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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19. 2023

제주도에서 순대국 만들어먹기

금하순대 짱이야!

 앞서의 이야기를 좀 하자면 나는 제주도 한달살이 숙소 바로 맞은편에 꽤나 괜찮은 순대 공장을 발견했다.


 금하순대.


 순대는 이렇게 네줄에 만천원, 족발은 앞다릿놈이 만칠천원이다. 나는 그것으로 우리 한달살이에 찾아온 손님들을 알뜰살뜰 대접했고, 그래서 금하순대를 세번이나 방문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도 식성도 매 한가지일 순 없는 것인지라 처음 찾아온 네명 손님은 순대를 꽤 맛있게 모두, 족발과 함께 먹어치웠고 두번째 온 손님들은 이미 배가 불러서 두 줄을 남기고 만다. 세번째 손님은 우리 부모님이셨는데, 우리 부모님과는 끼니를 많이 만들어먹어서, 순대가 들어갈 배가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한달살이가 끝나갈 무렵에는, 두줄씩 두번, 총 네줄, 만천원어치의 순대가 남아있었다. 이걸, 우리 아내는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기 때문에, 내가 먹어치워야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러나, 나 역시도 이놈을 순대로는, 이미 세번이나 먹은 판이다. 그래서 이 순대를 곧이 곧대로 먹고싶지 않았다.


 별 수 없지. 순대국을 끓인다.

 시장에서 만원짜리 뒷고기 한 팩을 사왔다. 1kg은 넘어보는데 그래도 흑돼지라고. 팩에 들어가있었으니 피가 덜 빠졌을 수 있어 찬물에 한 30분 담근다. 근막도 그대로 있고 지방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말그대로 잡육들이지만, 순대국엔 자고로 이런 고기가 들어가야지.


 뒷고기를 사는데도 그냥은 되지 않았다. 동네 하나로마트엔 뒷다리살 정도가 가장 저렴한 고기인데, 뒷다리살은 비계와 살코기가 딱 갈려있어서 순대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머릿고기마냥 살코기와 비계가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부속이 나오면 좋겠는데, 마침 동문시장 중심부의 정육점들이 뒷고기를 판다. 나는 이것을 미리 봐두었다가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해서 네번째 손님맞이를 하러 장을 볼 때 함께 샀다.

육수거리가 단촐하다. 집에서라면 통후추라도 넣겠지만 한달살이 숙소라 뭐 가진 게 있어야지. 마늘 한줌과 대파 한 대 뚝 분질러서 소금 한 스푼 넣고 끝이다. 이대로 세시간쯤 끓이기로 한다.


 근데 이렇게만 해도 맛있다. 사실 돼지고기가 신선하기만 하면 소금만 넣고 푹 삶아서 육수로 써도 된다. 여기에 다시다 한숟갈이면 끝. 뒷고기만 있어도 맛깔난 국물을 만들 수 있는데 경남의 돼지국밥이나 제주도의 일부 고기국수집, 그리고 옛날부터 이어져온 돼지머리국밥집을 제외하면 이런 음식이 우리나라엔 흔하지 않다. 일본만 해도 돈고츠가 흔한데. 거꾸로 사골국물은 너무 흔하고 많다. 고기육수가 느끼해서 그런 걸까? 일반이랑 비교하면 그냥 돼지고기 육수가 우리 입맛에 비주류인 것 같긴 하다.

 다음날 아침. 어려울 것 없다. 육수를 데피고 순대는 삶는다. 더운물에 바로 넣으니 순대가 오동통 살아난다. 원래, 고기나 채소가 넉넉히 들어가는 순대의 경우 이렇게 물에 삶으면 부풀어서 아주 땡땡해지는데 제주도 순대는 거의 찹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봐도 될 정도로 함량이 높다. 그래서 살짝 부푼 것 외엔, 순대가 커지지 않았고 육즙이 빠져나오거나 하지도 않다. 


 이 제주도 순대라는 게 묘하다. 찹쌀만 그득그득 들어가고 채소, 고기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데, 밥이랑 다를 바 없는 게 먹다보면 달달한 맛이 속에서 올라온다. 적당히 식으면 더 맛있다. 식은밥과 달리 이쪽은 순대에 감싸여있어 수분이 날아갈 일이 없어서 그런 걸까.


 순대를 썰면서 몇점 낼름낼름 먹는다. 그리고 고기도 마구잡이로 썬다. 단정하게 썰면 순대국스럽지 않다. 마구잡이로, 썰어야 순대국 먹는 기분이 난다. 그리고 부추로 마무리. 이 부추는 손님맞이용으로 순대를 낼 때 대쳐서 내던 건데, 이번에는 오로지 순대국만을 위해 사왔다. 이 부추로 남은 건 부침개나 할까. 그럴 시간이, 이제 남지 않았다. 

 손님맞이 마지막 날이다. 이제 남은 한달살이는 일주일도 남지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제 우리의 시간을 보내긴 한다. 마지막 아침으로 내놓기엔 조금 단촐한 메뉴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맛이 좋아서. 재미가 있어서 만족하며 먹었다. 여기에...봄 배추 좀 넉넉히 넣고 끓이면 천상 감초식당 비슷한 순대국도 나올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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