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편이 2014년에 나와 134만명이라는, 당시의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전성기의 관객몰이에 비해서 썩 시원찮은 국내 성적을 거둔 것은 마블팬들에겐 꽤나 널리 퍼진 아쉬움이었다. 사실 1편부터가, 마블영화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토르> 각 시리즈가 착착 신규 <어벤져스>시리즈를 위한 빌드업을 해나가면서 어마어마한 관객몰이를 했으나 그것은 주류 히어로물 안에서의 반복과 변주에 머물렀다. "시네마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마틴 스콜세지의 비판처럼 마블 히어로물의 한계가 뚜렷했고 크리스 에반스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두 사람의 각기 배역의 수명 또한 명확하게 예상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마블은 마블 자체를 넘어서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다.
그런 와중에 B급 감독으로서 강한 정체성과 악마의 재능을 가진 제임스 건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내놓았고 이 영화는 단숨에 미국 본토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6,70년대부터 아우르는 광범위한 배경음악들에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근본 장르를 깔아서 우선 관객의 층을 크게 넓혔고, 거기에 중심 서사는 클리셰를 따르되 디테일에서는 그걸 하나하나 가지고 노는 유쾌한 유머까지 갖추어, 마블 히어로물의 기존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우주로 세계관을 확장하며 미래를 위한 장을 훌쩍 열어재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우리 나라에서 이토록 아쉬운 성적이라니 기가 차지. 그러나 그도 그럴 것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유머코드부터 배경음악, 클리셰를 비트는 B급 코드 등등 한국의 관객들에겐 어필하는 구석보다는 장벽으로 기능하는 구석이 많았고 코믹스의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외국의 문화로서 어벤져스 주류 영웅들의 서사를 먼저 받아들이다보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미국과 영미권의 관객처럼 즐기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2023년이 된 지금, 그 사이 제임스 건 감독은 마블 측으로부터 해고당해서 DC로 소속을 옮겼다가 다시 복귀하는 소동을 겪었고, 자신의 비주류 정서가 몰고 온 거대한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꽤나, 거센 자존감의 고민을 경험했을 것이다. 십수년전의 '헛소리'들은 현재의 비판과 해고의 근거가 되는가? 그를 지지하는 배우들은 함께 마블에서 소외당해야 하는가? 막말에 그친 일들이 범죄처럼 처벌을 당해야 할 이유가 되는가? 하는 것들 등등.
하여 한때 모두에게서 사랑받던 빛나는 재능을 가진 제임스 건 감독은 모두의 미움을 받는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DC에서도 마블에서도 영, 환영만 받기는 어려운 처지가 된 상태에서 자신의 출세작의 마지막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는다. 아무리, 관객으로서 그러한 감독의 배경을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나는 영화 전반에 깔린 짙은 그의 색깔과 3편의 주역 로켓의 서사로부터, 결국 이것은 제임스 건 자신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수십번은 느끼곤 했다.
바로, 사랑받아 마땅한 천덕꾸러기라는, 감독 제임스 건의 이야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영화 고유의이야기. 영화 속 괴짜들 하나하나의 이야기.
3편은 로켓의 이야기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의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주제와 각 캐릭터의 관계도 강하게 응축되어 있다. 이것이 사실 영화의 불안정하고 들쭉날쭉한 이음새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영화 초반에 스타로드가 술독에 빠져있는 것도 불필요하고, 로켓의 과거 회상 분량도 절반 정도는 줄여야 타당하고, 아무리 클리셰를 비트는 것을 의도했다고 하지만 장면장면의 연결에서 개연성은 크게 떨어져서 몰입을 깬다.
서사를 위해 장면을 잇는 것이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답게 다양한 우주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도가 있다고 해도, 장면 자체가 연결이 되지 않는 구석이 조금 있다. 그런데다가 3편에 이르러 시각연출이 조금 거부감이 들 정도로 감독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데, <닥터후>도 아니고 대중적인 거대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이런 씬까지? 라고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제임스 건 감독의 개성이 강한 것은 잘 알지만 관객에게 녹아드는 개성이냐? 하면 아닌 구석이 많다.
그러나 그것이 영화의 주제와 중심 갈등축을 바탕에 두고 해석하면 나름의 의의를 갖는다. 원래부터도 이 시리즈는 각종 배경을 가진 다양한 괴짜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한 적-1편에서는 로난과 인피니티 스톤, 2편에서는 우주적 존재 에고, 3편에서는 세계를 창조하고 파괴할 권능을 지닌 존재-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준의 용기로 맞서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승리한다는 기본 구조를 갖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구성원의 면면이 히어로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강함과 능력, 성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간 시리즈 자체가 이들을 얼기설기 엮어놓고는 계속 새로운 공간에, 이질적인 체험에 밀어넣어놓고는 기가 막힌 결말들을 선보이는 방식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한 시리즈의 특징은 3편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각 인물들은,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계속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게 늘 흘러간다. 그런 가운데 영화는, 계속해서 이 천방지축 천덕꾸러기들이 어떻게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지를. 이 기상천외하고 천변만화하는 우주 세계에서 하나의 가족을, 보금자리를 이루는지를 비춘다. 그런 가운데 영화는 "뒤틀린 완벽함"과 "사랑스러운 불완전함"을 갈등축에 각각 배치한 뒤 이야기를 멋지개 끝맺는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이미 영화 전반에 감독의 색이 너무나 짙기 때문에 나는 이런 영화의 기본 기조가 제임스 건 감독의 정체성이 물씬 묻어난다고 느꼈고, 결과적으론 이것이 마블 세계관을 떠나는 그가 160분의 러닝타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꽉꽉 눌러담아서 우스꽝스럽고 화려하면서 기괴하고 뭉클한 그런 고별 편지를, 우리에게 보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편지를 받아보게 된 우리의 입장은 무엇이냐, 구 어벤져스 시리즈, 즉 인피니티사가의 매력있는 캐릭터들이 각 배역의 이탈과 소멸되고 이제 멀티버스사가는 비주류 중심의 서사를 기본으로 흘러가고 있다. 강한 백임 남성 영웅은 없다. 여성 히어로, 잼민 히어로, 흔인 히어로 등, 그 각자가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임에도 기존 어벤져스의 코드와는 부합하지 않는.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역시 과거에 갖고 있던 독특한 위치에 머물지 못하고 오히려, 관객들에게 구 어벤져스의 추억거리로 남게 되었는 사실이다. 그 사랑받아 마땅하던 천덕꾸러기들이, 이제는 다시 발 디딜 길 없는 우주정거장 저 너머로 멀어져간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피터 퀼은 돌아오고 로켓이나 그루트 역시 돌아온다 해도 드랙스와 가모라는 하차가 확정되었다. 제임스 건이 아닌 다른 감독이 연출할 새 시리즈의 비전이 어떨지 알 수 없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자체가 감독의 비주류 성향과 B급 정체성에서 온 산물이기 때문에 그가 아닌 다른 감독이 만드는 새 시리즈는 사실 다른 작품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대중성에서 한발짝 뒤에 서서, B급 영화의 팬으로서는 정말 즐겁게 즐긴 영화였다. 대놓고 의도한 호러영화의 코드도 즐거웠고 명불허전 사운드트랙에, 대중적으론 기괴한 비주얼도 흠뻑 즐겼다. 눈에 거슬리는 불필요한 장면은, 그래도 사랑스러웠다. 아마도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지난 15년을 추억하며 하나의 마침표를 찍게 되지 않을까. 안녕. 안녕. 모두들 안녕. 그들의 마지막 모습 하나 하나 사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