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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08. 2023

이게 다 아이를 위해서야

제주도 7일차

"이게 다 아이를 위해서야. 카페도 많이 줄였잖아."


 아내는 외출에 대하여 의견출동이 생기면 이런 말로 우리의 빡센 일정의 명분을 세운다. 아이를 위해서라. 그런 이유로 우리 아이는 좀 빡센 유아기를 지나고 있다. 하루 두번 정도, 점심 전 낮잠과 저녁 전 낮잠을 자주어야 하는데 낮잠을 잘 자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 본인이 누구보다도 힘이 들다. 되도록 집에서만 데리고 있으면서 딱딱 하루 두번 낮잠 습관을 들이고, 수면 유도에도 잘 따르도록 가르쳐놨다면 우리가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욱 편해지겠지. 그러나 낮잠 따위 전혀 고려하지 않고 10분, 20분씩 토막잠 재우다가 깨우는 일이 예사다. 깊은 잠에 빠져있을 떄 갑자기 깨우는 건 건강에 좋지 못한데, 그렇다고 아이가 딱딱 자주지도 않는다. 한시간 차를 몰고 간다면 45분 정도는 엄마를 괴롭히다가 15분 자더니만, 내가 카시트에서 빼서 안으면 졸음에 칭얼대는 것도 예사. 이리저리 서로를 퍽 애먹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다.


 그런, 아이의 수면교육에 지장이 생길만큼의, 빡센 하루가 또 시작이다. 어제에 이어 다시 산방산 권역으로 온 것은 역시나 아내 친구 부부의 여행 코스에 우리가 따라붙은 모양새인데, 점심부터는 그쪽은 다른 일정이 있어, 아점만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산방산, 하면 유채꽃. 그리고 제주도는 어딜 가나 바다.


 MZ가 따로 모이는 명소들이 제주도에는 있는 모양이다. 산방산에서 송악산으로 넘어가는 길목, 사계리에는 20대 남녀가 득시글하다. 우리가 제주도에 와서 7일째가 되어서야 이렇게 많은 20대를 본다. 그동안은 40대들끼리 모여다녔으니 당연한 소리일까. 모처럼 오랜만에 우리가족끼리의 휴식을 또 얻어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그러나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에서 아기는 혼자 계단을 내려간다고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잠시 뒤에 큰 울음소리로 우릴 부른다. 벌떡 달려가보니 미간 사이가 살짝 긇혔다. 다른데 심하게 다친 건 아니고 미간에 찰과상 정도라. 다행스럽다.

 그 일은 내가 어제 밤을 꼴딱 샌 덕분에 딱 30분만 좀 쉬겠다며 아이를 아내에게 일임한 사이에 생겼다. 아내는 아내대로 혼자서 아이를 보려니 죽을 맛이겠지. 아이가 그만큼 팔팔하다. 이게 다 아이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 아이가, 허리 빠지도록 돌보아도 도통 엄마 마음을 몰라주니 얼마나 서러울까. 물론 그럼 굳이 밖에 나와서 이렇게 위험한 환경에 처하지 말고 서로 편하게 해주면 되지 않느냐 해도, 이미 1년동안 휴직을 하며 집에 박혀 아이만 본 사람이다. 제주도까지 와서 숙소에만 박혀있으란 건, 너무 잔인한 이야기다.


 그런 이유로 오늘 하루도 빡세고 알차게 채워진다. 아내는 내 체력 상황 따위는 아랑곳 없다. 바다에서 잠시 쉰 다음에는 산방산으로 올라가 유채꽃 사진을 찍는다. 그 다음엔 새별오름까지 올라가서, 새별프렌즈라는 동물농장을 들른다. 이걸 하고 나면 곧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거라나.

