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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Sep 06. 2022

아이를 안고도 즐길 수 있는게 에스프레소바의 매력이랄까

제주 롤링브루잉

 동문시장에서 식사를 마칠 때쯤이 되어서야 아이는 잠에 들었다. 세상에나. 식사를 주문하고 대기하고 식사를 마치는, 그 한시간 내내 요란스럽게 장난치고 칭얼거리던 녀석이. 제주항에서 배를 타기 전에 짧게 귤이나 살까 하고 잠깐 들러서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시장 지하의 청년몰에서 식사까지 마친 참이라 아기띠도 안챙겨온 아빠에 품에서 말이다. 


 귤을 사기 위해 시장을 도는 동안 어느새 더위에 땀은 몽실몽실 등골을 타고 흐르고 아이의 머리에서도 훈기가 느껴진다. 귤 배송 미션까지 마치고 나니 시장에서의 일정은 끝. 그러나 배를 타기까지의 시간은 남았기에, 우리는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없을지 한번 더 얘기를 해봤다.


"도넛집 유명하다며."

"어 근데 내가 애초에 도넛은 안좋아해."

"음..."

"가려고 남겨둔 곳 있긴 한데, 에스프레소바라서 오빠 맛 보여주고 싶은데."

"응 그럼 가."

"애는 그렇게 안고?"

"뭐 후딱 돌고 나오자."


 아내는 나에게 지금까지 꽁꽁 감추고 남겨둔 카페 한군데를 가자고 제안했고 나는 수용했다. 에스프레소바라, 나나 아내의 취향 모두에 그리 사맞디 아니하여 남겨둔 곳이다.


 아내는 애초에 커피를 못마시기에 에스프레소 라인만 취급하는 에스프레소바는 논외이고 나 역시,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여건이 안되는 에스프레소바에 갈 이유는 없다. 하여 아내의 카페기행에 늘 에스프레소바는 후순위고, 제주도까지 와서, 갈 카페는 널렸는데 자기가 마실 음료 라인도 없는 곳에는 통 갈 일이 없다. 


 다만 오늘은 특별한 경우라, 나도 읽을 책이나 글을 쓸 노트북을 들고 온 것도 아니다. 그저 한 팔엔 아기, 다른 한 손엔 방금 먹고 남은 떡볶이 쓰레기봉투. 이런 여건이라면 에스프레소바도 괜찮다. 한입에 톡 털어먹고 나오기에, 자고 있는 아기를 안고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 아닌가.

 동문시장 앞 삼거리 한켠에 위치한 롤링브루잉은 큼지막한 고양이가 한마리 있다. 아내는 고양이조차 무서워하기에 미리 나에게 고양이는 훠이 훠이 멀리 해 달라고 요청까지 한 참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곤히 잠들어 있고, 힙하고 트렌디한 1층 실내를 구경하며 콜드브루 하나, 에스프레소 하나를 시켰다. 그리고 맛을 보라고 두 종의 콜드브루 시제품을 사장님이 내어주셨다.


"어때?"

"음...에스프레소야 에스프레소고. 여기 콜드브루가 경쟁력이 있겠네."

"어 콜드브루 유명해. 여기 병으로 따로 팔잖아."

"응."


 실내에는 로스팅 머신이 있다. 그리고 콜드브루도 직접 만들 터인데 두 종이 각기 살구향과 베리향이 잔잔히 나는 게 일반적인 콜드브루와는 다르다. 직접 로스팅을 해서 원두를 관리하는 집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맛이다. 일반적인 에스프레소용 원두가 아닌, 과일향의 노트를 가진 원두를 약배전하여 침전시키면 이런 맛이 나온다. 내가 처음 로스팅을 하던 시절 배전도를 관리 못해 커피들이 온통 약배전이 되어버려 시무룩하게 콜드브루를 만들었는데, 그게 뜻밖에도 생두의 맛을 고스란히 담아낸 맛있는 커피가 되어버린 적 있다. 


 규모가 큰 가게가 아니고 로스팅도 직접 하기에 이런 메뉴개발이 가능한듯 싶다. 그리고 이런 점은 프랜차이즈 커피점을 가지 않을 이유도 된다. 각종 첨가물로 바리에이션을 만들지 않아도 커피체리 안의 성분만으로도 이런 다양한 맛이 날 수 있으니. 

 얌전하게도 아기는 아빠가 도합 세 샷과 한 잔의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조용히 잠들어 있다. 한 팔론 아이를 받치고 한 팔론 커피를 마셔야하니 아무리 빠르게 마셔도 팔이 뻐근하긴 하다. 그런데다가 에스프레소는 몰라도 콜드브루 류는 맛을 음미해가며 먹을 필요가 있다. 아내가 내 커피도락을 알기에 굳이 콜드브루까지 시켜주었는데 이럴 땐 조금 미안하긴 하다. 훌륭한 카페에서 좋은 커피를 맛보는 즐거움을 제대로 표현해주지 모하니. 나는 각자의 커피에 대해 평가를 남기고 조용히 모든 잔을 비웠다. 에스프레소바에서 커피타임도, 에스프레소하게. 

 다만, 생각보단 편히 즐기다 갈 수 있는 카페이기도 하다는 점은 이곳의 가치를 높여준다. 성수기 낮시간임에도 카페는 그 퀄리티에 비하여 굉장히 한산하며 2층에서는 조용히 충분히 오래 시간을 보내다 갈 수 있다. 1층이 전형적인 에스프레소바라면 2층에선 콜드브루를 천천히 즐기다 가면 좋을듯하다. 아이를 안고 있는 게 아니라면 콜드브루 하나, 필터커피 하나가 좋겠지. 이곳 정도면 뜨거운 드립커피가 천천히 식어가며 뿜어내는 맛의 변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 중간중간 콜드브루의 찬 냉기로 한번씩 입을 헹궈주어도 될 테고 말이다. 음악도 감각적이고 인테리어도 그렇다. 나도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아내 등쌀에 뭐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메뉴를 확인하니 드립커피는 없는듯한데, 콜드브루용 커피로 에스프레소샷을 내어 아메리카노를 내어줄 순 없을지 궁금하다. 괜찮은 선택지일텐데 말이다. 

 몇가지 재미난 보너스도 챙겼다. 카페 안에 붙어있는 포스터의 QR코드를 찍으니 제주도 카페지도가 내가 주로 쓰는 카카오맵에 업로드되었다. 300여군데의 갈만한 카페들이 즐겨찾기가 등록되었다. 물론 그 중 30% 이상은, 이미 아내와 다녀온 곳들이긴 하다만은. 프랜차이즈 카페를 거부하고 감추어져 있는 좋은 카페들을 찾아가보려는 사람들에겐 꽤나 괜찮은 지침이 될 듯 하다. 


 카페 자체의 맛도 검증되어 있거니와 동문시장이라는, 제주도 여행의 출발점이고 종착점과 같은 곳에 위치해있으니 여러모로 방문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특히나, 쨍쨍 뙤약볕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에 캐리어를 끌고 영차영차 카페에 도착해, 살구향 폴폴 나는 콜드브루 한잔 원샷하면, 다신 평범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지 않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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