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일기 7.

by 공존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 마지막 날을 바삐 보내기 시작했다. 어제 아이는 모처럼 좀 일찍 자 주었다. 열심히 낮잠 스케줄을 관리해준 덕분에. 오늘은 어떨까. 하루 하루, 아이가 보낼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가 여행의 의미이기도 하다.


남해엔 양떼목장이 셋 있다. 양마르뜨언덕과 상상양떼목장, 그리고 양모리학교. 셋 중에 양모리학교가 가장 먼저 생긴 원조격이다. 양모리학교의 관리인께 듣기론 이곳의 사장님께서 영국에 가서 직접 양모관리까지 배우고 와, 한국에선 딱 한 명 있는 관리 자격증 소유자라고 한다. 그래서 제주도를 포함 전국을 다니며 봄철엔 양털 깎아주는 일을 하신다고 할 정도.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해보이지만, 적어도 양모리학교가 남해에서 가장 뷰가 좋고 편안한 공간임은 틀림이 없다. 탁 트인 남해바다를 보며 양과 만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양들이 성급하지 않다.


양떼목장에 가면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양으로 인해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할 때가 많다. 양들이 좀 배가 주려야 손님들이 주는 먹이를 잘 먹는 탓에 좀 덜 먹여두나 싶다. 동백이도 이틀 전 양떼목장에서 그렇게 달려드는 양들에 겁을 먹고 양들에게 다가가길 주저하는 상태다. 그런데 양모리학교의 양들은 지금까지 본 양들 중에 제일 양순하다. 즉, 배가 부른 상태다. 오긴 오는데 막 다급하게 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양들과 교감할 수 있다.


우리가 5년쯤 전에 이곳에 왔을 때 양모리학교 위의 상사양떼목장은 막 땅을 파가며 새로 개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 등 마케팅을 좀 돌린 탓인지, 아니면 양모리학교가 너무 느린 탓인지, "양떼목장"으로 검색하면 상상양떼목장이 먼저, 새로 생긴 양마르뜨언덕이 둘째로 나오고 양모리학교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규모로 보아도 양모리학교가 상상양떼목장에 비해 큰 것은 아니며, 시설도 낡은 편이긴 하나 셋 중 원조격이라는 위치에 비하면 이런 느슨한 경영은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는 지난번 방문이 오래된 탓에 양모리학교의 이름을 기억 못해, 양마르뜨언덕인줄 알고 거길 먼저 갔다가, 이번엔 상상양떼목장을 네비로 찍고 올라오던 중, "어? 상상양떼목장이 아니라 여기 양모리학교인데? 내 기억에?"라며 차를 멈춰세웠다. 상상양떼목장이 개장 공사 중이었던 지난번 방문 기억이 아니었으면, 바다와 어우러진 이 풍경을 놓쳐버릴뻔 했다.

양떼목장에서 내려온 뒤 남해에서 으뜸 가는 물회집을 들렀다. 웃기게도, 이 물회집을 먼저 두번이나 방문했는데도 먹는데 실패해서, 세번째로 들렀다. 아니 나는 유비가 아니고 물회는 제갈량이 아닌데 일주일 여행에 세번 방문, 삼고초려가 실화냐. 다행히 우리 숙소에서 20분 걸리는 짧은 거리이니 망정이지. 또, 그때마다 괜찮은 대안들이 바로 옆 읍내에 있으니 다행이었지. 정말 제대로 물을 먹을 뻔. 물회가 아니라.


물회 집에 두시쯤 도착했는데 대기열이 15팀 이상 있다. 엑. 그러나 오늘이 아니면 먹을 수 없다. 1시간 정도 대기가 예상되어, 우리는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로컬마켓에 들렀다. 그런데 이 곳이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남해 특산물을 비롯, 여러가지 수입 소품도 있고 현장에서 수제어묵과 카페 메뉴도 먹고 쉬고 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를 평소 많이 챙겨주시는 부장님께 드리고자, 남해 미역과 다시다, 그리고 김부각을 샀다. 그리고 아내와 내일 올라가기 전에 보리새우를 좀 사기로 했다. 다니면서 보니 마늘쫑새우볶음을 잘 먹기에 좀 해줘야겠다 싶다.


아내가 잘 먹는 밑반찬이 몇가지 있다. 그러나 내가 밑반찬 하는 걸 귀찮아하는 성미인데다 정작 훨씬 재료값도 더 들고 조리에 품이 드는 메인메뉴 만드는 걸 더 좋아하는 탓에 그런 걸 해주지 않는다. 내가 만들고서도, 내가 귀찮아 꺼내주지 않는다. 아내가 꺼내먹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우리집에서 밑반찬은 쉬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치앙마이 여행에 이어 남해에서 밥집들을 다니며 모처럼 밑반찬이 두루 담긴 밥집들을 다니며, 새삼 밑반찬의 즐거움을 다시 느꼈다. 그런 탓에, 안해주던 반찬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


로컬마켓에서 20분여 시간을 보내고 물회집에 돌아갔다. 아차차. 우리 대기순번이 마침 딱 넘어가있다. 우리 아랫 자리가 입장을 한 상태. 다행스럽게도 우리 이름을 지워주지 않으신 사장님 덕에, 차를 대자마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물회집은, 오, 맛집이야. 이건 따로 소개하기로.