 그런데 새별프렌즈에서 상상도 못할 공포와 우린 마주했다. 우선 알파카. 실제로 보니까 너무 무섭잖아. 마침 지난주 내린 폭설이 아직 채 마르지도 않아서 흙바닥에 길 웅덩이가 곳곳이라 걷기 쉽지 않은데, 첫 코스인 알파카부터 만만치 않은 포스로 우릴 긴장시킨다. 아이는 잠시 뒤에는 조랑말 우사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동물에게 먹이 주는 체험을 해보았고, 그것까진 좋았는데, 그 다음 작은 동물 체험장소에서 정말 깜짝 놀랐다. 토끼와 무슨 작은 앵무새가 있다는 건물에 들어가니, 300마리는 되는 새가 자유로이 날아다녀! 모이를 든 날 보고 달려들어! 작은 곡물 같은 새모이는 마구잡이로 뿌려서 쫗았는데 내 손에 든 토끼 모이인 당근을 보더니만 날 보고 또 달려들어! 아리를 한 팔에 끼고 나는 무척이나 겁을 먹어서, 아기와 토끼에게 당근을 좀 주려다가 새들이 날 노리는 것만 같아 아이를 데리고 혼비백산, 3분도 버티지 못하고 나왔다. 역시 공룡의 후예일까. 이 새끼들 한마리씩 내게 덤볐으면 상대해줬을 텐데, 300명이서 덤빈 것이 한이다.


 그런데 그게 또 끝이 아닌데, 이번엔 알파카 우리에 들어갔다가 알파카에게 쫗겼다. 무리 중에 젊은 녀석이었던지, 손에 당근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에게 성큼 성큼 다가온다. 멈추지 않고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것에, 우리는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다가 나중에는 몸을 뒤로 돌렸다. 저 눈앞의 문까지 후다닥 내달려 단번에 뛰쳐나간 뒤 문을 닫았다. 우릴 쫓던 알파카는 불과 5m 정도 뒤에서 우릴 따라오다가, 우리가 우리 밖으로 나가버리자 입맛을 다시며 돌아간다.


 뭐야 이거. 아이를 위해서인 거 맞아?

 그러나 아이는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성장을 표현한다. 잠시 뒤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자가, 아이는 엄마 아빠보다 한결 여유롭게 알파카를 마주한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로 고른 감귤농장에서, 지금까지 절대 안하던 행동을 했다. 아기는 지금까지 옷가지 말고는 몸에 걸치는 그 무엇도 거부해왔더랬다. 양말도 신겨주자마자 벗어버리고, 모자, 당연히 거부하고, 턱받이, 벗어던진다. 자기 몸에 뭐가 와서 걸리는 걸 워낙 싫어한다. 머리 묶는 것도 싫어한다. 이걸 잡아줄 때가 따로 있다는 것은 지금에야 이해는 하지만, 막상 아이를 키울 땐 편하게 해주고 싶고 싫은 건 거두는 게 부모의 마음이었나보다. 덕분에 지금까지, 모자든 뭐든 워낙 안쓰고 살아서 제 엄마를 속썩였는데, 


 어렵쇼 이게 웬일. 감귤카페에 비치된 귤색 모자와 귤 모양 선글라스를, 제법 오래 착용하며 견딘다? 나는 즉시 사진을 마구 찍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선글라스를 썼어!! 하며. 지금까지 몇달 동안이나 아이에게 애원을 해도 거절당하던 일이 갑작스레 아주 쉽게 성공해버렸다. 우린 어리둥절하면서도 선글라스 낀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아주 신이 났다.


 아이를 위한 여행. 남편의 밤샘조차 고려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고 마는 아내의 하루. 그 속에서 나는 시시각각 놀라운 아이의 성장을 목격한다. 부쩍 음성표현도 늘고 행동에도 자기 생각이라는 걸 내비치는 시기인데 불쑥 엄마아빠를 놀래키는 새로운 행동 특성을 보이다니. 안그래도 아이를 지금껏 길러오면서 우리의 잦은 외출과 장기간의 여행이 아이의 성장을 어느정도 돕고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아이의 환경을 계속 바꿔주며 새로운 상황에 자주 접하게 해, 호기심을 돋우고 여기 저기 자기 몸으로 부딪히게 해온 것이다. 


 그런 교육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 우리가 하는 것이 교육인지조자 알 수 없다. 나는 차라리 우리의 교육법이 효과가 있었다고 하기보단, 아이의 생명력 그 자체의 신비로 아이는 스스로 큰다고 말하련다. 그저 우리는 제멋대로인 부부일 뿐이라고 생각도 들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든 이렇게 톡톡 젖은 흙에서 새순이 오르듯 아이의 발달이 보이는 순간에, 제주도라는 이곳, 감귤밭이라는 그 공간이 마냥 고마워지기도 한다. 여기에서, 아이는 한달을 보내고, 여기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선글라스도 쓰고, "이쁜짓" 애교도 배우고, 드디어 자기주도식을 제법 꾸준히 해내고 있다. 아이는 자란다. 아이를 위한 엄마아빠의 고군분투를 넘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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