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May 21. 2023

대체 불가한 꽁치 통조림의 맛

김치 찌개애애애애

 살다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예전에 먹었던 그때 그 맛이 떠오를 때가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돌아가신 할머니나 어머니를 상기시키는 것은 그런 괴로운 순간이다. 나의 경우에는 엄마의 고등어조림과 두부조림을 참 좋아하는데 이제 장가를 들어서 내가 해먹어야 하는데, 조림 요리는 내가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여간 귀찮지가 않다. 굳이 해먹는 수고로움보다도, 엄마가 해준 그 맛이 그리울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 고유한 음식의 그 맛 중에 불현듯 꽁치, 통조림을 넣은 김치찌개가 당겼다. 어릴 때 나는 엄마가 왕왕 해주시던 그 음식을 처음에는 잘 먹지 못했다. 일단 비주얼부터가, 그리고 꽁치부터가, 구미를 당기지 않았던 것이다. 참치라는 정말 내가 좋아하던, 보다 나은 대안도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참치가 아니라 꽁치를 찌개에 넣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김치, 그저 국물만 조금 떠먹었다.


 그 꽁치가 좋아진 것은 어느날 아무 이유 없던 한 순간이었다. 엄마가 평소처럼 김치를 끓이며 먼저 꽁치를 붓고, 그 다음에 통조림에 다시 물을 부어 그 육수마저 아낌없이 찌개에 활용하는 모습을 구경한 뒤, 그날 따라, 이 잔가시가 부드럽게 녹아있었던, 예전엔 좋아하지 않았던 꽁치를 한 조각 집어먹었다.


 어, 맛있다.


 어린 나는 그 꽁치찌개를 밥 한공기와 함께 알차게 먹었다. 그리고 그 뒤에, 엄마에게서 그 꽁치김치찌개를 거의 얻어먹지 못했다. 별 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냥 엄마는 자기가 몇번 해 드시다가 질리면 다신 안하는 성미다. 그런데 나도 사실 그렇다.


 단지, 오늘은 꽁치 김치찌개가 땡겼다.

 엄마가 이것저것 챙겨줄 테니 오라고 하셔, 아이가 잘 시간에 먼저 집에 다녀왔다. 왕복 두시간 거리를 다녀오니 바깥양반이 다음주에 아이 소풍이 있으니 오늘 장을 보러 가자고 한다. 그래서 24시간 하는 식자재마트에 다녀오니, 시간은 어느새 밤 11시반. 쉬고는 싶지만 내일 아침에 이 맛을 보고싶다. 그래서 나는 장 봐 온 것들을 푸는 동안 어차피 씻지도 자지도 못할 테니, 이 사이에 김치라도 익혀놓기로 했다.


 김치를 끓인다. 작년에 한 김장김치가 올해는 많이 팔리질 않는다. 아이 때문에 집에서 끼니를 최대한 많이 해결하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바깥양반이 복직도 했고, 주말에도 부지런히 놀러나간다. 그러니 김치가 소비되질 않는다. 두달쯤 전에 썰어놓은 김치가 아직 남아있어, 그걸 썼다. 그랬더니 제법 시큼한 맛이, 잘 익은 신김치다. 신김치에 꽁치라, 와, 이거, 밥도둑이겠다. 군침이 돈다.


 나는 익숙한 방식대로 먼저 김치를 끓이면서, 그 와중에 다른 장 봐온 것들을 풀면서, 함께 사 온 꽁치통조림을 땄다. 그리고 그대로 냄비에 우수수 부은 뒤, 남은 육수마저 쓰기 위해 그 통에 물을 부어 찌개에 넣었다. 그랬더니 물이 좀 많아지긴 했다.


