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없는 교육은 없다.
여름 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8월, 교감선생님께서는 창의적체험활동과 혁신교육 담당인 날 불러 “학력미달학생 지원사업을 맡아달라”고 하셨다. 당초 학생부에 맡겨져 있던 업무였는데, 담당부장의 업무추진 형태가 교감선생님 보시기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뜩이나 내 업무로 바쁜 와중이었지만 교감선생님의 지시를 어기기도 어렵고, 나는 그 업무를 받아 500만원의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먼저 단체활동을 편성하기 위해 모교에 연락해 풍물패 후배들에게 교육봉사를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대학생도 나름 스케쥴이 있으므로 풍물 수업이 비는 날엔 내가 별도의 자율활동 계획을 수립해 아이들과 학교 밖으로 놀러 다녔다.
2학기가 되어 시작한 일이므로 교과 수업 담당교사를 섭외해 방과후 수업 등을 편성하긴 어려웠다. 대신에 나는 두가지 목표를 세웠다. 한 가지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교육비 투자가 이뤄지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존중과 신뢰의 덕목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산으로 산책을 나가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1시간 가까이 버스를 함께 타고 가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등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 때까지 나는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교감선생님은 내가 한 학력미달학생에 대한 지원사업 운영이 마음에 드셨는지 다음 해에도 나에게 업무를 맡겼다. 2년 차가 되었으니 보다 내실있게 운영이 가능했다. 1학년 아이들 중 10여명을 선발해 장기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가면서 공동체 활동을 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겨울방학 기간에 아이들만을 위한 보충수업을 개설했다. 국어, 영어, 수학, 학습법 네가지 수업을 통해 겨울방학 중인데도 매일 아이들을 만났고, 말썽쟁이였던 아이들은 스스로를 ‘영재발굴단’이라 부르며 기쁘게 참여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성장을 발견하며 우리는 이대로는 활동을 마칠 수 없다며 조촐한, 그러나 정성을 들인 종업식을 개최해, 아이들 모두에게 상장을 주며 겨울방학을 마쳤다.
고등학교에서 발생하는 학력미달학생의 경우 이미 학력경쟁에서 밀리고 치여 동기를 상실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자존감과 효능감을 찾겠노라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하고, 수업 내내 코를 박고 자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생기를 띤다. 우리 ‘영재발굴단’ 학생 중 몇몇은, 나와는 꽤나 험악한 갈등을 한 번씩 겪기도 했던 아이들이다. 그런데 1년간 관계맺음이 이어지고 겨울방학 활동, 종업식까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커지자 대단히 긍정적인 생활 태도를 보이며 무사히 졸업을 했고 마침 글을 쓰는 이 시간으로부터 한 달 전 쯤, 학교에 놀러왔기에 반갑게 포옹을 하기도 했다. 나 자신이 이 사업에서 아이들의 성장에 주목하려는 노력과 그에 대한 자기성찰이 없었다면, 아이들 역시도 학교 선생님 수십명 중 한 둘쯤은 자기들을 위해 매주 서너 시간을 매달리고 방학까지 반납하며 시간을 보냈던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반가운 재회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의 목적이 사람을 길러내는 것임을 우리는 쉽사리 잊는다. 그것은 학력경쟁의 강고한 역사가 학교를 포획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있을법한 일이다. 그러나 매년 3월을 맞이하며 학교에 각종 교과 성취수준, 평가계획서, 교육과정 운영계획서 등을 작성해 제출하다보면 “여기에 대체 아이들은 어디에 있지?”하는 질문이 불현듯 찾아온다. 이 세가지 문서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수업을 하기 위해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기본 업무다. 성취 수준은 아이들이 어떤 수준에서 교과지식을 익히고 활용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평가계획서는 어떻게 아이들을 줄 세우고 편 가를지를 담는다. 이제는 학생들의 평가에 대한 민감성이 너무 지나쳐, 수업 때 설명한 것 하나 가지고 쉬는 시간에도 교무실에 달려오곤 한다. 이것이 시험에 나오는가 아닌가를 아이들에게 정하기 위해 교사는 평가계획서를 작성한다.. 교육과정 운영계획서는 그런 성취기준에 따라, 평가계획에 따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도를 나갈 것인가가 담긴다. 여기에 어디 품성, 덕성, 교양, 감성이 담길까. 교과수업이 아니라면, 창의적체험활동에? 아니면 아침 등교지도, 혹은 조회시간에?
민주시민교과와 교과서가 셋이나 개발돼 학교 현장에 도입되고, 교사의 지도 부담을 증가시켜온 학급당 인원수도 줄고 줄어 25명에 불과하다. 물론 15명에서 20명이 되었다면 금상첨화, 정말 좋은 수업을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아이들과 한 사람 한 사람, 드디어 얼굴은 맞대고 참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줄세우기를 위한 평가, 그를 위한 수업이 아닌, 진짜 아이들을 중심에 둔 수업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 교육은 평가에 함몰돼 있다. 그중에서도 성적에 치우쳐 아이들의 인성 및 시민성에 대해서는 도외시하고 있고, 학력이 낮은 아이들의 성취에 대해선 과소평가하는 문화가 수십년간 점차적으로 심화돼 왔다. 차라리, 학기 초에 제출해야 하는 세가지 문서들을 인성교육에 적용시키는 것은 어떨까. 시험을 보듯 아이들의 인성 및 사회성 부문을 평가해 아이들이 초·중·고 각 학교를 졸업할 때 해당 수준에 걸맞는 인성 및 시민교육 인증을 받는 것이다. 출석에 일정 수준 미만으로 지각 및 결석을 하도록 기준을 정할 수도 있고, 민주시민의식을 알아보기 위해 논술을 작성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어떤 시민의식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런 제도를 프랑스와 스웨덴에서 앞서 유지하고 있다.
인성교육의 테두리를 넓혀, 학교마다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성찰도 해나가야 한다.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의 인성과 시민성을 위해서는 학부모와의 신뢰관계, 교사-학생-학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학교가 학생들의 비행을 처벌하는 기관, 학부모에게선 민원을 받아 안아 그것을 어찌어찌 해결하는 기관으로 자리하기보다는 함께 마을을 일구어가고 자녀교육에 대해 탐구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학교의 기능에 대한 재성찰, 그리고 인성 및 시민성교육에 대한 분명한 목표와 가치를 제시하고 학부모와 마을과 함께 그것을 실천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학교조직의 규율에 얽매인, 성적 향상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교육을 세우고 성적과 더불어 품성과 사회성을 기르는 존재로 변해갈 것이다.
능력주의의 우산 아래 모두가 모두를 평가하고 줄을 세우는 세태에, 인성과 시민성 교육을 언제까지 성적 향상을 위한 도구로 남겨두어선 안된다. 교과교육만큼만 인성교육계획, 인성 및 품행 성취기준, 인성교육과정을 학교가 수립하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 마을교육공동체의 보편화는 우리가 기다려온 ‘오래된 미래’다. 모든 가르침은 하나 하나의 메시지로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모든 교육정책도 그러하다. 인성교육의 공백, 그 암흑의 공간에서 쏘아지는 교육 부재의 메시지에 아이들은 충분히 그에 맞춘 생활양식을 학습하고 사회로 나온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점진적으로 학생들의 평가 지표에서 품행과 인성 요소는 줄어들고, 성적이 차지하는 비율만 증가하는 것을 본다면 우리 교육의 목적이란, 차라리 한 인간을 체계적으로 비인간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품게 된다. 그러나 문제가 보인다면 바꾸면 그만이다. 민주시민교육과 인성교육의 교육목표를 내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금 바로 시작하자.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20721580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