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Feb 08. 2023

가도 가도 갈 곳이 생기네

제주도 6일차

"언제 생겼지? 우리 지난번에 왔을 때 있었나?"


 라는 말을 우리는 가끔 나누게 된다. 한달살이로는 이번이 네번째다. 2021년 1월 겨울에 제주도에 오면서 아이가 생겨, 태명이 동백이가 되었다. 같은 해 여름엔 만삭이 다 되어 서귀포에서 약 2주를 묵었다. 겨울을 한번 건너 뛰고 지난 여름 애월에서 20일. 그리고 이번 겨울. 그 전에 몇년간은 제주도에 딱히 올 일이 없었다. 결혼 전 이리 저리 제주도에 자주 오다보니 막상 결혼 하고 나선 제주도에 그리 발 붙일 일이 생기지 않았던 것. 그러나 첫 한달 살이 이후로는 퍽 이것이 우리가 찾던 계절이었음을 알고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분명히 지난번에 서귀포에 2주나 있었는데 왜 여길 못봤지? 한달살이를 네번째 하는 건데 그동안은 왜 여길 와 볼 생각을 못했지? 하는 그런 질문을 서로에게 던진다. 그러나 어리석은 질문으로, 당연하듯 수많은 식당과 카페가 없어지고 또 새로이 생겨나는 게 제주도만의 사정도 아닌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 우리가 왜 못 왔냐면, 그땐 그때대로 바삐 놀러다닌 때문이지. 시절인연이란 게 그리 쉽게 맺어지는 게 아냐. 객이 머물곳을 만나는 것도 다 인연인게다. 그런 인연이랄까, 아내의 친구 부부와 서귀포에 생긴 참으로 아름다운 카페에 왔다. 야 여기 정말 좋네. 저게 섭섬인가 밤섬인가 잘은 모르겠다만. 아 둘 다 사진에 찍힌 건가. 


 예전의 나였다면 커피가 7,8천원 하는 카페에 아연실색하며 다신 이런 카페는 가지 말자고 했을 텐데 나도 아내와 꽤 오래 보다보니 무뎌진다. 뷰 카페. 감성카페. 돈을 쏟아부어 비싼 땅을 불입하고 그 위에 비싼 건물을 올려 아무렇게나 커피를 판다. 사람들은 와서 사치를 체험하고 사진을 남긴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에 의미가 있을까만은, 그럼에도, 그걸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어째. 운전해주어야지. 다만 이정도 잘 꾸며놓은 카페라면 나도 마냥 뭐라고하진 못하겠다. 아기는 1층 테라스와 실내를 오가며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카페에 비치된 그림책을 보는 등, 2시간 가까이 즐겁게 놀았다. 가도, 가도 갈 곳은 많으니 내일도 또 이번 한달도, 그래 마음껏 놀자꾸나. 

 가도 가도 또 갈 곳이 생긴다는 것은, 이번엔 같은 고기를 자리만 바꾸어 먹어 보았는데도 새롭게 느껴지는 일이 되기도 한다. 서구포의 뽈살집 본점을 이번에 왔다. 두 해 전 첫 한달살이 떄는 한림에 있는 분점에서 먹었더랬는데, 그땐 딱히 맛도 없고 고기에 기름기도 너무 부족한 부위가 있고 하여, 그 친절하고 세련된 서비스에 만족하며 배부르게 먹고 나오면서도 대단히 맛있다고 하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본점에선 이번에 꽤나 만족했다. 젊은 사장님 두분이 손님을 맞는 한림점과 달리 서귀포는 장인정신까지 느껴지는 고기 다듬는 자리가 따로 있다.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이 두곳 다 훌륭.


 사실 지난번 한림점에 처음 갔을 땐 셀프바를 제대로 쓸 줄 몰랐던 탓도 있다. 뽈살짐은 기본서빙되는 찬들 외에도 셀프바에 굉장히 많은 양념과 반찬들이 있어서, 고기를 먹을 때 셀프바 음식들로 마저 세팅을 완료해야 한다. 그걸 모르고 한림점에 갔었던 것과 이번에 본점에 와서 그걸 알고 하는 것과의 차이는 매우 크다. 멜젓과 갈치젓과 특이한 채소로 만든 김치들에 와사비까지. 미리 알고 차려 먹으니 이보다 맛있기 어려운 고깃집이다. 그 덕에 유명세도 제법 치르는지 30명 정도는 대기줄을 서고 있다. 


 오늘의 일정은 아내 친구부부가 짠 것을 따랐다. 중간에, 아이는 아빠 품에서 한시간 정도 잠에 들었다. 우리끼리는 쉽게 정하기 어려운 일정들이었는데, 이럴 떄는 아내의 친구 덕을 봤다고 할 수 있겠다. 6일째인데 아직 제대로 하루 쉬지 못했다. 매일처럼 손님들이 오고, 그들의 관광 코스에 우리 하루살이 일정을 맞추다보니, 일부러 멀리 차를 몰게 되고 밖에 오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그 덕분에 좋은 곳을 알았고, 뽈살집의 원래 맛을 알았어. 의미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밤을 꼴딱 새웠다. 한시간쯤 잤나. 학위 논문이 마지막 문턱이다. 교수님의 말씀대로 너저분한 문장들을 정리하기 위해 아침 여섯시를 넘어 잠들었다. 


 이 한달살이, 여러모로 쉽지 않아. 해도 해도 할 일이 생기는 논문까지 껴서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 가고 친구 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