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무엇에 대해 쓰는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by 공존

교사의 글쓰기감 세번째는 말할 것도 없이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내가 살아온 맥락에서, 나의 교직 경험에서, 그리고 나의 삶과 경험에서 벗어나, 천 명이고 만 명이고 다름 없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리로서의 명제로 교육이 무엇인지를 탐구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교사의 가장 핵심적인 글쓰기가 될 것이다.


교사의 교직 노동 바깥에서 무언가 성과를 쌓아가는 교육 전문가들은 어떤 측면에서든 이 질문에 대하여 나름의 답을 찾아낸 이들이다. 학원 강사라 한다면 그들은 강의와 성적의 관계에 대하여 가장 깊이 성찰하고 탐구하는 이들이다. 교육법 책을 낸 사람들은 어떻게 교육이라는 난제를 말랑말랑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고민을 한다. 강연자들은 시대변화에 알맞게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고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식을, 교육을 통해 수행한다. 방법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그 모든 활동은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나름 진지하게 성찰한 결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이토록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교사들은 정작 자신의 가장 핵심적인 활동이 교육이긴 하나, 그것의 원리에 대하여 성찰하며 실천을 하기보단 정해진 업무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행하는 학사일정을 따르는 가운데 질문하는 법을 잊는다.


평생을 수업하고, 생기부 쓰고, 의미 없는 시험문제를 내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그런 평범한 교사의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면 우선 이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단지 글로 옮기기만 해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단계가 있는데, 앞에서 설명한 두가지를 먼저 수행하거나, 함께, 아니 번갈아 수행해보는 것이 좋다. 첫번째인 "나"에 대한 질문은 교육에 대하여 글을 써나가는 나에 대한 탐구 과정이다. 캘리그라피를 배워보면, 글씨를 쓰기전에 우선 다양한 붓과 펜의 특성을 이해하는 단계를 거친다. 그것과 비슷하다. 글을 써나가는 나에 대하여 먼저 명확하게 이해해야 대상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두번째는 "현상"에 대하여 쓰는 것이다. 하루 하루의 교직 경험, 아이들의 행동, 나의 반성을 글로 써나감으로써 우리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집을 짓는 벽돌과 나무기둥들을 모아나갈 수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이 나의 수업에 각기 다르게 반응한다. 왜 그런 것일까. 세상에는 다양한 교사들이 있다. 그런데 이 교사들이 같은 아이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르친다. 그것은 왜 그런 것일까? 이처럼 내 눈 앞에 보이는 현상과 질문들을 하나하나 먼저 점검해보고, 답을 구해본다면 점차적으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나름의 관점이 생긴다


그러나 세번째 단계에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답을 하는 것은, 앞서의 글쓰기 과정의 도움을 받되, 그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다시 시작되며, "나"로부터 시작된 교육에 대한 답변들과, 반대쪽의, "세상"에서부터 이끌어내지는 교육에 대한 답변들에 대한 질문이 서로 만나며 이루어지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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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수님께서는 학부 시절에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불을 찾아서(Quest for fire, 1981)>이라는 영화를 소개해주셨다. 영화는 불을 쓸 줄은 아나, 피울 줄은 모르는 네안테르탈인 무리가 불을 피우는 방법을 아는 호모사피엔스 무리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담아내는데, 이 주인공 네안데르탈인 무리가 불을 찾아서 무리로 가져오기까지 그야말로 오만 고생을 다 한다. 부족을 위하여 불씨를 가지고 돌아갈 사명을 위해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피눈물나는 일을 다 겪는데, 호모 사피엔스 부족이 주인공에게 불을 피우는 방법을 비로소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 순간 네안데르탈인 주인공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줄을 모른다. 바로 이 "학습"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기적같은 감동에 교육의 정수가 담겨있을 것이라며 교수님은 눈을 빛내며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배움의 순간이야말로 고금을 막론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교육의 진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영화를 구해서 볼 수 있길 바라며, 영상언어와는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처럼 자기 나름대로 찾아내 타인에게 보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보람찬 일일까.


교육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이든 좋다. 보통은, 우선 내가 가르치는 교과에 대한 탐구가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가장 쉽다. 그리고 수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이 이루어지면 교육공학과 교수법이라는 교육학의 하위분야, 아이가 왜 말을 안듣지? 라고 하면 교육심리학이라는 분야로 파고들게 된다. 교사의 교직 노동은 학습이라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심리적 작용, 발달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신체적 작용, 교육과 문화 재생산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각도에서의 답변들이 가치로우며, 다만 이들에게 판정되는 별개의 자본주의 경제 효과가 따로 있을 따름이다. 무엇이든 나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쌓아올려진 선인들의 지혜가 있어 빌려쓸 것도 너무나 많다.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자유로이 탐구하되 나와 세상을 번갈아 살피는 시선을 잊지 말아야한다. 무엇이든 어느것이든 그것이 객관적인 명제로써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반드시 나 자신의 주관의 함정에서 벗어나야만한다. 백명이고 만명이고 반박할 수 없는 관점을 취하며, 그로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어려워보이겠지만, 혼자서 쓰는 일기장이 아니라 공개된 인터넷 공간만 되더라도 무척이나 수월해진다. 지속적으로 타인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글을 쓰는것만으로도 개인의 사견을 피해나가기가 매우 쉬워진다. 나중에 이런 경험이 싸이면 자유롭게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할 것이 없고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하여 꺼리낄 것이 없게 된다. 한번 아래 글을 살펴보자.




