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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06. 2023

친구 가고 친구 오다

제주도 5일차

 손님들이 떠났다. 우리 집에서 목금토 3일을 묵고 두 커플이 아침 일찍 짐을 꾸려 나갔다. 손님맞이로 3일 밤마다 야식을 함께 먹고 1시 넘어서 잠을 자곤 했던 우리는 오랜만에 조금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하며, 아침은 집에서, 바깥양반의 시어머니께서 해주신, 그걸 통에 담아서 제주도까지 가지고 온, 꼬리곰탕에 칼국수면을 말아서 차렸다. 간소하지만 위로가 되는 식사. 일주일 내내 혹한과 폭설이 오갔고 친지 커플의 마지막날까지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그들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까지 못내 좋지 못했다. 그래도, 아직 날씨가 꼬물꼬물하더라도, 다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일요일이다. 우리는 천천히 집에서 몸을 일으키며 한바탕 청소를 하고 집을 나선다. 

 제주도에 팔로잉더커피라고 하는, 세 아티스트가 협업해 큐레이션한 150여개의 카페들이 있다. 지난해에 롤링브루잉(https://brunch.co.kr/@coexistence/786 참고)에 방문했다가 거기에 있는 지도의 QR코드를 찍어서 내 카카오맵 앱에도 저장했는데, 이거 쏠쏠하다. 여기에 있는 카페들을 순례해도 나름 돈값은 하는 카페 투어가 될듯. http://kko.to/mp4OS8orq9 오늘 온 곳은 애월에 있는 그린마일이다. 제레미에서 한 100미터 정도 떨어져있다. 커피의 맛은 괜찮다. 그리고 베이킹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화장실쪽이 재미있다. 본관에서 나와 야외의 계단을 내려가 건물을 하나 끼고 뒤로 돌아야 하는데, 그 계단 아래가 수납함처럼 문이 달려있다. 해리포터가 사나...? 


 우선은 커피와 함께 시작하는 아침. 아기는 벌써 신이 나서 카페를 뱅뱅 돈다. 15개월의 똥꼬발랄함을 누가 말릴까 싶냐만은 바깥양반의 취향 따라 카페를 부리나케 찾아는 다녀야 하고, 아기는 차에서 벗어나면 움추린 몸을 펴며 신나게 뛰어다니고, 그렇다고 이 아이를 바깥양반에게만 맡길 수도 없고. 그리하여 너 나 할 것 없이 카페에선 함께 아이를 돌보고, 또 이동하고, 또 식사와 카페에서 아이를 돌보고, 그러는 게 일상이다. 제주도에 와서 3일만에 우리끼리 맞는 시간인데 한적은 커녕, 바쁘기만 한데 오늘 또 손님이 와서 이틀을 묵기로 했다. 밤에. 

 나의 취향과 사맞디않은 바깥양반의 카페투어에 어울려주다보면 또, 이렇게 타박을 하다가도 내가 고개를 숙이고 괜찮은 카페에 데리고와주어 고맙다고 할 떄도 있다. 쌩뚱맞은 길을 한참을 가다보니 웬 카페가 하나 나오는데, 여기가 괜찮았다. 이립. 뜻이 도덕 위에 서 있다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 여기에 와서 편지를 주기에, 무어라 한참을 고민을 하다가 연필을 들어 나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 편지를 남이 가져간단다. 나 역시 남의 편지를 가져왔는데, 읽을 틈도 없이 하루가 훅 지나가버렸다. 바깥양반은 그 편지를 보고 너무 내용이 심심하더라는. 


 우리는 투닥거린다. 전전날 밤에도, 손님들과 야식을 먹는데 내가 바깥양반에게 타박하며 시비를 건 것이 그만 일이 커져 사람들을 앞에 두고 자정 넘은 시간에 제법 언성을 높였다. 사람들이 우릴 말리려 땀을 흘렸지만, 나는 이것도 바깥양반과의 연이 길어짐에 따라 관계를 가꾸어나가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다. 사람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내 생각은 솔직하게 말해야지. 내 마음은 바로 드러내야지. 그러지 않으면 결혼생활은 지옥이 된다. 


 이립에 오기까지도 제법 나는 타박을 했다. 이렇게 제주도 심산유곡으로 차를 몰고 들어갈 일이냐, 그냥 슬슬 다니다가 눈에 채이는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면 될 것 아니냐. 그러나 바깥양반은 자기가 정성스레 골라놓은 카페들을 나와 함께 가는 것에 굉장히 큰 애착을 지니고 있고, 그렇게 따라가는 카페들은 종종 나의 마음에도 퍽 든다. 이립은 그런 곳이었고, 나는 나의 타박을 미안해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식사는 절반의 실패, 절반의 발견.


 바깥양반은 저녁을 무얼 먹을지 고민을 하며 여기 저기를 고르다가, 어찌 어찌 둘이 합의한 곳을 찍었는데 그곳은 폐업해 있다. 그래서 나는 또 여기서, 그냥 지역주민처럼 동네에서 먹으면 될 일이지 뭘 그리고 고르고고르냐며 딴죽을 걸었고, 대강 차를 몰아 둘이서 타협점에 있는 식당을 대강 골랐다. 바깥양반이 마지못해 수락을 할만한 평범한 식당을. 


 그런데 그렇게 간 곳이, 퍽 둘의 마음에 두는 곳이었다. 해가 한참 전에 저물은 시간이지만 오션뷰에, 너무나 친절한 접객에, 음식이 맛도 있었다. 딱 하나 단점은 우리가 주문한 메뉴가 예상보다 비쌌다는 것인데, 친절로 상쇄될만큼은 된다. 나는 음식을, 서비스로 추가로 제공된 것까지, 남김없이 싹싹 그릇까지 닦아 비웠다. 


 그리고 우리는 밤이 되어 다시 손님을 맞이했다. 근데 그 손님들, 밤 11시에 오는 건 좀 너무했지. 우리가 술과 안주까지 준비해 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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