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학교 운영을 위한 학부모 참여의 제도화 확대
“엄마로서는 당장 그 선생한테 따지고 싶은데, 동지애적 의리로 참았죠”
지난해 겨울, 한해가 저물어갈 무렵의 연수에서 만난 한 중학교의 부장 선생님은 코로나 수업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아이가 다른 학교에 재학 중인 중학교 저학년인데 온라인 수업을 어찌 하나 잠깐 봤더니, 해당 교사의 수업이 정말 엉망이더라는 것이다. 아이 걱정에 눈 앞은 캄캄해졌지만 자신도 한 사람의 교사려니와 해당 선생님은 오죽할까 하며 참았다는 결론과 함께, 이야기는 쉽사리 끝났다.
만약에 그 선생님이 수업에 간섭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본인도 교사이며 온라인 수업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확실하고 철저한 참견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해당 교사도 상대방이 역시 교사이기 때문에 ‘동지애적 의리로’ 그런 상황을 감내했을 수도 있다. 지켜보는 엄마의 상황, 누가 지켜볼지 모르는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 코로나 2년간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 무척 흔한 일이 됐다. 실제로 많은 학부모들이 허술한 온라인 수업을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해 개선을 이끌어내기도 했으며, 교사들은 일상적인 아이들 담배에 대한 민원, 교복에 대한 민원, 수행평가에 대한 민원 등등, 수없이 많은 학부모들의 간섭과 참견에 더해, 수업에 대한 간섭까지 머리에 새기게 됐다.
‘참견’의 역사
수업에 대한 참여와 간섭이 과연 부당한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수업보다도 중요한 교육활동으로 여겨지는 ‘평가’에 대한 학부모들의 간섭은 사실, 훨씬 역사가 길다. “엿이나 먹어라”로 유명한 무즙 파동이 1964년이다. 4년 뒤인 1968년엔 미술 시험에서 출제된, 목판화에 사용되는 조각칼에 대한 출제가 복수정답으로 인정이 된 ‘창칼파동’이 있어서 또 한번 나라가 뒤집어지는 소동이 발생했다. 오늘날까지도 교사들의 교육활동에 있어서 이러한 학부모들의 평가에 대한 반발은 굉장히 중요한 고민거리다. 하고 싶은 수업이 있거나 새로운 시험문제 출제 아이디어가 있어도 학부모들의 참견으로 인해 미리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이런 참견과 간섭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창의적인 평가, 혁신적인 수업에 가려 평가의 정밀함이 소홀해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아이들 모두 신경을 쓰지 못하고 교사의 특성에 따라 더 관심 가는 아이에게 집중되는 일도 생겨날 수 있다. 코로나 감염증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학부모들의 눈길이 없다면, 어떤 교사라도 ‘클릭교사(동영상 수업 만으로 정규수업을 대체하는 교사)’가 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학부모의 학교 교육과정 참여, 정규화하고 공식화해야
대표적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의 경우 신입생 선발에 학부모 자기소개서 및 면접을 반영하고,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한다. 운영위원회 및 이사회에도 학부모들의 참여가 필수인데, 학부모가 학교 이사장으로 위촉되는 일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사례를 벤치마킹해 경기도의 많은 혁신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의 학교 교육과정 참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학부모 수업 공개를 확대하고 교내에서 학부모 주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과거에 비해 양과 질 측면에서 더욱 발전하고 있다. 수업에 대한 참견이나 평가에 대한 간섭은 오히려 소소한 일이라고 보아야 할 만큼, 학교 운영 자체가 학부모들의 민주성과 주체성을 요청하고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부모들을, 교육의 세 주체(학생·학부모·교사) 중 하나라고 부르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한다. 학부모위원회를 구성하고 학교 내부의 몇 개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교육과정 운영에 학부모들이 참여하고 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가 없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교장 및 교감은 학교 관리자로서 학교 교육과정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데, 교장공모제와 같은 방식이 아니면 이들의 발령에 학부모들의 참여는 아예 막혀있다. 그러한 교장공모제조차 교원단체나 교육청 내부의 여론에 따라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감 선출이 직선제로 바뀌면서 그나마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정책 결정에 학부모들의 주권이 조금은 반영될 수 있게 됐지만, 선거 공약 수준의 정책이 아닌 하위영역에서의 교육정책에 대한 의사결정 참여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여전히 학부모들은 교육정책 및 학교교육활동에 대해서 수동적이고 부차적인 지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주권이 유명무실한 말이 되지 않으려면, 단위 학교의 예산과 결산부터 학부모들에게 공개를 의무화하고, 교과 및 비교과에 대한 의사결정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현행 제도상 학교의 모든 결정은 학교장에게 최종 권한이 있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참여를 제도화해도 아무런 학교 운영의 어려움은 없다.
학부모를 소외시키는 교육은 학생도 소외시킨다
팬데믹이 끝나간다. 온라인 수업의 기억도 지금 정리해두지 않으면 앞으로 다시 이야기해보긴 어려울 것이다.
모두에게 함께 들이닥친 온라인 수업이라는 환경 속에서 학부모의 학교 참여는 교육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었고, 어떤 기여를 해 왔을까? 고약한 비유겠지만 아무리 나쁜 학부모여도 최소한 어항 속의 메기 정도 역할은 할 수 있다. 학교가, 교사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자극을 주는 역할 말이다. 성인인 학부모들조차 교육활동 관련된 의사결정에서 소외시키는 것이 우리 학교 민주주의의 현주소인데, 과연 아이들은 소외시키지 않고 있을까? 학부모들이 나서서 주인될 권리를 요구하는 세상이 곧 아이들이 주인이 되게 만들 것이고 그에 따라 교사들도 주인이 되도록 할 것이다.
학부모회와 학생자치회를 봉사활동으로 부려먹기나 하는, 그런 학교들이 아니고 말이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20630580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