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삶의 이유를 새롭게 부여하며 마무리한, 세련된 결말.
존 윅의 이야기는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1편의 시작 지점에서 그는 은퇴한 백수에, 삶의 이유를 잃고 실낱같은 희망, 데이지만이 곁에 있던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삶의 위안이자 희망을 빼앗아갔으니, 그의 복수는 정당했고 여기에 컨티넨탈이라는 매력적인 설정과 마커스(윌렘 대포 분)라는 친우, 그를 노리는 킬러와 "규율"이 극의 배경으로 따라붙었다.
그럼에도, 그의 목적은 단 하나였으니 복수의 끝, 그리고 그 뒤에는 안식이었다. 속편이 결정되지 않았던 1편의 결말은 그래서 새로운 개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것으로 결말 지어진다. 그 뒤에 1편의 내러티브를 크게 확장한 2,3,4편이 이어졌지만, 이야기의 구조도 결말도 거의 유사하게 반복되는 구조를 취한다. 존 윅은 안식, 혹은 안식처를 잃었으며, 그에 따라 복수를 시작하고, 복수로 인하여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에서 살아남은 뒤, 다시, 불완전한 안식으로 향한다.
헬렌과 그녀가 남긴 데이지가 없어졌기 때문에 텅 빈 집도, 새로 만난 개도 완전한 안식을 그에게 선사해주지 못한다. 다만, 살아야 할 이유를 실낱처럼 유지해줄 뿐이다. 그러나 살아야 할 이유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남자의, 그럼에도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와 그게 이어진 일련의 행동은 존 윅의 2,3,4편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지으며, 스릴을 크게 높였다.
나는 이 시리즈의 큰 성공요인 중 하나가 말 그대로 외줄타기 상태인 존 윅의 불안한 처지가 발생시킨 스릴에 있다고 보는데, 그런 배경을 부여하니 은퇴한 전직 킬러가 그를 노리는 수백명의 사람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트리는, 액션의 연출과 박력과는 별개로 이야기의 핵심 장치로서는 취약한 문제를 상당히 잘 해결해냈다고 생각한다. 왜 존 윅은 고층 빌딩에서 구르며 떨어져서도 죽지 않는가? 왜 존 윅은 수백명의, 그를 노리는 킬러들의 틈바구니에서도 살아남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안식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길고 긴 대장정의 끝에서, 그가 찾아 헤멘 유일한 것은 안식. 삶의 이유를 다시 찾아내어, 그것을 누리는 행복 속에서의 이야기의 결말로, 영화의 결말은 존 윅 1편의 시작지점에서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런 점에서 존 윅 4의 결말이 주는 짧고도 강한 여운은 이야기로서 탁월하다. 아니, 4편의 내러티브가 전체적으로 훌륭한 점이 많은데, 우선 도입부에서 3편의 문제로 지적되었던 점들을 상당히 정리하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컨티넨탈 오사카에서 펼쳐진 에피소드는 3편의 닌자 암살자들과 도검류를 이용한 전투라는, 1편과 2편에서 보여주었던 존 윅의 독특한 전투 방식에서 벗어나 발생한 이질감을 역이용해서 훌륭한 액션장면을 보여줌과 함께 3편의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하나의 에피소드를 종결시킨다.
존 윅 2편과 3편, 4편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점은 바로 이전 시리즈의 이야기, 혹은 마지막 장면의 연장선이라는 점이 있는데 2편의 도입부 카레이싱 액션과 마피아 습격 씬, 3편의 도주 씬, 4편의 장로 추격 씬이 그러하다. 4편의 컨티넌탈 오사카 역시 3편의 마무리 액션 시퀀스를 연장해서 해당 액션 씬의 맥락을 이어가 전편의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한편, 훨씬 깔끔한 액션 장면들을 뽑아내어 만족도를 높였다.
동시에 오사카 에피소드가 의미있는 점은 다름 아닌 케인의 킬러로서의 실력에 설득력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오사카 에피소드가 없었다면 그의 도검류 액션 자체가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 않았을 것이고, 4편의 결말까지 이어진 케인의 스토리에서의 비중과 액션의 독창성을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3편의 닌자 암살과 도검류 액션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결론내려질 수 있겠다.
이런 식으로, 존 윅 4편은 매력적인 세계관를 잘 이용해 새로운 인물과 갈등 구조를 배치했고, 헬렌도 데이지도 그의 십도 없었던 상황에서 존 윅의 삶의 이유를 부여하고, 그가 만족스러운 결말을 맞이할 수 있도록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영화다. 우리가 언제, 왜 삶의 이유를 상실하고 또 다시금 삶의 이유를 되찾게 되는지를 상기한다면, 1편의 결말부에서는 그가 새로운 강아지를 만나 그와 집에 가듯, 4편의 결말부에서는 새로운 인물들을 위해서 삶의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고, 그를 위해서 마지막 싸움에 나서고, 끝내 승리하게 되는 창의적이면서 보편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을 생생히 느끼게 된다.
분명히 3편과 4편의 시작 지점에서는 그에게는 분노만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삶의 이유가 없이 방황하며, 부질없는 싸움만 반복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4편의 결말은, 이 얼마나 훌륭한 마무리인가. 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강인한 존재였단 말인가. 그러니까 존 윅은,4편에 이르러 하나의 큰 이야기, 1편에서 미리 보여주었던 이야기와 결말을 훨씬 세련되게 변주하며, 자칫 공허할 수 있던 갈등과 결말을 생생히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선사했다. 거기에 액션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다만 아쉬운 점은 4편에 이르러, 그의 위엄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총기 액션의 리얼함은 조금 부족해졌다는 점이다. 후반부의 액션 장면 중에서 일부는 턱이 빠질만큼 훌륭하고 일부는 좀 갸우뚱 하게 된다. 잔탄 안 세? 탄창 딱딱 안갈아? 무한 총알이야? 하는 장면들과, 요즘 애들이 존 윅을 왜 이렇게 리스펙을 안하지? 하는 장면들. 물론 4편의 주요 갈등이, 존 윅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려는 악당의 등장으로 인해 발생하다보니 그런 점은 있지만 아니, 존 윅이 처음 만나는 새 인물인 아키라가 영화 초반부터 그를 리스펙하기보단 왜 왔냐며 박대하고, 그 뒤에 다른 등장인물들도 리스펙보다는 "ㅋㅋ" 거리며 그를 노릴 생각만 하니, 아무래도 영화의 매력적인 장치 하나가 사라진 점이 아쉽다. 적어도 파리의 킬러들이, 자기들끼리 존 윅에 대한 경외심을 담은 수다 정도는 떨어주었어야.
키아누 리브스가 배우로서 이룰 것은 웬만큼 다 이뤄본 양반이고 경력도 30년이 넘다보니, 속편이 나와주면 기쁘지만 안나와도 그만이라, 1편을, 추석 전날 전 부치면서 다 보게 된 뒤 2편은 두번 극장에서 보고, 4편은 아기를 재우고 밤 9시에 집을 뛰쳐나와 본,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 복잡 미묘한 심정이다. 아키라, 케인, 노바디 그리고 건재한 윈스턴과 바우어리 킹 등...시리즈의 생명력은 살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존 윅. 아아 존 윅.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