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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01. 2023

이쁜짓, 착한짓.

제주도 8일차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우. 저 관종 봐 저거."

"아 진짜 힘들다."


 오늘이 딱 16개월을 꽉 채운 날이다. 그동안 동백이는 코로나 한번, 감기 두번, 가벼운 건선과 약간의 황달 외에는 병원을 드나든 적이 없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잘 뛴다. 누가 보아도 유난스러운 아이라고 할만큼 팔팔하다. 꼭 내 아이라서 칭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게 주변에 조금 민폐가 된다. 이를테면 카페에서, 


"어휴. 저분들 우리 땜에 옮기셨어."

"어디로?"

"본관. 저쪽에 계시네."


 호젓하게 한라산 꼭대기까지 조망할 수 있는 조용한 카페가 있는데, 우리 때문에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중년 한 쌍이 소란을 피해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셨다. 그 이전에 넌지시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고 타이르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우리가 영 대책이 없어보이셨겠지. 모든 게 재미나는 시기인 16개월이다. 아이는 작은 카페 공간을 쏘다니며 모든 것을 만지고, 그 중 절반은 입에 넣으려 했다. 그것을 따라다니는 아비의 입장에서 조정과 통제는 까다롭고 섬세한 일이다. 아이가, 하는 모든 것을 막았다간 비명과 발버둥이다. 적당히 만져보고, 촉감해보고, 온도와 무게를 느끼도록 하되 내가 지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시간을 카페에서 한시간만 보내도 녹초가 된다. 많이 지친다. 


 그러나 집에만 있을 순 없다. 제주도까지 왔으니, 하루 하루 바쁘게 다녀야 한다. 이 날을 위해, 5개월간이나 바깥양반은 집에서 아이와 단 둘이 독박육아를 해 온 것이다. 매일 출근해서 바깥바람을 쏘이고, 대학원 등으로 교류가 넓어진 나의 입장에선,


"이게 한달살이냐...한달짜리 풀파워 돈지랄 제주도 관광이지..."


 라는, 이런 말도 나올 법은 한 일정이지만, 그건 내 입장이다. 5개월은 바깥양반은, 참아온 것이다. 아 물론 그렇다고 그 사이 사이 주말에 나는 빡세게 운전을 해드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꼭 곤란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에 온지 일주일만에, 동백이는 깨달았다. "이쁜짓 포즈"를 말이다. 그것은 아이의 발달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오늘 전에까지는 동백이의 사진을 찍어줄 때 바깥양반은 V 를 외치며 손가락 두개를 펴주었다. 그러면 동백이는 엄지와 검지를 펴서 어색하게 들고 포즈를 잡았다. 손에 신경을 쓰느라 고개가 옆으로 쏠리고, 자세가 엉거주춤해진다. 그러나 이쁜짓을 가르치니 두 손이 두 볼에 찰싹 붙어 정면을 바라본다. 자연스러운 자세로 정면을 바라봐, 자세가 어색하지 않다. 훨씬 낫잖아. 


 그리고 착한짓에도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침 첫 일정으로 제주시 방향으로 차를 달려 젖소목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동물에게 먹이주기 체험을 시켰는데, 곧잘 한다. 처음 보는 어마어마하게 큰 소, 말에 놀라면서도, 그 16개월다운 호기심으로 우유통을 붙들고 젖소를 마주 바라보고, 당근이 꼽힌 막대기를 들고 말을 올려보기도 한다. 우리는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큰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데에 사고는 없을지 신경을 바짝 세우고 집중할 뿐. 


 하루에 두가지 발달을 눈으로 지켜보니 16개월이 새삼스럽다. 오늘 아빠와 엄마에게 이쁜짓, 착한짓을 새로 배워 보여주려고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 싶고. 그런 하루하루에 내 여러가지 고민이 섞여들어가긴 하지만 그렇다고 또 영 나쁜 일정은 아니다. 아이가 크고, 아내가 기뻐한다. 나는 졸업논문의 최종본을 심사위원들께 한분씩 보내, 마지막 절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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