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Aug 26. 2023

내가 그린 머그 그림

좀 전력을 다했다

“샘- 이번에 컵 안그리세요?”

“음? 하아…짬이 나려나.”


 꽤 친하게 지내는 미술 선생님이, 슥 다가와 묻는다. 내가 물어다드린 예산으로 재작년에 미술 수업 활동을 새로 시작했는데, 학생들이 분실 및 훼손할 경우가 있어 확보해둔 분량을, 수업이 끝나면 다른 선생님들께도 푸는 것.


 그 활동이란 뭐냐하면 머그컵 도안 제작이다. 8절 도화지 4분의1 사이즈에 뭐든 그리면, 그것을 전사해서 컵을 만드는 것. 이 활동 자체는 아이들 미술 체험 프로그램 등에서 흔히 접해볼 수 있는 것이지만 딱 아이들이 고 나이일 때나 따라가서 구경해보는 것이지, 아이가 한참 어린 우리집에서 머그컵 도안 그리기는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미술 선생님의 이런 제안은, 무척이나 고맙다.


 문제는 내가 너무 바쁘다는 것인데…그 덕분에 미술 선생님이 매 학기 종이를 내게 가져다줌에도, 재작년 첫해에 딱 한번 해보았을 뿐 작년엔 두번이나 머그컵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공강이나 방과후 시간에

다른 선생님들은 미술실에 가서 아이들과 오손도손 그림을 그리며 수다를 나누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번엔 조금 그나마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키즈카페에서 기회가 생겨 제작한 머그컵을 집에서 잘 쓰고 있기 때문에, 한번, 제대로 그려보기로 했다. 오며 가며 학생들이 그린 머그컵 도안을 보고 자극을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앞으론, 내가 그린 머그컵들로 집에서 주로 쓸 생각이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전력을 다했다. 몇해 전 사서 거의

써보지 못한 마커세트까지 총동원해 방과후에 하루 날을 잡아 스케치. 다른 날에 또 하루 날을 잡아 채색까지.


 이전에는 그림을 그려 머그컵을 만드는 일에 대해 큰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앞서 만든 두개의 머그컵(하나는 학교, 다른 하나는 키즈카페)은 디자인이 단촐하다. 그래서 집에서 딱히 자주 쓰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리 가족을 위한 세상 하나뿐인 머그컵이 하나 둘 쌓인다고 생각하니 창작열은 새로이 샘솟는다. 바빠서 성의 없이 대충 모양새만 내듯 하던 일이, 제한된 시간 내에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행동으로 뒤바뀐다.

 그렇게, 작업 시간 3일, 대강 총 4시간쯤만에 완성. 우리에게 나름 의미 있는 슈퍼마리오를 다시 차용했다. 특히나 힘들었던 건 슈퍼마리오의 폰트였다. 차라리 그냥 느낌 가는대로 슥슥 따라그리는 게 낫지, 비율과 각도를 신경써야 하는 폰트 그림은 손으로 할 일은 영 아니다.


 원래 이렇게 넓은 도안에서 중앙의 주체에 따라 좌 우의 공간이 나뉘어 표현되는 건 흔한데, 내가 미술에 소질이 없다 보니 좌우의 공간이 차별화되어보이진 않는다. 아쉽다.


“언제 와? 배고파해 다들.”

“어어 이제 나가.”


 나는 이 작업을 바깥양반에게는 숨겼다. 서프라이즈 해줘야지.

“흐흐흐. 짜잔-.”

“오. 감사감사요.”


그리고 어제, 방학을 넘겨 대망의 컵이 도착했다. 미술 선생님이 센스있게 채도를 높이고 블러 처리까지 해, 괜-찮은 제품이 나왔다.


 나는 이 컵을 가지고 집으로 와 설거지를 한 뒤, 앞서의 두 잔의 머그컵과 함께 나란히 두었다. 아이가 태어난지 22개월. 햇수로 3년. 세살.


 한 해 한 해 모아가는 기분으로, 이렇게 차곡차곡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모아보니 또 아이의 성장세와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이 그림에 그대로 담겨있다. 한살 땐, 마냥 품 안에서 이쁘던 솜털쟁이. 두살 땐, 어디로 튈지 모를 사고뭉치. 세살인 오늘, 우리 아이는 아빠의 눈엔 세상 모든 것을 호기심 가득 탐구해나가는 슈퍼 동백이.


 우리 동백이 하고 싶은 거 다해!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 요리를 잘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