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 벌써 6일째인가
오늘 우리는 조금 엉뚱한 짓을 하기로 했다. 아점만 먹고, 여수를 가기로.
여수를 가는 이유는 특별한 것은 없다. 남해에는 7일 일정인데 아무것도 정하고 온 것이 없다. 마음 가는대로 그냥 그날 그날 적당히 밥집 가서 밥 먹고, 아이 물놀이 시키는 시금털털한 일정이다. 나도 아내도 남해에 가볼만한 곳은 거의 가본 터라. 나는 그래서 여수 정도는 한번 가줄까~ 생각중이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친한 언니에게 바로 어제 오픈한 스타벅스 돌산점에 방문해볼 것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스타벅스라. 오늘날 사람들의 욕망과 자존감의 거울 같은 곳이 되어버려, 그냥 목 좋은 곳에 박기만 하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베리에이션이 아니면 맛도 없는 그 커피를 먹는다. 평소 같으면 절대 안갈 일이지만, 또 아내 역시도 굳이 남해에서 여수까지 스타벅스 하나 보고 갈 일도 아니라서 오늘의 일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그냥 둘이서, 별 생각도 없고 큰 기대도 없이, 그래도 날씨도 좋고 하니 여수나 한번 찍고 오자- 하며, 아침에 길을 나섰다.
그러나 굳이 뭐 여수에 새로 생겼다는 스타벅스를 갈 일이라면, 오늘 아점을 먹은 이 자그마한 식당가가 훨씬 아리땁더라. 남해 하버스퀘어. 새로 생긴듯한데 딱 아담한 서양 감성의 식당 아케이드형 쉼터다. 젤라또 가게와 캘리포니안 롤 가게, 타코와 파스타 가게 이렇게 셋이 모여있는데 진짜로 어처구니 없는 남해 한 귀퉁이에 붙어있다. 그런데 젤라또와 타코의 가성비도 좋고 이 풍경의 만족도도 좋았다.
부디 남해에 와 날씨가 좋은 날이걸랑, 독일마을에선 4,50분 정도는 걸리지만 하버스퀘어에 와보시길.
따님께서는 젤라또 집에서 아주 깨방정을 떠시며 놀았다. 의자마다 타고 넘어다니며, 주문에 쓰이는 색연필을 뽑아서 놀다가 떨어트려 심을 두개 부러트렸다. 사고 치는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시기라 이제는 정말 거머리처럼 우리가 따라다녀야 할 성 싶다. 다른 손님이 먹고 버린 젤라또 스푼을 양 손 듬뿍 들고오질 않나. 젤라또는 제 손으로 먹겠다며 도움의 손길도 거부하다가 옷이며 바닥이며에 흘리질 않나.
그래서 슬슬 아이의 욕구를 통제하고 가라앉히는 연습을 우린 하고 있다. 아이의 욕구를 수용할 때와 눌러줄 때의 분간은 쉽지 않다. 그래도 방학 덕분에 아이를 오래 보며 우리가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은 다행한 일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곧 개학을 하면 아이와는 주말 정도만 풀타임으로 함께 있을 수 있으니.
엇 사진이 포커스가...스타벅스 여수 돌산점은, 뭐 그냥 어디에나 있는 뷰 좋은 스타벅스 건물이다. 시그니처커피는 쓸데 없이 달았고, 손님은 터무니 없이 많았다. 장내엔 좌석이 없다는 소리가 방송으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행복의 나라 부탄에서도 최근에는 국민들의 총행복지수가 점점 내려가고 있다고 한다. 큰 원인의 하나로 인터넷과 SNS를 통해 외부 세계의 삶에 대해 부탄 국민들이 부쩍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 꼽힌다. 히말라야 산맥줄기에 감싸인 질박한 삶보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타인의 삶이 부러워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이미지와 개인미디어는 현대의 삶과 의식을 크게 바꾼다. 프레임 바깥의 맥락과 배경이 감춰진 한장의 사진이 수천, 수만개의 하트가 찍히는 세상에서 자본은 더욱 은밀하고 섬세하게 우리를 포위한다. 왜 우리는 재벌 가문의 망나니가 벌이는 사업에 피땀 흘려 번 돈을 바칠까. 지차체들은 스타벅스 하나가 유인하는 어마어마한 방문객 덕분에 이런 자리에 잘도 딱딱 사업 승인을 내주나보다.
그러한 공간에 힘들게 자리를 잡은 우리의 마음도, 욕망의 널뛰기를 경험한다. 우리는 자리를 두번 바꾸었다. 처음엔 바다가 전혀 보이지 않는 기둥 뒤 막힌 자리. 그런데 바로 옆에 창문 밖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자리가 났다. 그래서 그리로 옮겼는데, 옮기지마자 서편으로 난 창으로 햇볕이 강하게 들어오는 시간대라 커튼이 바다뷰를 모두 가리고 말았다. 나는 아내가 음료를 받아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가장 뷰가 좋은 자리에 가서 10분 정도 기다렸다. 그래서 난 자리에 앉아 아내와 아이를 부렀다.
이런 고생을 했으니 가장 목 좋은 이 자리가 아니 아까울까. 한시간여의 기다림 끝에 힘들게 얻어낸 자리라, 본전을 뽑을 생각에 잔뜩 젖어서 이 자리에 오래 있겠다며 의지를 다녔다. 물론, 그렇게 자리에 앉아봐야 아기가 가만히 있어주지 않으니 나는 내내 아이를 따라다니며 계단과 화장실 등을 오갔기에, 전혀 의미 없는 판단이었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또 무념무상으로, 큰 감흥도 없이, 적절하게 인증샷을 찍고 나왔다. 갓김치를 사서 갈까,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 남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다른 카페를 하나 들렀다. 그런데 내 성미엔 이 카페의 뷰가 훨씬 좋았다. 남해에 들어가는 길목의 노량항은 작지만 깔끔하고 예쁜 항구다. 이 항구를 널리 조망하는 카페가 있는데, 가까이서 멀고 가까운 오밀조밀한 풍경을 모두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카페까지 들렀다가 마지막 일정으로 어제 가려다 실패한 식당을 가기로 했는데,
"오빠아! 마감이래!"
이런. 어제 7시에 왔을 때 마감이길래 1시간 당겨 6시에 왔는데도, 마감이란다. 좀 전에 5시반에 문의전화를 했을 때는 지금 오면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시더니 그 지금이 지금 당장이었던 것이란 말가. 우리는 이를 바드득 갈며 내일 꼭 와서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길을 돌렸다. 제갈공명도 아니고 지금 물회 하나에 삼고초려를 할 일이야 이게?
그 대신 찾은 밥집은, 음. 만족스러웠다. 된장찌개와 두루치기가 돌솥에 끓여져나온다. 깔끔한 맛, 잘 볶아진 기름 내음. 그리고 깔끔한 반찬에 너그러운 친절까지. 배가 고프던 아이는 김가루 올려서 내와진 밥을 모두 먹어치웠다. 가려던 곳을 못갔지만, 대신 방문한 곳에서도 아쉽지 않은 식사였다.
아~무 생각없이 여수까지 갔다가 우리는 셀프로 좀 허탕을 쳤다. 내일은, 남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그러나 내일도 우리는 별다른 생각은 없다. 그냥 내일만은 꼭 그 물회를 먹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집에 와 아이와 열심히 놀아준 뒤 잠을 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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