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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10. 2023

시금치 통닭 못참겠거든요

수요일은 통닭 트럭 오는 날

 문래동에 시금치통닭 맛집이 있다고 해서 지난 2월에 바깥양반을 모시고 갔다. 근처 카페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다가, 노키즈 존인지라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볼 순 없고 나만 가서 포장을 해 온 적이 있다. 집까지 한시간 반? 정도 거리라. 집에 와서는 아이부터 챙겨야 하고. 조리한 뒤 두시간 뒤에 먹는 음식이 맛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그러나 이 시금치 통닭집은, 그 핫하고 힙한 분위기 때문에, 포장보다는, 거기서 먹으면 그래. 맛집스럽긴 하겠더라.


 이렇게 시금치까지 추가해서 얼마더라. 4만원돈 했던 것 같다. 맛이야 있지만...이 돈 내고 먹어야 해? 라고 하면, 인테리어값이 70% 정도는 되지 싶은.


 마침 오늘은 수요일이고, 오늘은 통닭트럭이 오는 날이고, 오늘은 월요일 화요일 보충수업을 마치고 드디어 일찍 끝나는 날이고 장을 보러 가는 날이고...나는, 몇주전부터 계획했던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시금치 통닭 만들기. 시금치 통닭 못참겠거든요.


 나는 우선 장을 보고 오는 길에 9천원어치: 통닭을 산다.  감자는 냉장고에 있는데, 감자 두 알이면 5백원 정도겠지. 시금치는 한단에 1980원.


 마늘 네댓알...간장 네스푼...대강 이정도.

 감자 두 알을 쫑쫑 쑹쑹 썰어서 먼저 기름을 두른 팬에 돌린다. 감자를 넉넉한 크기로 조리하려면 그래도 좀 한입 가득은 될 사이즈여야 하는데, 지금 나는 시간이 없다. 빨리 만들어야 한다. 우선 감자부터 중불에 익히면서 시금치를 씻는다.


 시금치가 좀 이상하다. 처음엔 단에 묶여있는 걸 보고 이거 열무 아냐? 싶었는데, 이렇게 대가 잘 자라나 있는 시금치..는 모르겠어. 그러나 오늘 요리에 안맞는 건 아냐. 철이 지나, 좀 완숙된 시금치인가봐.


 그건 그렇다고 치고, 마늘도 급해서 빻을 시간이 없다. 대강 타다다닥 썰고 다져서 감자랑 같이 넣는다.


 그런 다음, 양념장을 만들어두고, 시금치를 먼저 넣는다.

 넉넉하게.

 양념장은 눈대중으로 설탕을 크게 두 스푼 넉넉하게 넣고 간장 다섯스푼 정도다. 맛술을 쓰지 않아, 맛술 대신 물을 작은 컵 반컵 정도 붓고 설탕 남은 걸 씻어넣었다. 후추 약간. 페퍼론치노 넉넉히.

 그래 이럴줄 알았어. 저 많던 시금치가 금새 풀이 죽으면서 감자보다도 훨씬 양이 작아보인다. 이제부터는 시간싸움이다. 시금치와 감자를 볶으면서 통닭을 반으로 자른다. 중불에 통닭의 찹쌀밥이 올라가자마자 치이익...하며, 행복한 소리가 나는구나.

 이제 여기서 오늘의 요리의 중요한 지점인데, 시금치는 너무 익으면 물렁물렁해지므로 일단은 빼서 통닭 주위에 둘러주고서, 감자는 따로 강불에 팍 익힌다. 이제는 감자를 양념에 최대한 빨리 졸이면서, 양념을 한번씩 이렇게 국자로 떠서 둘러주는 절차다.


 어쨌든 감자에 시금치에 페퍼론치노에...정성들인 양념이다. 통닭의 누룽지를 익혀주면서 그 위에 간장양념을 부어주니 금새금새, 요리가 완성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감자가 다 익었나...알아보기 위해 젓가락으로 쿡쿡 찔러보니. 다됐다.

 야 이거, 시금치 통닭 이거 못참는 거거든요. 앞으로 수요일이면 시금치를 사야할까. 그냥, 사와서 누룽지면 만들어서 먹어도 꿀맛이지만 이거, 맛있다. 간 조절을 완벽히 못해서 짜긴 짜다만, 감자랑 닭가슴살이랑 먹으면 시금치가 조금 짠 부분이 있어도 간이 잘 맞는다.


  이렇게 누룽지도 잘 구워져있고 말이지.

 나는 그동안 바깥에서 사 먹은 음식들을 집에서 해먹는 걸 즐겼는데, 예를 들어 돈까스! 는 사실 밖에서 먹는 게 훨씬 낫다. 기름과 뒤처리, 염지 등을 생각하면 그냥 만원 내고 밖에서 사먹는 게 훨씬 저렴하다. 탕수육도 대강 비슷하고 피자도 그렇다.


 많은 음식들이, 규모의 경제에 의해 밖에서 사먹는 게 낫다.


 그러나 시금치 통닭의 경우...15분이면 만천원 가량의 원가로 4만원짜리 외식음식을 따라잡을 수 있다. 가성비로도- 시간적으로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요리다. 게다가 우리처럼, 아기가 있어서 노키즈존에 출입을 못하고 포장만 해와서 먹어본 사람에겐.


 물론 외식을 하는 게 돈을 아끼려고만은 아니겠다만, 그렇다고 집에서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를, 굳이 포장해 와서 두시간이나 뒤에 먹을 이유도, 없지 않을까. 그곳이 아무리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인스타 감성을 리필해준다고 해도 말이다.


 밥집, 밥집에서 먹는 밥, 그곳마다의 맛도 멋도 있지만...집에서 이런 값비싸고 사실은 간단한 요리, 해봐도 괜찮잖아. 그래도 건강식이고. 장모님까지 셋, 아이까지 넷. 잘 먹었다. 난 아직도 배가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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