2020년 2월 11일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은 “기간제교사, 정규교사에 비해 불리한 업무 배정 금지”라는 보도자료에서 기간제(계약제) 교사의 보직교사 임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배경으로 서울시교육청은 2019학년도에 관내 학교에서 기간제교사 52명이 보직교사를 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업무를 담당하는 생활지도부장이 그 중 절반에 달하는 25명이라는 점을 제시했다. “기간제교사에게 책임이 무거운 감독업무를 하는 보직교사의 임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정규교사에 비해 불리하게 업무를 배정하지 않도록 권장”하는 내용 또한 「계약제교원 운영지침」 개정 사항에 반영되었다.


박혜성 전국기간제교사노조 위원장은 바로 이튿날 기고(에듀인 뉴스. 2020.2.12.)를 통하여 교육공무원법 32조 2항에 명시된 “기간제교원은 책임이 무거운 감독 업무의 직위에 임용될 수 없다”는 조항이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관행이 목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간제 교사가 부장교사를 맡아 직무를 수행한 사례, 스트레스가 심한 학생부에서만 한 기간제 교사가 10년 가까이 업무를 맡은 사례가 노조에 제보되어왔다. 더불어 그는 교사 수 부족으로 일부 교사에게 과중한 업무가 부과되는 것이 교사의 희망에 따른 업무 배정이 불가능하게 된 한 배경이라고 지적하였다. 지침 개정과 같은 날 중앙일보(2020.2.11.)는 이 현상을 “떠넘기기”라고 명명하였다.


업무과중을 호소하며 보직을 기피, 떠넘기기까지 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보직교사는 다른 교사와 어떻게 다른지, 업무량과 보상체계는 적절한지를 탐색해야 할 것이다. 교사의 업무는 교수 활동과 교육과정 운영, 학생 생활지도를 포함하는 ‘필수 업무’, 이를 지원하기 위한 학력격차 해소, 저학력 학습자 지도, 학교생활기록부 관리 등의 ‘보조 업무’, 이들을 제외한 ‘잡무’로 구분된다. 교사들은 보조업무와 잡무를 필수 업무 수행에 차질을 빚게 하고 교사들의 업무 과중과 불만족을 초래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들 업무 간의 경계의 모호함, 학습자와 교사가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교실이라는 공간적 속성으로 인해 교사의 업무를 어떻게 구분하고 우선순위를 부여하며, 또 경감의 대상으로 간주할지에는 어려움이 따를뿐더러, 급격한 사회변화로 인하여 전 세계 공통적으로 교사에게 부과되는 역할 기대 역시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문제를 심화시킨다(정영수․김숙이․김이경․김민희, 2012; Hargreaves & Fullan, 2012). 호주와 뉴질랜드의 교사들은 상담가, 사회복지사, 간호사, 보모, 아동상담가, 교관, ‘확성기’와 같은 역할까지 요구받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한편, 미국의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너무 손이 많이 간다.”고 털어놓았다(Scott, Stone & Dinham, 2001:8).


출처 : 글쓴이의 석사 학위 논문



위의 글에서는 교육이라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인식을 드러내기 위하여 차근 차근 논의를 전개했다. 먼저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주제를 거론함으로써 읽는 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다음에는 이를 반박하는 입장을 인용함으로써 사안의 복잡성을 드러내고, 중앙일보의 "떠넘기기"라는 명명을 인용하여 글쓴이 본인의 시각을 드러낸다. 세번째 문단에서 그렇다면 이 사건이 무엇인지,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나간다. 교사, 특히 보직교사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가. 그리고 나는 이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전개해나갔다. 그리고 이것이 보편적인 문제임을 보이기 위해 외국의 사례를 보였다.


중요한 점은 교사의 글쓰기 2단계와 같이 현상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시도하는 것으로 글이 구성되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의 글은 학위 논문이었기 때문에 지 질문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다루려 하였다.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처럼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개인의 인식에 머무르는 글은 객관성에 한계가 있을 뿐더러 가치롭지도 못하다. 대한민국의 모두가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나름의 생각을 달고 산다. 그것들이 거의 다 자기 본인의 인식에 머무를 뿐, 객관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인내심 있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가치치기 당하는 모난 가지처럼 타인의 시선으로부토 외면당하는 것이다. 답은 많다. 사람의 수만큼 많다. 그러나 단 한가지의 불변의 답을 구하려 한다면,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며 이 과정은 힘들지만 의미가 크다.


꼭 그것이 무슨 학위논문처럼 거창할 이유도 없다. 나에 대하여 그리고 현상에 대하여 보편성과 객관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노력만을 지속하면 된다. 이런 힘든 일을 해서 무엇하냐고 묻는다면, 30대, 40대에는 모르고 살아도 살아는 지겠지. 그러나 50대, 60대가 되면 음식 하나도 모르고 먹으면 건강을 해치기 쉽다. 50대 60대가 되어서도 교육이란 무엇인지 모르고 살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이 건전한 교사상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살아온 날만큼의 이해가 쌓여야 의미있게 늙어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거창한 목적을 지닐 필요 없이, 하루 하루의 교직 실천 속에서, 그저 "어떻게 하면 내 고민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지?"만 반복해서 되풀이하며 답을 찾아나가면 된다. 보편성을 마음 속에 품고 글을 써나가면 자연스럽게 글도 편하고 순해진다. 누구나 와서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글쓴이가 만들어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능숙해지면, "나"에 대한 글쓰기와 "현상"에 대한 글쓰기 역시 훨씬 깊이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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