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can I meet "REAL" ME?
<시동>의 주인공 택일은 탈선 청소년이다. 중고나라에서 사기치듯 구매해 온 소형 오토바이로 목숨이 위태위태한 사고를 치는데, 오토바이를 산 돈도 제 돈은 아니다. 학교는 중퇴, 공부는 중단, 인생은 중구난방인 택일을 보고 엄마는 속이 터진다. 남들 다 보는데서 다 큰 아들에게 손찌검이 나가고 그런 엄마와 구질구질한 삶을 못내 견디지 못한 택일은 훌쩍 바람 부는대로 정처 없이 떠난다.
엄마와 아들은 여러 차례 다툰다. 가장 큰 다툼의 원인은, 역시나 공부다. 택일은 공부 따위는 관심이 없고, 엄마는 그런 아들을 매로 다스려서라도 대학은 나오게 만들고 싶다. 그래서 말한다. 대학을 나와야 사람답게 살아. 실업팀 배구선수로 빛나는 한때를 살다가 지금은 홀몸으로 말 안듣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를 딱하게 느끼면서도 그런 엄마의 "훈육"을 도저히 더는 견디지 못해 가출을 자행한 아들은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랑 사는 것보다 훨씬 잘 살아 지금!
자. 이처럼 <시동>은 어른이 깔아놓은 "남들처럼"의 선로를 벗어난 가출 청소년의, 와당탕활극이 약간 첨가된, 그러나 짠내가 넘치는 홀로서기 경험담이다. 소년은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한 모험에 나선 참이고 그 곳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내면서도 함부로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고, 예의범절 등 남이 정해놓은 규범은 한사코 거부하면서도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는다. 즉, 택일은 대단히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인간형인데 "단무지 같은" 그의 외형이나 유행과는 엇나가 보이는 의상을 통해서도 그의 인간형을 잘 알아볼 수 있다. 세상과 기꺼이 불화하는 용기는 그 나이 때에만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택일은 그 까칠함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반면 가출 직전까지 택일을 지탱해주던 절친 상필과 엄마는 주체적으로 세상에 대드는 유형의 인물들이 아니다. 쉽게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간 것인지 상필은 사채 추심업에 뛰어들어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계속한다. 이번엔 상필의 대사. 내가 도로를 쫙 깔아놓을 테니 너는 와서 달리기만 해. 한편 엄마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다가 그만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자신의 트라우마를 아들에게 전이하여, 남들처럼만 살라며 아들의 "남다름"을 억압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상필을 저렇게 독립적으로 키워낸 것도 엄마일 터인데, 막상 다 커서는 아이를 억압해야 하는 처지라니. 아마 그녀 자신도 그럴 것이다.
여행의 끝에서 만난 "거석이형"은 한편. 인생의 양자 택일의 기로에서 어느 한쪽을 택해, 끝까지 가본 뒤에 다시 어느 지점으로 되돌아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도대체 어째서 과거의 자신과 결별한 것일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과거를 지닌 인물이라도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얼마든 인생을 새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을 택일이 이해하는 것. 그것 하나면 이제 막 자신이 선택한 "남다른" 어른이 되는 길에 들어선 택일에게는 충분한 가르침이 되는 것이니까. 그런 가르침에 거석이형이란 사람이 또한 그리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시동>은 어른의 길목에 선 소년을 통해서 선택과 결과, 그리고 재출발의 가능성을 동시에 우리에게 보여준다. 남들처럼 살기를 거부하는 택일의 곁에 세 사람, 남이 시키는대로 살아가는 불알친구와, 남 다르게 살았다가 인생 쓴맛 다 본 엄마와, 남 다르게 살았다가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있다. 친구 상필이 보여주는 "내 주관 없이", 엄마가 보여주는 "남들처럼", 거석이형이 보여주는 "괜찮아 다시 해봐"의 삶의 태도는 택일의 "내 멋대로"와 엮이고 섞이며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삶의 자세에 대해서 스치듯 담담하고 차분한 교훈을 던진다. 멋대로 살아.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영화의 열린 결말은 희망도 미래도 보여주지 않지만 주인공들은 단절에서 연대로 나아감으로써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만들어내고, 서로 간에 뚜렷하던 경계선은 사라져있다. 엄마는 택일과 같은 방향에서 인생을 바라보게 되었고 택일은 엄마의 딱딱한 손에서 이제 온기를 느낀다. 어떻게 돈을 벌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인지는 이제 명확하다. 더는 "왜 그렇게 살아 그렇게 살고 싶어?"라는 대화를, 모자는 나누지 않을 것이다.