식사까지 하고 나서 살짝, 동선이 꼬였다. 마지막 날이니 욕심 내어 다닐 법도 한데, 우리가 한 일이라곤 양모리학교와 점심식사가 사실상 전부다.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서 저녁에 바다에 가서 물놀이를 하면 하루가 끝나게 된다. 아쉬운 마음에 길을 돌려 아내가 새로이 발견한 팥 전문 카페에 갔다. 남해 동쪽, 창선도에서 남해로 입도하게 되는 지족항에 숨어있는 작은 카페다.

지족항이 진주와 사천 방면에서 남해로 들어오는 빠른 길목에, 바로 독일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위치인지라 접근성이 좋다. 그래서 이런 작은 카페도 나름 성업을 이어가는듯, 애매한 시간에 도착했는데, 대기열이 생겨있다. 회전율이 빠르므로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아 먹을 수 있었다.


다만 지족항을 조금 둘러보다가 카페 뒷길의 공설시장이 휑하니 모두 비어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 짠하단 생각. 외지에서 온 객들은 남해에 와서 이런 작은 시장까진 오지 않을 것이요, 현지 사람들도 예전과 달리 상업화된 시장을 가느니, 하나로마트나 식자재마트를 가는 것이 나으니 애써 리모델링한 시장이 버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랄까. 뭐 남해처럼 이름 난 관광지에서, 이런 걱정까지 해주는 것도 좀 사치같다. 우리는 팥 파이와 빙수를 순삭하고 숙소로 내달렸다.


아이는 차에서부터 잠에 들었고 숙소에서도 남은 잠을 보충했다. 그 말은, 오늘도 아이의 낮잠 관리는 실패했단 뜻이다. 즉, 나는 오늘 밤 늦게까지 아이와 놀아줘야 한다.

오늘이 저물 때까지 바다에서 모래놀이, 물놀이를 했다. 수영복도 입히지 않고 그냥 편하게 놀아주었다. 사촌해수욕장은 남해 서쪽에 위치해있다. 상주 은모래해변보다 훨씬 규모가 작고 좁다. 그러나 모래의 질이나 수질이 상주보다 낫다. 은모래해변은 파도에 검은 가루들이 밀려와서 아이가 물놀이를 할 때, 입에 들어가지나 않을까 걱정할 판인데 사촌해변은 검은 가루가 좀 덜하다.


모래놀이를 하며 열심히 놀아주다보니 어느새 해는 저물어 어두워졌다. 아이는 이틀 전부터 "바다"라는 새 어휘를 배워 열심히 실습했다. 하루하루 아이의 말이 늘어간다. 22개월의 폭발전 인지 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어휘력을 보고 있으니, 아- 좋긴 한데...사고의 스케일이 너무 커지니 문제다. 머리를 여기 저기 부딪히고, 무릎이 깨져서 큰일. 다행히, 바다의 모래사장엔 아이가 다칠 구석은 없다. 우리는 잠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저녁을 준비하고, 엄마는 아이를 씻긴다.

마지막 저녁은 간소하게 바베큐를 했다. 간소한 상차림에 좋은 고기, 그리고 직화구이면 긴 여행의 마지막 날 밤 식사로 다른 호사가 필요하지 않다. 펜션에서 머문다면 사장님이 바베큐를 준비해주시지만, 우리끼리 머무는 장박 숙소에서 알아서 숯을 피우고 알아서 고기를 구우려니 조금 수고가 든다. 모기, 바람, 더위와 가볍게 씨름하며 석쇠에 예쁘게 고기를 구워간다. 삼겹살(사실은 오겹이었음)을 쫑쫑 잘라주니 아이도 제법 먹는다. 그리고 열무김치도 함께. 800그램 정도. 조금 과했나? 새로 지은 밥과 먹다보니 고기가 반 약간 안되게 남았는데 아내가 배가 부르다며 물을 마신다. 어휴, 남은 고기 먹는다고 내가 조금 고생했다.

마지막 밤. 아이는 11시반까지 놀다가 잠에 들었다. 나는 겨우 아이를 재우고 1층으로 내려와 쓰레기를 버리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남해에서 의정부로, 내일의 긴 여정을 생각하며 어디서 밥을 먹을지, 어떻게 가면 조금 일행이 덜 수고로울지. 쓰레기를 버리려 나가니 작은 개구리가 창에 달라붙어 편안하고 시원한 실내를 구경하고 있다.


그러나 개구리와 놀아줄 새도 없이, 긴 여행에 지친 우리는 자리에 누워 늘어지게 쉬며 하루를 정리하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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