원소들을 통해 하나의 총체적인 논의를 막힘없이 해낸다는 점이다.
개개의 논증이 비어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교사론으로 이룩될 때, 그것은 공백없는 훌륭한 논의가 된다. 이를 테면 10년 이상 진지하게 교육의 실천적 방안을 모색해 온 교사로서 나는 '배움'이나 '상상력' 등 내게 익숙한 논의에 대하여서는 어렵지 않게 대부분의 명제에 동의했다. 그러나 '윤리'나 '질서' 논의에선 내가 대단히 성찰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해당 장의 명제들이 낯설고, 내게 비판적인 내용들로 인식되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교육경험을 반추하며, 이 논의의 정합성과 나의 실천상황을 판단해보았고, 그 결과 내 교사로서의 문제점을 진단할 수 있었다. 이처럼 책은 10가지 교육의 원소, 교사의 자질을 스스로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논의의 공백은 교사 자신의, 교육주체 개개의 교육경험을 통해 메워진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누구나가 이와 같이 책을 독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 누구보다 교육에 대해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이 책은 학교 혁신의 유용한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교사들을 모아놓고 한 시간은 '배움'을 중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도록, 다음 한 시간은'윤라', 그 다음 한 시간은'권위'에 대해서. 이렇게 10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틀 정도의 커리큘럼이면 단위 학교 하나의 교사 모두에게 교육적 성찰을 기하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실제로 나는 학교 예산을 들여 이 책을 우리 학교 전교사에게 배부했다). 책의 구성이 그래서 흥미로운제, 전반부는 배움과 권위, 윤리와 질서 등 가치 중심의 주제라면 후반부는 연민과 인내, 끈기와 인격 등, 보다 실천 중심의 주제를 다룬다. 저자 두사람이 열가지 원소를 추리고 명명하는데 가장 큰 공을 들였을 테다. 그래서 탑다운 병식의 독서와 논의가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다. 현장에 즉시 적용해서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될 정도로.
경기도 혁신교육을 좌초시키기 위한 임태희 교육감의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2년 여름에, 나는 이 책을 읽고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열정적으로 책의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정책이 멈추어도 교사는, 교육은 멈추어선 안된다. 다만 우리 교사들은 교육의 본질에 대하여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혁신이라 명명되든, 다른 무엇이라 명명되든 말이다.
다만, 교육의 비본질성을 강화하려는 정책적 시도는 '반혁신'적인 교육으로 지금 그 모습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는 시점임을, 우리는 상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