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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24. 2023

핫도그는 사먹는 걸로

싱겁고 퍽퍽했다고 한다.

 핫도그를 만들기 위해서는 숙성된 도우 반죽이 있어야 한다. 부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서진이네> 첫 방송 날 바깥양반이 뜬금없이 내게 핫도그를 해달라고 요청을 한 뒤로 한달을 더 넘겨서야 이제 만들게 된 이유다. 하루 전날, 혹은 적어도 반나절은 반죽을 부풀려야 한다. 그래야 빵처럼 포실포실한 핫도그 반죽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반죽을 미리 장만해두었다가 내어 핫도그를 튀기기까진 또, 머나먼 여정이 기다린다.


 아이가 18개월이 되었고 손은 여전히 많이 간다. 저녁을 쏜살같이 다 함께 차려먹고 나면 8시까진 아이를 재울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겨우 휴식시간인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게 편안히지 저녁시간을 보낼 여유는 없기에 필수적인 집안일 말고 핫도그 같이, 반죽 뒤에도 번거로운 일을 많이 겪어야 하는 그런 요리가 퍼뜩 마음 먹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바깥양반이 누구시냐. <서진이네> 두번째 방송 때는 나에게 핫도그를 사달라하셔, 나갔다가 폐점된 가게에서 헛걸음을 쳤다. 그 다음주 방송 시작 전엔 퇴근길에 핫도그집을 들렀다가 장을 봤다. 몇 주 뒤 한번 더. 그렇게, 바깥양반의 핫도그 게이지는 남편의 손길 없이도 가득 찼다가 낮아지고, 또 가득 찼다가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이다.


 허면 나는, 어떤 입장이었는고 하니…

 두번째로 핫도그를 먹던 날 나는 조촐하게 장을 보았다. 모짜렐라치즈가 영 보이지 않아 고민을 하다가 구워먹는 치즈가 있어서 당첨. 보아라 순도 99.35프로의 모짜렐라 치즈가 아닌가. 그 다음에 프로주부답게 주부9단 소시지를 샀다. 직접 해먹는 요리에는 이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좋은 재료들로. 믿을만한 음식으로.


 이 장을 봐놓고도 나는 열흘 뒤에나 핫도그를 만들 수가 있었는데, 그 사이 아기도 많이 아프고 나도 밤낮으로 바쁘다보니 다량의 기름을 소비하는 튀김류의 요리를 할 틈이야 있었을 리가. 그리하여, 그리하여. 주말인 일요일. 요즘 재접근기가 와서 새벽에 잡을 설친 아이가 모처럼 조금 늦게까지 아침에 잠을 잔다. 나는, 그 아이를 달래느라 잠을 설치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몸을 일으켜야 한다. 하여, 아침에 적당량의 이스트, 적당한 온도의 미온수, 적당한 분량의 설탕에 적당한 분량의 베이킹 파우더까지 해서, 만죽을 만든 것이다.


 이스트는 얼마나 넣어야 될지 몰라서 말 그대로 적당히만 넣었는데, 나중에 결과물을 보고 나니 후회가 된다. 분명, 이렇게나 거미줄처럼 찍찍 반죽이 좌악 늘어나는데도, 결과물은 바깥양반 드시기에 빵처럼 포실포실하지 않고 퍽퍽했다 하니. 에힝.

 반죽만 귀찮지, 나머지는 조금도 어렵지 않다. 라면 냄비 사이즈에 맞게 그냥 소세지 반쪽에다가 치즈 조각을 붙여서 돌돌 말아낸다. 원래는 내가 만든 반죽보다는 훨씬 물반죽스러운 것이긴 할 텐데, 수분 함량이 반죽의 식감에 영향을 미쳤을까. 


 어쨌든간에 나는 뚝딱, 세개의 핫도그를 튀겨냈다. 통소시지 핫도그 하나. 모짜렐라 핫도그 두개. 


 위생장갑을 끼고 핫도그를 쥐고, 나무젓가락을 꼽는다. 원래는 마시멜로를 구워먹을 꼬치를 사서 집에 두었었는데 어딜 갔나 모르겠다. 그걸 찾고 있을 틈도 없어서 칼로 나무젓가락 끝을 갈아내서 조금 뾰족하게 만들었더니 쓱 하고 잘 들어가긴 한다. 그럼, 설탕을 솔솔 뿌리고 그 위에 케쳡만 뿌리면 뭐, 뚝딱. 

 600ml 가량의 기름을 썼다. 수지 타산이 맞을까. 집에서 만드는 핫도그의 의의란 그저 만드는 사람의 정성을 어필할 수 있다는 점과 좋은 식재료라는 것 뿐이다. 기름값을 생각하면 사먹는게, 낫겠지.


"맛 어때?"

"어허허."


 바깥양반에게 핫도그를 차려드린 뒤, 아이를 달래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서 모짜렐라 핫도그를 반절쯤 먹은 바깥양반에게 감상을 물었다. 지금까지 참으로 오랜시간을 남편의 핫도그를 기다려왔으니 말이다. 물론, 내가 바깥양반의 입맛이 내 음식과 맞을 거란 허망한 기대는 버린지 오래다. 


"핫도그는 사 먹는 걸로."

"흥. 그럴 줄 알았다."

"어허허."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더니, 사먹자고 하네. 헛고생, 글쎄,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싱겁네. 소금을 넣었어야 하는데 이스트 반죽에 함부로 소금 넣는 거 아니래서. 반죽 부푼 뒤에 넣을 걸."

"어 그리고 뭔가 딱딱해."

"딱딱? 흠...좀 부드럽지 않긴 한데."


 처음부터, 부푼 반죽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외엔 제대로 알고 시작한 요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요리란 모르고 해도 몸에 좋고 맛만 있으면 장땡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인데- 간이 안되어 있다. 소시지도 반죽도 소금이 안들어가 싱겁다. 그리고 설탕도 부족, 케찹도 부족한가보다. 어차피 불량음식에 속하는 것이 이런 싱거운 맛이면, 조금 아쉽지.


 그러나 나는 핫도그를 딱히 포기하진 않으련다. 왜냐면, 주부9단 소시지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사람이 말이야 무를 뽑았으면...아니 칼을 뽑았으면, 다음엔 바깥양반에게 맛있다! 하는 말 한마디는 들어야지. 한 2년 쯤 뒤엔, 아기도 함께 먹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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