 원래 이 꽁치김치찌개를 맛깔나게 먹을라고 한다면, 제일 좋은 것은 썰지 않은 포기김치 상태 그대로, 물은 거의 없이 자작하게 찜을 하듯이 해야 한다. 그러면 꽁치 기름이 김치 이파리마다 배어든 게 보기에도 딱 좋다. 다만 그런 요리를 할 순 있어도, 상을 차리고 먹을 수는 없는 게 지금 내 입장이다. 아이를 끼고 밥을 먹어야 하는데 어느 사이에 손가락으로 김치를 좍좍 찢은 뒤 그걸 쪽쪽 빨고 숟가락을 들까. 그러니, 포기김치를 쓰는 것도 포기. 그리고 꽁치국물을 아낌없이 쓰겠다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그만 국물이 너무 많아졌다.


 엄마는 원래부터 김치를 거의 지져서만 먹는 편이기 때문에 그걸 흉내내려면, 나도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다. 나는 원래 국물을 많이 내서 먹는 편이긴 하다. 괜찮아 통조림 아직 두개 남았어. 다만 나는 여기에 한가지 아주 괜찮은 것을 추가했다. 팍 쉰 알타리무 김치를 한 줌 넣었다. 임신했을 때 바깥양반이 알타리가 먹고 싶었던지 내게 말도 없이 자기 먹대로 알타리김치를 택배로 시켰던 것인데, 당연, 변덕으로 인해 거의 먹지도 않았고 내가 이리 저리 굴리고 있다. 김치냉장고에서 쫓겨나 일반 냉장고에서 2년 넘게 보관되어 있는 알타리는, 오늘처럼 신김치에 꽁치에 함께 찌개로 끓이면 천상 안성맞춤이다.

 아침이 되었다. 밥을 차린다. 전날 엄마가 주신 오이소박이. 저번달에 엄마가 이거보다 조금 많은 양을 해주셨는데 장모님과 바깥양반이 일주일 사이에 싹싹 긁어먹었다. 기똥차게 맛있게 먹었다고 엄마에게 전했더니, 엄마는 언제 찾으러 오겠냐고. 그게 지난밤 내가 집에 다녀온 이유다.


 그리고 내 스타일의 가지볶음을 만들기 위해 엊그제 튀겨놓은 고기를 파기름과 함께 볶고, 가지를 썰고, 버섯을 썰고 볶는다. 그리고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소시지를 계란에 묻혀 구워낸다. 열무김치, 가 조금 남아서 함께. 


 일요일 아침의 늦은 식사다. 후다닥, 차려낸다. 사실 아침을 차리기 전에 안방을 대청소한다고 침대를 들어내고 아래를 쓸고 닦았다. 힘들다. 나는, 위로를 받고 싶고 꽁치김치찌개의 시큼한 맛에 온몸의 활력을 되찾고 싶다. 

 밥상은, 새로 지은 밥과 함께 금새 차려진다. 추억의 한 구석에서 길어올린 맛, 지금도 살아있는 엄마의 오이의 아삭임, 내가 좋아라하는 가지볶음과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소시지 구이 등등. 이정도면,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아침 식사, 겠다. 그런데 왜 사진이 이렇게 쨍하게 나왔을까. 


 자리에 앉자 마자 가장 먼저 국물을 뜬다. 아, 이 시원한, 군침을 부르는 시큼한 국물의 맛. 기름지며 감칠맛 나는 것이 과연 대체 불가한 맛이다. 환상의 맛이냐고 하면 그런 건 아니지만, 짭쪼름하고 달콤한 쥐포의 맛과 같이, 다른 음식은 흉내를 내기 어려운 맛. 함께 푹 익은, 푹 쉬어빠졌던 알타리 조각도 한 입. 이야. 그리고 김치, 흰쪽 말고 파란색쪽, 이파리쪽을 집고, 거기에 꽁치를 올린다. 


 이야아...


 이야아아아...


 맛있다. 


 내가 했지만, 남이 차려준 건 아니지만, 그래서 온전히 이 기쁨을 누리긴, 아쉬움이 있지만, 


 맛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금치 통닭 못참겠거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