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일기, 끝.

여덟시간만에 집에 오고,

by 공존

"네이 감사합니다- 부자 되시고 또 보시다-"


이게 남해 말이구나. 나는 마지막 날, 드디어 남해에서 지내는 동안 품고 있던 의구심 하나를 해결했다. "합시다" "봅시다"에서 ㅂ받침이 탈락되어 "하시다", "보시다"로 발음을 한다. 처음 보는 사투리라, 이런 것이 또 남해의 맛이구나, 신기하다. 사장님은, 체크아웃 하는 날 아침 9시에 벌써 오셔서 분리수거와 바깥청소에, 시간이 남으시니 여행으로 더러워진 내 차를 물청소해주시기까지.


우리는 사장님이 바깥에서 분주히 숙소를 챙기시는 동안, 여유있게 아침을 먹은 뒤 짐을 날랐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어린이집의 연장보육을 신청하기 위해 노트북으로 일처리까지 하고, 완벽한 준비상태가 되어, 사장님과 인사하고 차를 몰았다. 남해에서 서울 넘어 의정부의 우리 집까진, 대강 여섯시간. 그것도, 광복절까지 징검다리 휴일 전날의 퇴근시간에 꼭 끼게 생겼다. 잘 올라갈 수 있을까.


다행히 아이는 차에서 지루한 시간을 잘 견뎌주었고, 나는 지루하고 노곤한 운전을, 아내는 뒷좌석에서 아이를 보는 긴 시간을 이겨냈다. 밤 늦은 시간 집에 와, 아이는 다시 팔 다리를 쭉쭉 펴고 신나게 놀며 스트레스를 발산한 뒤 마침내 잠에 들었고, 우리는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밀린 빨래와 청소, 짐정리로 하루를 마친다. 또 하나의 여행의 끝. 그리고 이제 일상으로의 복귀. 아이는 가뜩이나 검은 피부가 새까맣게 타서, 영락없는 시골아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각자의 밀린 일로 각오를 다지며 맥주 작은 캔을 하나 나누어 먹었다.


거의 한달 가까이 아이는 어린이집을 비웠다. 자연스럽게 아이의 하루하루의 발달세를, 여행 전, 여행 후로 비교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이는 이 한달 사이, 정말로 많이 컸다. 사용할 줄 아는 어휘가 10개 이내에서 20개 가까이로 늘었고, 다섯가지 정도의 도형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조사와 문장을 구사할 줄 있게 되었다. 한달 전, 그러니까 21개월이던 아이가 22개월이 된 사이에 발생하는 폭발적 인지성장과 언어발달이, 딱 우리 여행 기간에 일어났다.

그 과정을 한달 내내 꼭 붙어 볼 수 있었던 것은, 기쁨이기도 하고 미안함이기도 하다. 우선 기쁨이란,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서 아이가 부모와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이고, 미안함이란 당연히, 이런 환경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접하는 사회적 환경에서도 함께 나타날 수 있어야 이로울 텐데 부모가 아이를 끌고 다니며 환경을 통제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바람은, 이 여행에서의 풍성한 경험이 아이의 성장에 보다 이로울 수 있기만을 바랄 뿐.


돌이켜보면, 아이를 지독하게도 많이 끌고 다녔다. 100일을 갓 넘기고선 속초까지 3시간 길을 차를 타고 갔다. 속초에서 20일 가량 머물며 옹아리가 마구 늘었다. 9개월째엔 제주도에서의 약 20일. 그때는 아직 걸음마를 하기 전인데, 숙소의 침대를 타고 화장대에 올라가는 위험한 동작을 매일 수십번을 했다. 높은 곳을 올라가느라 다리 힘이 발달된 것일까. 22개월인 요즘은 계단을 너무 좋아한다. 여섯층을 올라간 게 현재까지 최고 기록인데, 늘어나려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15개월 무렵엔 제주도에서의 한달 살이, 그리고 지금, 21개월 쯤에는 첫 해외여행인 치앙마이와 남해.


그나마 아내가 아이가 갈만한 곳을 고르고 다녀서, 여행에 있어서 비교적 아이의 권리는 챙김받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이 뙤약볕에 남해에서 양떼목장을 다니면서 엄마 아빠는 얼마나 덥던지. 그럼에도 아이는 동물 먹이 주는 걸 너무 좋아해서, 지금도 책에서든 실물이든 동물을 보기만 하면 동물의 이름보다 "맘마"를 먼저 외친다. 여행 전까진 동물을 보면 땅의 모래알을 긁어서 가더라만, 여행을 지나 한달 더 큰 아이는 이제 모래알은 줍지 않고 길가의 풀을 뜯어 동물에게 가져간다.


적극성, 호기심, 관계성, 탐구의지. 우리가 아이의 건강한 성장발달을 위해 기대하는 여러가지 자질들. 그것들이, 아이에게서 왕성히 드러나는 시기, 그 과정을 함께 보내며, 그래도 어느 정도 한정된 어린이집의 교실보다는, 벌레가 날아다니고 뙤약볕에 살갗이 찔리는 자연의 환경에서 아이가 보낼 수 있게 하여 보람이 없지는 않다. 이런 삶에, 또 나중에 되어 반성과 후회가 섞여들 날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땐 또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겠지.


아이가 잠든다. 아빠는, 짐을 치우고 정리한 뒤, 아내와 맥주를 다 마신 뒤에는, 한달간 켜지 못한 게임을 켠다. 이제 내 시간도 가져야지. 그리고 다시 내일이다. 또 그 다음 내일이 되면, 다시 모든 것은 새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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